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치유하는 의사, 닥터 팽
우리는 늘 어느 정도의 환상 속에서 살아가며 현대인들 주위엔 늘 환상이 존재한다. 앞으로 다룰 소설 <오즈의 닥터>에 등장하는 김종수와 같은 인물은 약과 같은 사회적 금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일 뿐,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도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가상 게임에서 딸을 키우다, 자신들의 생후 3개월 된 딸을 굶겨 죽인 부부와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김종수처럼 환상, 허구와 현실의 삶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환상과 관련되어 알려지는 문제가 대체로 이런 예와 같이 부정적이기에, 사람들은 대개 환상을 현실보다 낮은 것,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갖는 일탈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소설 <오즈의 닥터>는 이러한 현실 중심적 인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문학사의 측면에서 보면 근대 이후, 미메시스 중심의 문학관이 나타나면서 문학은 '현실을 모방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으며 모방의 정도와 수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는 관점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 중에서도 '에리히 아우얼 바하'는 ‘서양의 서사문학의 전통을 리얼리티의 점진적인 증가과정으로 파악하며, 소설 속에 리얼리티적인 특성이 많아질수록 더 진보, 발전된 문학’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후 이에 대한 반성적인 입장으로 환상문학의 의의를 찾는 입장도 나타났다. 환상은 미메시스적 상상력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시대의 공포나 무의식을 드러낼 수 있으며, 여기에는 현실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환상문학은 그 특성 상 독자가 사건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고 확신을 어렵게 한다. <오즈의 닥터> 또한 이러한 환상문학적 특징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환상'이란 무엇인지 의문을 던진다. 또 이러한 환상과 현실의 우위를 논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오즈의 닥터>는 크게 꿈, 환상을 주요 제재로 삼아 현대사회 속에서 '환상의 위치'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거의 주인공 김종수가 환각 상태에서 진술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그가 환각 상태에서 꾸며내는 이야기, 또 벌이는 일들이 사건의 중심이 되며, 김종수 자신과 닥터 팽, 그리고 납치 피해자 정수연이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김종수는 환각 속에 살아가는 인물로, 소설은 김종수와 그의 환각 중 하나인 닥터 팽과의 상담이야기, 그리고 그나마 현실과 어느 정도 맞닿아있는 납치 피해자 정수연의 이야기가 얽혀 전개된다. 여기서 김종수는 가상의 인물 닥터 팽과 상담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꾸며내는데, 그의 무의식인 닥터 팽은 이러한 거짓말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진실인지를 되묻는다. 이렇게 김종수는 그 잠재의식 속에서 자신이 환상 속에 빠져 산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활 중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굳이 구분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환각의 상태에서 정수연을 납치하고, 이후 납치된 정수연과 그가 죽인 두 구의 시체가 형사에 의해 발견되면서 법원까지 가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김종수는 환상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 모래든,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시멘트가루든 어차피 둘 다 똑같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이 환상이든 현실이든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닥터 팽에게 묻는다.
주제란 '작가의 인생관, 세계관을 반영하고 문제의식을 구현한 것'으로 '사건, 인물, 배경 등의 구성요소를 통합시켜주는 형이상학적 에너지'이다. 모든 소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떠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여기서 주제란 작가가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이다. 브룩스, R. 웨렌은 또한 그의 저서에서 주제는 작가가 작품 전체에 걸쳐 구체화한 보편적이고 통합적인 삶에 대한 견해라고 정의했다. 이를 통합해 보면 주제는 곧 인생관이나 세계관과 같은 작가의 사상, 문제의식을 심화시켜 거기에 알맞은 제재를 선택, 미적으로 형상화 한 것을 의미한다. <오즈의 닥터>에 등장하는 김종수의 이야기는 현대소설의 5대 주제 중 하나인 수면의 문제, 꿈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수면의 제재는 근대소설 이후에 꿈과 환상의 문제로 확대되었는데, 이는 대체로 현실에서 실현이 어려운 욕구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꿈과 환상에서 실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근대소설 이후 환상은 무기력하고 벗어나고 싶은 현실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형태로서 현실의 무기력과 무의식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해 왔다. <오즈의 닥터>의 작가는 이와 같은 것을 김종수를 통해 이야기하며, 나아가 이전까지의 환상의 개념 그 이상으로, 환상이 꼭 현실 하위에 존재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죄책감과 책임으로 가득 찬 현실을 벗어나 환상 속에 살아가는 것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면, 환상이라는 것이 꼭 벗어나야 하는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그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데 있어 내용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식을 사용한다. 먼저 보통 딱 떨어지는 줄거리나 서사를 가지고 있는 보통 소설들과 달리 이 소설에는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정확한 경계를 알 수 없다. 소설을 전부 읽고 난 이후에도 어떠한 사건이 김종수의 환상이었는지, 아니면 현실이었는지 명쾌하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소설의 구조는 현실과 환상을 명확히 구분지어 나눌 수 없는 현대사회 복잡성과 환상성을 잘 보여준다. 제목 또한 주제의식을 잘 드러낸다. 마약 거래상 용식이는 수연에게 오즈의 마법사를 아냐고 묻는다. 오즈의 마법사는 사실 주인공 도로시의 소원을 들어줄 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주인공과 친구들은 그가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어 줄 것이라는 꿈과 환상을 갖고 역경과 고난을 헤쳐 나간다. 그들이 절박한 현실을 놓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끈이 되었던 것이다. 허상, 환상으로 대표되는 닥터 팽 또한 그렇다. 김종수는 현실이 아닌 허구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환상으로 인해 그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작품 속에는 닥터 팽의 모습이나 김종수의 진술에서 흐르는 기괴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또한 작품의 주제의식과 연관이 있다.
