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타디스 창고/영화

[스토커] ★★★★ 박찬욱, 그의 자유롭고도 위험한 상상에 보내는 박수와 비판


(스포 있음)


스토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이 난 것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 <박쥐>였다.

<스토커> 이전의 박찬욱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박쥐>였는데, 인간의 지닌 본능적인 욕망과 열망을 섹스와 뱀파이어라는 소재로(물론 뱀파이어 테마가 더 두드러졌지만 두 욕망이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적절히 잘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욕망과 이로 인한 파멸 가능성, 그리고 이를 이성적으로 판단해 자멸을 택한 송강호의 캐릭터.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피를 향한 욕망은 결국 사랑을 가장 기본 덕목으로 여겨야 하는 신부였던 송강호 덕분에 사라지게 되었지만, 박찬욱은 이 때부터 인간의 가장 동물적인 욕망과 열망에 대해 신경쓰고 있는 듯 했다.

(그가 즐겨 사용했던 '복수'라는 테마 자체도 어떻게 보면 인간의 가장 본능적 욕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쥐와 스토커, 두 영화 사이에는 '본능적 욕망' 이라는 가장 큰 테마가 공통적이다. 그러나 <박쥐>에 송강호라는 브레이크가 있었다면, <스토커>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오로지, 돌진하는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스포일 수 있지만 이 영화 속에서 삼촌으로 등장하는 찰리는 작품의 제목인 스토커를 넘어서 싸이코패스로 그려진다.

이 부분에서는 영화 <케빈의 대하여>의 케빈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각자 죽이는 이유는 달라도 이들은 모두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잠재된 광기를 생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케빈에 대하여의 대한 해석은 그냥 내 생각이다) 

이 영화는 정신병동에 있던 찰리가 아버지의 관리로 인해 잠재적으로 억눌려 있는 상태의 싸이코 패스(물론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이들을 싸이코패스라 명명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겠지만)인 인디아의 본성을 끌어 내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사람을 죽이는 삼촌 찰리의 본성을 알아갈 때마다 놀라움과 함께 쾌감을 느낀다. 화제가 되었던 인디아의 '자위' 장면은 이 쾌감이 극도로 표현되었던 장면이라 볼 수 있다. 감독은 처음에 그녀가 자신 앞에서 죽은 학교 친구를 생각하며 우는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사실 그녀는 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 앞에서 목이 졸려 죽어가는 사람을 떠올리며 성적 행위를 하고 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렇게 사냥을 취미로 즐기고 무언가 남들과는 달랐던 인디아는 찰리를 만나면서 오히려 자신이 완벽해져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늘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던 인디아가 찰스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 최고의 호흡으로 연주하는 장면, 또 원래 누군가가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디아가 찰리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에게 만져지기를 원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그녀의 삶에는 항상 무언가가 빠져 있었는데 찰리는 그것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인디아의 성장담(?)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쥐>에서의 세상이 한꺼풀 이성의 끈으로 막혀 있었다면 <스토커>는 그 세계가 온전히 숨통을 트고 그대로 분출되는 느낌이다. 숲이나 넓은 들판이 주된 배경일 뿐만 아니라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 인디아는 굉장히 동물적으로 그려진다.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이 기본적인 룰인  숲을,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natural.

이 단어에는 '정상적인'과 '천부적인, 천성의'라는 뜻이 동시에 있는데, 나는 이 단어가 인디아의 상황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세상의 '정상' 기준에서 벗어나는 인간상이다. 그러나 이는 그녀의 천성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연적인 것일까 자연을 거스르는 것일까?

보통의 사람들의 천성을 우리는 정상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세상의 룰과 모든 규범들은 이 천성과 정상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어린아이가 물가에서 놀고 있을 때 그를 구하려는 측은지심의 마음과 같은 것?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그녀의 본성이 내재된 천성이라면, 그녀의 자유는 박탈되어야만 하는가? 


"꽃은 색깔을 고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나의 색깔을 찾았다"


뱀파이어의 피를 향한 욕망이 흐르는 피에 내재된 것처럼 그녀의 욕망 또한 이미 내재된 것이라면, 그녀의 자유는 얼마만큼 이해되어야 하는가.

18살, 그녀의 독백처럼 그녀는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유를 얻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녀의 욕망이 아버지와 주변의 환경으로 인해 억눌려 있었다면 이제 그녀는 악마의 자유를 얻었다.

반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면, 그녀가 엄마 대신 찰리를 총으로 쏴 죽인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했던 독백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유를 원했고,그 자유속에서 찰리는 또 하나의 새장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 새장마저 부수길 원했을 것이다.



박찬욱, 그의 상상은 자유로웠고, 그 끝없는 잔인함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해 무섭다.

물론 사이코패스라든지, 자유를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표현의 자유가 더 앞서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이 아무 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겠지만, 아름다운 영상미와 더해져 이 영화는 어찌보면 사이코패스를 미화하고 있는 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we are not responsible for who we come to be"

ost 곡 중 하나기도 하고 독백에 포함되기도 했던 이 문장. 그러나 무책임함은 자유가 아니다.


어쨌든 영화 자체는 좋았다. 영상미는 최고였고 한국감독의 스타일 + 외국 배우들 그 안의 미묘한 부조화 같은 것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또 인디아라는 한 여자아이의 18세 성장을 기점으로 두고 긴장감있게 끌어간 이야기 자체도 맘에 들었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다른 영화들보다 끔찍한 장면들이 덜 나온 것 같아 좋았다. 분위기만으로 이렇게 섹슈얼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낸.. 찰리가 엄청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했다면 오히려 극적 긴장감이 떨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 좋지만 그가 작품에 담아내는 내용과 담는 방식들이.. 나에게 공감이 가지 않아서 별 하나를 뺐다.



아래의 포스터를 보니 '오펀 천사의 비밀' 포스터가 떠오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