알바 갈 때부터 정신 못 차리고 있던 나는 그렇게 기분 나쁜 하루를 보내고 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먹고 나서는 기운을 차려 으쌰으쌰 걸어다녔다.
나는 혼자 이리저리 걸어다니면서 사진찍고 하는 게 정말 좋다.
보통 그럴 때는 진짜 발 닿는 대로 걸어다니는데, 사실 이런 습관이 유럽에선 안 먹히는게
일단 봐야할 것들이 있고 도시가 넓다보니 그렇게 걷다가는 길을 잃기 쉽다.
그치만 홍콩섬은 그냥 한쪽으로 쭉 걸어가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쭉 걸어오면 집이 있고,
혹여나 길을 잃더라도 가까운 역이나 트램정류장에 가면 되니까 걱정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길이 있는 곳엔 그냥 무작정 발을 대는 식으로 걸어다녔다.
아는 거리고 이미 봤던 곳이라 해도,
늘 새로운 것들은 있고 그런 걸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는 게 기분 좋다.
그리고 오늘 찍은 사진들은 좀 예쁜 것 같아!
틈!
"네가 슬플 때 내가 옆에 있어줄게"
겁나 여장부처럼 나온 무 두쪽
철창에 갇힌 맥도날드
우체통!
초록색+보라색 우체통이라니. 예쁘다.
이 두 색의 조합을 원래 좋아한다.
이게 무슨 다리 위에서 찍은 건데, 사람들도 그렇고 트램도 작게 나와서 너무 귀엽다.
레고같아!
오늘 날씨는 흐림이었는데,
어떤 건물 꼭대기가 구름에 가려 안보인다.
저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참 신기하겠어.
창문 밖을 보면 막 구름이야 ㄷㄷ
한참 센트럴 주변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뎅뎅뎅 났다.
이유는 모르게 그 소리에 이끌려 종소리 방향으로 걸었고 그러다보니 청콩공원이 나왔다.
"오 이거 관광책에서 봤던 곳인데" 싶어서 들어갔다가,
쭉 위로 올라가니 성요한성당이 나왔다.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해봤더니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영국 성공회 성당이라고.
홍콩 주둔했던 영국 병사들의 종교생활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첨엔 사람들이 밖에서 다 기다리고 있길래 뭐지 싶어서 나도 같이 구경하다가,
뭔가 의식이 지나가고 난 뒤에 다들 우르르 들어가길래 나도 들어가서 앉았다.
홍콩에서 처음 경험해보는 또다른...............
그냥 신기하기도 하고 안이 시원하기도 해서 끝까지 들었다.
앞자리 아래에 무슨 방석 같은 게 있었는데,
처음엔 아 엉덩이 아플까봐 있는 거구나 했다가
나중에 다들 그거 대고 무릎꿇어서 깜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런 용도였구나 싶어 나도 따라서 무릎꿇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에는 일반인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 광둥어(추정)로 뭔가를 읽었고,
그냥 뭔가를 읽고 아멘 할렐루야..
신기했던 게,
한 남자아이가 계속 향을 피우면서 돌렸는데
그 냄새가 꽤 심해서 나중에 밖으로 나오니 내 머리에 다 뱄다.
근데 여기도 찬송가라고 하나?
노래가 좋고 사람들이 다같이 부르는 그 소리가 좋아서 홀릭..
끝나고 나왔다.
그리고 풀숲에서 안경을 주웠다.
사진 찍다가 뭐가 보이길래 뭐지? 하고 주웠는데
안경이었다.
눈이 매우 나쁜 분이었나봐요.
그냥 두고갈까 하다가 이런데 떨어진 거면 주인이 찾지도 못할 것 같아서 가져왔다.
왜 가져왔냐고?... 모르겠어
그냥 가져가고 싶었어....
더러워서 저렇게 잡고 있는 것 맞고...
그냥 뭐라해야하나, 기념품 같은 느낌?
누군가의 눈이었던, 삶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안경이
이제는 내 손 내 방 안에 있다는 거 좀 신기하잖아.
좀 무섭기도 하다.... 혹시나....으 그러면 내다버려야지.
노숙자 이곳저곳에서 많이 봤지만 이렇게
큰 사거리 겁나 큰 횡단보도 앞에서 토요일 7시에 주무시고 계시는 분은 처음 봤다.
아저씨 눈알 떨어졌어요??
그리고 나는 내일 일을 한다.
아웅 졸려 이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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