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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박완서] 호미

 


호미(박완서 산문집)

저자
박완서 지음
출판사
열림원(도) | 2007-01-2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박완서, 어느덧 일흔일곱... "요즈음 나이까지 건재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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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물론 좋지만, 그래도 결국 어르신이니만큼 조금 꼰대같은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여기에 써댄다면 조금 실례가 될까나..

 

p.77 그 시절 순박한 사람들이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 이가 귀할 귀(貴)자 귀인이 아니라 건질 구(救)자 구인이란 걸 안 지는 얼마 안 된다. 구인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를 돕는 사람으로 돼 있다. 큰 곤경에 처하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누구나 부딪힐 수 있는 타인의 불친절이 우리의 하루를 얼마나 살맛 안 나고 불행하게 하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목숨을 끊는다든가, 자포자기해 돌이킬 수 없는 과실을 저지르는 것도 그 직전에 누군가의 친절한 한마디만 있어도 일어나지 않을 불행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작은 불친절 때문에 지구를 떠나고 싶도록 참담해지기도 하고, 내 식구만 챙기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불빛 은성한 내 집 창문 밑에서 고독한 사람이 얼어죽을지도 모른다.

 

p.79 마더테레사의 시 한 편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비원(悲願)

꼭 이루고자 하는 비장한 염원이나 소원

 

p.126

할머니는 반 아이들이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머나먼 이십 리 길을 이고 온 베보자기를 풀고 이건 선생님 드릴 것, 이건 동무들하고 나눠 먹을 것, 이건 서울 집에 가져갈 것, 몫을 짓기 시작했다.

 

p. 154

<청계표백도>의 청계는 청계천이 아니라 맑은 계곡이라는 보통명사일 수도 있지만 나는 청계천일 거라고 믿고 있다. 화가가 서울 사대문 안에서 산 서울 토박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내가 청계천을 처음 본 건 30년대 말, 사대문 안에는 거의 상하수도 시설이 완성돼 있을 때여서 하수가 그대로 유입된 청계천 물은 시골의 맑은 시냇물만 보던 눈에 여간 더러워 보이지 않았는데도 비만 오면 맑은 물이 넘쳐서 사내애들이 뛰어들어 고기 자는다고 법석을 떨고, 한편에서는 때 만난 듯이 빨랫거리를 이고 나온 아낙네들의 낭자한 빨랫방망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는 호청 빨래를 양잿물에 삶아주고 돈을 받는 영업을 하는 가마솥까지 걸려 있는 게 청계천 바닥이었다.

 

p.190

'시까라레루 도고로니 이끼나사이(야단맞는 데로 가라)'

 

p.203

(그여자네 집 발췌)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해요. 면하긴 했지만 면하기 위해 어떻게들 했나요. 강도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얼떨결에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강도는 죄가 없고 자살이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