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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총 균 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사 | 1998-08-08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1만 3천년 동안에 걸친 인류역사의 기원과 인류문명의수수께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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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서울대 아해들이 이해가 안 간다. 그저 결론만을 달달 외우기에 익숙해져있는 나로서는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백인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리적, 생물지리학적 우연특히 두 대륙의 면적, 축의 방향, 야생 동식물 등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는 한 단락이면 모두 이해될 것을 장장 630 페이지에 걸쳐 그 흐름을 좇는 것이 버거웠다. 약 630페이지를 정말 며칠동안 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부분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지루했다. 진짜 거의 한 5페이지 읽고 쪽수 보고(어디까지 읽었나 확인하려고) 열페이지 읽고 딴짓하고, 이런 식이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다보니 언젠가는 끝나긴 하더라. 드디어 어제 반납하러 가서 연체료 400원까지 내고 왔다.

의미있는 책이고 좋은 연구이긴 하지만 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서울대생들이 가장 많이 빌려본 책!'이라며 타이틀까지 걸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런 말이 무색하게도 막상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둔 곳을 전부 정리해보니 7페이지가 나오기는 했지마는 말이다. 오히려 중간중간 예시로 나오는 일화라든가, 비화라든가 하는 것들이 훨씬 관심을 끌었다. 그 정리본을 여기에 전부 옮길 생각은 없고, 책 내용은 저 세 줄로 요약 될 것 같다. 특히 맨 뒷 부분의 작가 에필로그가 있는데 그 부분만 읽어도 책의 중요한 내용은 다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에필로그를 읽으며 알았다.

인문학도인 나는 이런 책들이 익숙하지 않다. 그나저나 인문학적인 말랑한 감정사고와 이과적 논리성, 체계성을 합친 중간이 딱 좋다고 하는데 그 중간지점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조차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 아침에 알바로 향하는 길에서 예쁜 꽃들을 봤다. 물기가 총총히 올라있는 모습이 참 예뻐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지나고 있는데 불현듯 '저 꽃들이 저렇게 예쁜 이유는 종족 번식을 위해 암술을 길게 뽑고 수술을 내어놓고 뭐 이렇게 저렇게 더 화려하게 주의를 끌기 위해 화려하게 피어난 진화의 산물 중 하나일 뿐이겠지'라는 굉장히 시니컬한 생각이 떠올랐다. 전날 밤에 본 총균쇠의 꽃과 관련된 구절들이 떠올랐고, 정신을 차려 다시 꽃을 보니 굉장히 징그럽게 보였다. 암술 수술은 기다란 촉수같고 꽃잎은 '내가 더 자손번식을 많이 할거야!'라는 이기심을 가장하기 위해 두른 화려한 인공망토 같이 보였다. 스위치를 껐다 켜듯이 똑딱 하는 사이에 꽃들이 그냥 꽃으로만 보였다.

코스모스를 보면서도 항상 매우 흥미롭긴 하지만 내 자신의 특별함이랄까, 중요성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내 세상의 중심인 나는 사실 정말 작고, 사실 아무 것도 아니구나. 그냥 과거를 살아온 많은 인류의 후손 중 하나고 언젠간 사라져 가겠구나 싶다. 이 안에서 내가 이렇게도 작은 일에 의미부여하고 미미한 일에 신경쓰는 게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은 사실 별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