현대 소설에는 <오즈의 닥터>외에도 환상을 다룬 여러 작품들이 있다. 이들은 그 시대가 가진 문제점을 풍자하기 위해 도구적으로 환상을 사용하기도 하고, <오즈의 닥터>와 같이 현실과 분리된 환상에 대한 현대인의 욕망을 그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예로 송경아의 <엘리베이터>와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 있다. 먼저 <엘리베이터>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환상문학적 요소가 사용된 예이다. 작가는 욕망에 뒤덮인 현대사회를 엘리베이터에 비유해 현대 자본주의 문명사회를 비판한다. 여기서 환상문학의 특성은 복잡하고 단편적인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대사회를, 특히 그 욕망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다.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은 모두 현대 사회 각각의 군상을 대표한다. 이를 환상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작가는,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언어로 묘사해낼 수 없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내보이고 있다. 이 소설에서 환상은 현실을 묘사하고 현대사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아내는 데 사용되었다. <은어낚시통신>은 <엘리베이터>보다 조금 더 '환상' 자체에 중심을 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비밀 집단은 비생산적이며 마약과 같은 제도권 밖의 행위들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회귀'를 그 큰 목표로 하는데 이들이 말하는 회귀라는 것은 이 세상이 원하는 건설적, 발전적인 것이 아니며, 이들은 계속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작품 전체는 몽환적 분위기에 싸여 있다. 또 주인공이 이쪽의 세계에서 저쪽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현실의 경계는 계속해서 흐려진다. 거기서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물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환상에 대해 관심 갖는다. 이 소설은 현실을 거부하고 환상을 찾아가는 집단을 다룬다는 점에서 <오즈의 닥터>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 집단은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도 겉으로는 현실의 사람들과 같이 정형화된 틀로 숨기고 다니며, 김종수보다는 좀 더 현실에 닿아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김종수와 차이를 보인다.
위의 두 소설에 비해 <오즈의 닥터>는 좀 더 환상, 환각 자체에 닿아 있다. 김종수의 삶 자체는 환상이다. 그리고 그는 그 속에서 살아간다. 김종수가 형사에게 붙잡혀 병원에 있을 때, 의사는 환상으로 가는 매개체인 '약'이 사실 김종수에게 작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약을 먹어온 그에게 내성이 생겨 이틀이나 사흘에 한번 꼴로 먹는 약이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김종수가 환각에 빠졌던 것은, 단순히 약 때문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려는 그 도피욕구에서 온 것이 된다. 김종수는 닥터 팽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환각이 사라진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어요. …닥터, 그건 정말 나였을까요? 아저씨를 아버지를 수연이를 연탄광에 가둔 게. 그럼 고양이가 그들이었을까요, 그들이 고양이였을까요. 지금 내가 보고 온 의사와 형사는 정말 현실 속의 사람일가요? 아, 그게 꼭 궁금하다는 건 아니에요 닥터, 그러니까 내 말은요…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거예요. 현실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환각이 보이는 상태로 좀 살면 안 되는 건가요? 현실이라고 해봐야 좋을 것도 없잖아요. 물론 환각이 무조건 더 좋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결국 마찬가지잖아요. 나는 이제 환각도 현실도 상관없어요. 모래든 시멘트가루든 결국은 딱딱하게 한 덩어리로 굳어버리곤 끝이잖아요." 이렇듯 김종수는 끝까지 환각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환상은 현실세계의 일탈일 뿐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차원 낮은 것이라는 세상에 대해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거나 현실로 돌아가야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고, 그는 계속 현실을 도망치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오즈의 닥터>는 그동안의 환상에 대한 논의보다 보다 더 과감한 주장을 내놓는다. <은어낚시통신>이 '회귀'로서의 환상, 현재와 과거를 나누어 과거 속에서 환상을 좇는 것이라면, <오즈의 닥터>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 속에서의 환상을 찾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에서 작가가 환상만을 옹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환각 상태에서 벌인 납치는 범죄이며, 보통 환상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작가는 다만 이와 같은 범죄와 같은 내용의 단편적 차원만이 아닌 더 높은 차원에서의 환상을 본다. 현실이나 환상속이나 김종수의 비극적인 삶은 마찬가지이다. 만약 이렇게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현실과 환상이 다르지 않고 환상이 인간의 상처를 위로하고 현실로부터 도피시켜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 염증을 느끼는 정수연이라는 인물이 납치사건 이후 환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이다. 소설 <오즈의 닥터>는 김종수와 그 무의식의 존재인 닥터 팽을 내세워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작품 전체의 내용과 여러 가지 문학적 장치들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독자를 끌어나가고 있으며, 작가의 생각, 세계관에 대해 이해하게 한다. 환상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문학에서 많이 다루어져 왔던 제재이다. 그러나 <오즈의 닥터>는 지금까지의 논의보다 한 발 짝 더 나아가 과감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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