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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배신당한 유언들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3-2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이 기다려 온 쿤데라 작품의 결정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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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스트라빈스키, 야나체크 등 이미 죽은 예술가들에 대한 해설가들의 평가와 번역(처럼 보이는 미세한 오역)을 같은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바로잡거나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는 책. 그래서 제목이 '배신당한 유언들'인가보다.안 읽은 책들이 많고, 작곡가나 그들의 음악에 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전무한 나로서는 따라가기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지만 재밌게 읽었다.


헤밍웨이의 <흰 코끼리 같은 언덕들(Hills like white elephants)>, 우리는 이 다섯 쪽짜리 단편 속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여러 뉘앙스를 상상해낼 수 있다. 이것이 소설.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이라는 소설론. 작가가 최고의 소설론이라고 언급하였다.


p.190

우리는 현재 순간을 즉각 추상화해 버린다. 몇 시간 전에 겪은 에피소드 하나를 얘기해 보면 알 것이다. 대화는 간략한 요약으로 축소되고, 장식은 일반적 소재 몇 개로 줄어 버린다. 어떤 심한 정신적 충격처럼 아주 강렬하게 정신에 부과되는 추억이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충격의 힘 때문에 너무나 정신이 현란하여 어느 정도로 그 내용이 간략하고 빈곤한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현실을 탐구하고 논하고 분석할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 정신에, 우리 기억에 나타나는 대로 분석한다. 우리는 현실을 과거 시제로만 안다. 우리는 현실을 현재 순간,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이 있는 순간 그대로 알지 못한다. 한데 현재 순간은 그 추억과 같지 않다. 추억은 망각의 부정이 아니다. 추억은 망각의 한 형태다.


p. 204

야나체크가 어느 체코 신문에 악보와 함께 정기적으로 발표한 텍스트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

 

"여기서 기다리기로 해. 하지만 난 그가 오지 않으리란 걸 알아."라는 문장이, 어느 배우가 청중 앞에서 큰 목소리로 읽는 이야기 속 대사라고 상상해 보자. 아마도 우리는 그 억양에서 어떤 작위성을 느낄 것이다. 그는 그 문장을 기억을 되살려 상상해 내는 방식으로 발음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저 단순히, 청중들을 감동시키는 방식으로 발음할 것이다. 한데 사람들은 실제 상황에서는 이 문장을 어떻게 발음하는가? 이 문장의 선율적 진실은 무엇인가? 잃어버린 한 순간의 선율적 진실은 무엇인가?


잃어버린 현재에 대한 탐구. 특정 순간의 선율적 진실에 대한 탐구. 그 달아나는 진실을 덮쳐 사로잡고자 하는 욕망. 끊임없이 우리 삶을 저버리는, 그럼으로써 우리 삶을 세상에서 가장 덜 알려진 무엇이 되게 하는 지금 이 순간 현실의 미스터리를 꿰뚫고자 하는 욕망. 내가 보기에, 구어에 대한 연구의 존재론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어쩌면 야나체크 음악 전체의 존재론적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p.215

키치적인 해석은 이런 식으로 예술 작품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 미국 교수가 이 단편에 그런 도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사십여 년 전, <흰 코끼리 같은 언덕들>은 프랑스에서 <잃어버린 낙원>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헤밍웨이 것이 아닌 이 제목(이 세상 어떤 언어에서도 이 단편에 그런 제목이 붙지는 않았다.)은 위와 동일한 의미를 암시한다. (잃어버린 낙원은 곧 낙태 이전의 무구함, 약속된 모성의 행복 등을 의미한다.)


사실 이런 키치적인 해석은 한 미국인 교수나, 세기 초 프라하 오케스트라 단장의 개인적 결함이 아니다. (그 후에도 다른 많은 오케스트라 단장들이 그의 <예누파> 가필을 인가했었다.) 이는 집단 무의식에서 오는 유혹이다. 형이상학적인 프롬프터의 명령이다. 항구적인 사회적 요구다. 저항할 수 없는 어떤 힘이다. 이 힘은 예술만 겨냥하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현실 자체를 겨냥한다. 그것은 플로베르, 야나체크, 조이스, 헤밍웨이 등이 한 일과 반대되는 일을 한다. 그것은 현재 순간 위로, 실재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끔 통념의 베일을 씌운다.


