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소설보다, 산문집이 더 좋다. 비겁하고, 자신이 비겁하다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 비겁함을 버리지 못해 스스로를 싫어하는 그 마음이 나와 같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런 이유로 좋아하는 것이, 나에 대한 변명이자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도 이렇게 숨어드는데, 나라고 어떻게 매번 굳게 버티겠어? 하며 말이다.
뭐 누가 뭐라고 비난하든, 버티는 것이 힘이들 때 냅다 도망가버리고 싶노라고 말해버리는 그 솔직함이 나는 좋다. 도망가는 자들에게 비겁자라고 꽁무니에 손가락질을 해대고 욕하는 사람보다 낫고, 그렇다고 해서 아예 저들은 다른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체념해버리는 것보다도 낫다. 그게 나고, 그게 부끄러운 진실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쓴 글들이다 보니 옛사람다운 고리타분한 데가 있지만 그마저도 우리 할머니의 잔소리마냥 곱게 끄덕여 넘길 수 있는 정감이 있다. 잠결에 엄마 목소리를 듣는 듯, 노곤 노곤 하다.
p. 내가 한사코 혼자 살고 싶어하는 걸 보고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난ㄴ 순순히 외롭다고 대답한다. 그게 묻는 이가 기대하는 대답 같아서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너는 안 외롭냐? 안 외로우면 바보'라는 맹랑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이 오기를 어찌할 거나.
p.273 남들이 학벌 내세우기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나는 내가 시골 출신이라는 걸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에게 얼마만치 시골뜨기성이 남아 있느냐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요새는 아무리 두메 산골에 가도 외모가 시골뜨기인 사람은 많아도 내가 원하는 그 우직, 단순한 시골뜨기성이 내면으로부터 풍기는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다.
하물며 도시 한복판에서랴.
그러니까 내 시골뜨기성에의 그리움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 같은 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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