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디스 창고/문학
[진은영] 時
비타민DDD
2015. 1. 11. 01:41
時
진은영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전에
흔들거리는 풀잎이야
너의 부드러운 숨결이 닿기도 전
터지는 비눗방울
네 눈빛에 꺼지는 촛불이야
알 수 없는 깜박거림, 이 오래된 어둠 속에서
빙산의 가장 깊고 투명한 곳에서
터져나오는 열기
쩍쩍 갈라지는 얼음이야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와
심장에 정확히 꽂힌 칼
콸콸 쏟아지며 거즈를 적시는 피처럼
사막을 물들이는 저녁노을이야
발가벗은 낮의 하얀 유방을 감싸는
검은 어둠의 실루엣
너를 보려고
이제 눈을 감아야 하나
도시 재개발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무너져내리는 담벼락,
폐허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이여
나를 위해 마지막으로 벌어졌던 입술
사이로 드러난 너의 희고 고른 이여
가벼운 한숨에도 날아오르던 깃털들
나풀거리며 책상 아래로 떨어져내리는 내가 오린 종잇조각이여
바람 속에서 흔들리던 나무 아래
내 얼굴로 쏟아지던 하얀 꽃잎, 꽃잎
내가 이름을 불러보기 전에
사라져버린 것들이여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숨어버린 모음들
손을 담그기 전에 흘러가버린 강물이여
너를
만나기도 전에
알 수 없는 폭풍 속에서
나는 그 많은 나뭇잎을 다 떨어뜨렸어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