네가 체험한 것을 네가 영원히 알지 못하도록 말이다.


(미국 교수는 210쪽에 나온 미국 어느 대학 문학 교수인 제프리 메이어스. 1985년에 헤밍웨이 전기를 씀. 그리고 볼드 체는 그냥 내가 함)

p.219

"나는 생각한다." 모든 동사에 한 주어가 있을 것을 요구하는 문법 관례에 따른 이 단언을 니체는 의심한다. 그의 말인즉, 사실 "어떤 생각은 '자신'이 오고 싶을 때 오며, 따라서 주어 '나'가 동사 '생각하다'를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날조하는 것이다." 어떤 생각은 "그에게 운명 지어진 벼락이나 사건처럼, 저 위 혹은 저 아래에서, 바깥에서" 철학자에게 온다. 빠른 걸음으로 온다. 니체는 "프레스토로 달리는 발랄하고 대담한 지성"을 사랑하는 까닭에, 이 생각이란 것을 "결코 충만한 즐거움이나 춤과 매우 유사한 그런 경쾌하고 신성한 것이 아니라, 느리고 지지부진한 어떤 활동, 대개 영웅적인 학자들의 땀을 필요로 하는, 매우 힘든 노역 같은 것"으로 여기는 학자들을 조롱한다.

p.264

그 모든 일들 가운데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를 흠모하는 마음과 이미지 서너 개뿐이다. 특히 이 이미지가 그렇다. 수업이 끝난 뒤 그가 나를 바래다주다가 문 가까이에서 멈춰서더니 불쑥 이렇게 말했다. "베토벤에게는 놀랄 만큼 약한 이행부들이 많아. 하지만 센 이행부들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약한 이행부들이야. 잔디밭처럼 말이야. 잔디밭이 없으면 우리는 그 위로 솟아나는 아름다운 나무에게서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을 거야."


묘한 생각이다. 그것이 아직도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묘하다. 아마도 내가 스승의 내밀한 고백 하나를, 어떤 비밀, 오직 터득한 자들만이 알 권리를 갖는 한 가지 위대한 꾀를 듣게 된 걸 명예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스승님의 그 짧은 성찰은 일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나는 그 성찰을 옹호했고, 그것과 싸웠으며, 한 번도 그 끝까지 가 보지 못했다. 그 성찰이 없었던들 분명 이 글은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p. 328

베주호프나 볼콘스키가 자신을 개인으로 확인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내면세계가 바뀔 때다. 그들은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그들의 자유가 불타오르고, 더불어 그들 자아의 정체성도 불타오른다. 시적인 순간들이다. 너무나 강렬하게 그 순간들을 사는 까닭에, 온 세상이 경이로운 디테일들의 행렬을 이끌고 그들을 만나러 뛰어온다. 톨스토이의 세계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힘과 환상과 지성을 가질수록 그만큼 더 그 자신이 되고, 그만큼 더 개인이 된다.


그런 반면, 레닌이나 유럽 등등에 대해 태도를 바꾸는 이들은 그들의 비(非)개인성에서 본색이 드러난다. 이 변화는 그들이 창조한 것도 그들이 고안한 것도 아니요 변덕도, 경악도, 성찰도, 광기도 아니다. 거기에는 시가 없다. 다만 그것은 역사의 변화하는 정신에 지극히 통속적으로 자신을 맞추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점을 깨닫지도 못한다. 결국 그들은 언제나 똑같은 사람으로 머문다. 자신들이 속한 사회 안에서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현실 속에 머문다. 그들은 그들 자아의 어떤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리기 위해 변하며, 이 변화는 그들을 변하지 않고 남을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이를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들은 생각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법정의 뜻에 맞도록 자신들의 생각을 바꾼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변화는 그 법정이 내일 진실이라고 선언할 것에 거는 도박과 다르지 않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보낸 나의 젊은 시절을 생각해 본다. 처음에 공산주의에 매혹되었다가 빠져나온 우리는 공식 강령에 대항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용기 있는 행위로 느꼈다. 우리는 신자들의 박해에 항의했고, 추방된 현대 예술을 옹호했고, 허튼 선전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러시아에 대한 우리 의존을 비판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대단치는 않으나 그래도 뭔가 위험을 감수했으며 이 (작은) 위험은 우리에게 쾌적한 도덕적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끔찍한 생각 하나가 나의 뇌리에 떠올랐다. 만약 이 항거들이 어떤 내면의 자유, 어떤 용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늘 속에서 진즉부터 자신의 재판을 준비해 오던 또 다른 법정의 환심을 사려는 욕구에 따른 거라면?


