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타디스 창고/영화

[리얼리티: 꿈의 미로] ★★★★

 

 

모모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이탈리아 영화인 <리얼리티:꿈의 미로>를 보고 왔다. 내용도 모르고 기대없이 간 시사였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좋았다. 체제가 우리를 어떻게 길들이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흐려지는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돈, 성공, 유명세가 반짝반짝 빛나는 저 멀리 집어등을 따라 우리는 열심히도 헤엄쳐간다. 한 마리 오징어가 되어. 그걸 보여주듯 주인공의 시야는 항상 흐리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항상 열심이던 주인공의 시야는 '빅브라더'에 출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흐려져 더이상 사람들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그는 결코 미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미로에는 처음부터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짝에서 드디어 사고가 났다. 남녀 사랑을 무슨 조건만남처럼 만들어버려 경쟁의 울타리 속에 밀어버리는 듯 아슬아슬하더니만, 한 여자 출연자가 자살을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그 기사를 읽었다. 방금 보고 나온 영화와 내 손에 담긴 이야기 중 어느 것이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죽음의 이유는 뚜렷하지 않지만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든, 유서에 뭐라고 썼든, 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깊게 반성했던 적이 있다. 나는 어떤 TV 프로그램도 챙겨보는 편이 아닌데, 유일하게 K팝스타는 엄청 챙겨본다. 잘한 사람은 살아남고 심사위원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은 떨어진다. 남아 있는 사람도 울고, 떨어지는 사람도 울고, 그걸 보는 나는 마음 아파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생존에 기뻐한다.

그런데 <헝거게임>을 읽고 나서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그 프로를 보다가 섬뜩해졌다. 나도 그들의 슬픔에 일조하고 있구나. 세뇌되고 있구나, 부족하고 모자라면 떨어지고 버림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런 논리에 나도 끄덕이고 있었구나. 말로는 모두의 노래가, 모두의 음악이 의미있다고 말하면서 그 과정을 보며 즐기고 있었구나. 마치 캐피톨의 무식한 인간들처럼.

물론 지금도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만 보기에 출연자들의 노래가 너무 좋고, 매혹적이고............ 집어등이 늘 그렇듯. 이번에 권진아의 씨스루도 좋고 샘김의 그새끼도 좋고 EQ의 지난 노래들도 좋고, 알맹의 담배가게 아가씨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그 날 이후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노력한다. 미로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으려면 벽을 다 부수고 걸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요즘 들어 마음이 쓰리쓰리한 일들이 많이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