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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영화

[화차] ★★★★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멍청이라 화차를 이제야 봤는데, 근래 본 영화 중에 가장 인상 깊었다.

마치 비가 내리자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 둘 자연스럽게 우산을 펼쳐 쓰고 걷기 시작하는데 우산이 없는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들었다.

왠지 전체의 분위기와 몇몇 부분에서 김기덕의 피에타와 겹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피에타가 폭력적인 현실을 가장 폭력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를 해소한다면 화차는 폭력적인 현실 속에 숨겨진 진실을, 하나하나 보듬으며 벗겨가는 느낌이다. 

그 안에는 비난도, 질책도 느껴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무척 무뚝뚝한 듯 보이지만 결국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애정어린 시선이 묻어난다. 물론 피에타도 좋게 보긴 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화차처럼 이야기하는 게 더 좋다. 

피에타의 분노에 분노가 있고 사랑에 사랑이 있었다면(물론 후반부에는 살짝 변하지만) 화차의 분노에는 사랑이 있고 광기 속에는 상처가 있었다. 나는, 죽였다. 분명 사람을 죽인 것은 극중 경선인데 마치 나는 내가, 그들이, 혹은 무언가가 그녀가 죽기 이전에 일찍이 그녀를 죽였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인간ㅡ 흔히 보기들 귀찮아하는, 인간 그 속에 담긴 어두운 무언가를 바라보고 관심 갖는 태도가 좋다. 대체 왜 네이버 평점이 7밖에 안 되는지? 

김민희가 "나 사람 아니야. 쓰레기야"할 때ㅡ 또 "공작나비는 위협을 느끼면 날개의 점?을 확장시켜 무섭게 보이려고 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거였나 아무튼 요런 얘기 할 때의 표정이 진짜 뇌리에 계속 남는다. 수의사로 설정된 이선균의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진짜진짜 맘에 들었다.

여성감독과 남성감독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 아무튼, 무진장 초초 뒷북으로 오랜만에 먹먹.해지는 영화를 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