(볼드는 내가 쳤다)

p.332

수십 년간 반(反)전체주의 전문가들에게 늘 참고문헌으로 애용된 책, 오웰의 <1984>다. 가상 전체주의 사회의 무시무시한 초상화이고자 하는 이 소설에는 창문이 없다. 이 소설에는 항아리에 물이 차기를 긷기다리는 연약한 어린 소녀를 보는 일이 없다. 이 소설은 시에 물 샐 틈 없이 닫혀 있다. 소설이라고? 소설을 가장한 정치사상이다. 이 사상 역시 물론 명철하고 정당하지만 일그러져 있다. 소설적 가장이 그 사상을 부정확하고 개략적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소설적 형식이 오웰의 사상을 흐려 버린다면, 이에 대해 뭔가 보상해 주는 것이 있는가? 여기서 소설 형식은 사회학도 정치학도 다룰 수 없는 인간적인 상황들의 미스터리를 밝혀 주는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는 상황이나 등장인물이 광고 포스터처럼 진부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좋은 이념들을 대중화한다는 구실로 정당화될 수는 있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소설화된 이념들은 더는 이념으로 작용하지 않고 바로 소설로 작용하며, <1984>의 경우 그것들은 나쁜 소설로 작용하면서 나쁜 소설이 끼칠 수 있는 온갖 악영향을 끼치는 까닭이다.


오웰 소설의 악영향은 어떤 현실을 순전히 정치적인 측면으로 감쪽같이 축소하는 데 있으며, 또한 바로 그 측면을 그 측면의 완전히 부정적인 일면으로 축소하는 데 있다. 나는 전체주의 악에 대한 투쟁의 선전에 유용하다는 이유로 이러한 축소를 용서해 주길 거부한다. 왜냐하면 인생을 정치로 축소하고 또 정치를 선전으로 축소하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 악이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오웰의 소설은 전체주의 정신에, 선전 정신에 가담한다.


(신선한 생각. 한번도 이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p.334

공산주의가 끝나고 일이 년쯤 지나 체코인들과 얘기를 나누었을 때, 으레 나는 어느 대화에나 등장하는 상투어, 그들의 모든 성찰, 그들의 모든 추억의 필수 머리말이 되어 버린 상투어들을 듣곤 했다. "공산주의 공포가 끝난 지 사십년 후"라거나 "공포의 사십 년", 특히 "잃어버린 사십 년" 같은 표현들이다. 나는 나의 대화 상대들을 살펴본다. 그들은 강제 이주당하지도 않았고, 수감되지도 않았고, 직장에서 쫓겨나지도 않았고, 백안시된 일도 없다. 그들 모두는 그들 조국, 그들 아파트, 그들 직장에서 그들 삶을 살았으며, 그들의 휴가, 그들의 우정, 그들의 사랑을 누렸다. 그들은 "공포의 사십 년"이란 표현으로 그들 삶을 오직 정치적 국면으로만 축소한다. 한데 과연 그들은 그 흘러간 사십 년 정치사를 정말 무차별적인 단 하나의 공포 더미로만 체험했을까? 포르만의 영화를 관람하고, 흐라발의 책을 읽고, 반체제적인 소극장들을 드나들고, 온갖 농담을 주고받고, 즐겨 권력을 조롱하며 보낸 세월들은 모두 잊어버렸는가? 그들이 하나같이 잃어버린 사십 년을 말하는 건 삶의 추억을 오웰화(化)해 버렸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들의 삶은 그들의 기억과 그들의 머릿속에서 가치를 상실해 버렸거나 완전히 말소되어 버린(잃어버린 사십 년) 것이다.

p. 347

죄의식을 부여할 수 없는 자들이 춤춘다


록이라 불리는(흔히, 그리고 모호하게) 음악이 이십여년 전부터 일상 생활의 음향 분위기를 온통 지배하고 있다. 이 음악은 20세기가 혐오스러워하며 자신의 역사에 구역질을 느끼던 바로 그때 이 세계를 사로잡았다. 자꾸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일치는 우연일까? 아니면 금세기 마지막 소송들과 록이라는 엑스터시의 이 만남에 어떤 숨은 의미가 있을까? 엑스터시의 아우성 안에서 금세기는 자신을 망각하고 싶은 걸까? 공포 속에 가라앉아 버린 자신의 유토피아들을 잊어버리고 싶은 걸까? 자신의 예술을 잊어버리고 싶은 걸까? 그 섬세함과 괜한 복잡성으로 민중을 자극하고 민주주의를 모독하는 예술을?


록이란 말은 모호하다. 그래서 나는 이 음악을 내 생각대로 묘사하는 편을 택한다. 우선 사람의 목소리가 악기들보다 우위에 있으며, 고음이 저음보다 우위에 있다. 강약법에는 콘트라스트가 없으며, 노래를 아우성으로 변화시키는 한결같은 포르티시모다. 재즈에서처럼, 리듬은 소절 두 번째 박자를 강조하지만 그 방식이 더 상투적이고 더 시끄럽다. ... 세기 전반의 유행가들이 가엾은 대중을 울린 (또한 말러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적 아이러니를 황홀하게 만든) 멜로디들을 지녔다면, 이 록이라는 음악은 그런 감상성의 원죄로부터 면제되어 있다. 이 음악은 감상적이지 않다. 엑스터시요, 한 순간의 엑스터시의 연장이다. 엑스터시란 시간에서 뽑힌 한 순간, 기억 없는 짧은 한 순간, 망각에 에워싸인 순간이므로, 멜로디의 모티프는 전개될 공간이 없으며, 단지 전개도 결론도 없이 그저 되풀이되기만 할 뿐이다.

...

엑스터시의 음향 이미지가 우리 권태의 일상적 장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를 어떤 광연(狂宴), 어떤 신비로운 체험에도 초대하지 않는 이 세속화된 엑스터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익숙해지라고, 그 특권적 지위를 존중하라고, 그것이 명하는 도덕을 준수하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엑스터시의 도덕은 소송의 도덕과는 정반대다. 그것의 보호 아래 이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한다. 이미 사람들은 누구나 유년기에서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마음껏 빨 수 있으며, 누구도 이 자유를 포기하려 들지 ㅇ낳을 것이다... 아무도 타인에게 귀 기울이지 않으며, 록을 춤추듯 모든 사람이 글을 쓰고 각자 자기 글을 쓴다. 혼자, 자기에 대해, 자기 자신에 집중하여, 그렇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동작을 하면서 말이다. 이 획일화된 자기중심주의 상황에서는, 죄의식이 더는 옛날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신선)

p.380

카프카의 유언. 법률적 의미로는 딱히 유언이라 할 수도 없다. 사실은 두 통의 사적인 편지다. 발송된 적이 없기에 진짜 편지라 할 수도 없다. 카프카의 유언 집행인 브로트는 친구가 죽은 후인 1924년에, 서랍에서 다른 서류 더미들과 함께 그 편지들을 찾아냈다. 잉크로 쓰인 한 통은 브로트의 주소가 적힌 채 접혀 있었고, 다른 한 통은 연필로 좀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 <소송> 초판 후기>에서 브로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 1921년, 나는 나의 친구에게, 내가 유언장을 썼으며 거기서 어떤 것들을 없애 버리고 어떤 것들은 재검토해 달라는 등의 부탁을 해 놓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카프카는, 나중에 그의 책상에서 찾아낸 그 잉크로 적은 쪽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나의 유언은 아주 간단하네. 자네에게 부탁하네만 모두 불살라 버리게.' 나는 그때 내가 한 대답을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 '(...) 자네에게 미리 말해 두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브로트는 이 추억을 ㅗ한기하며 자신이 친구의 유언에 따르지 않은 것을 정당화한다. 그는 이렇게 얘기를 계속한다. 카프카는 "내가 그의 단어 하나하나를 광적으로 숭배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그의 유언을 따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만약 그의 의사가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진심이었다면 당연히 다른 유언집행인을 선택했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확실한 일인가? 브로트 자신도 자신의 유언에서 카프카에게 "어떤 것들은 없애 버리라."라고 요구하지 않았는가? 또한 브로트가 자신의 유언대로 하지 않으리란 걸 정말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카프카는 1921년에 그런 대화를 나눈 후, 두 번째 편지를 연필로 써서 자신의 의사를 더욱 자세하고 분명하게 밝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