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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양자오] 자본론을 읽다


자본론을 읽다

저자
양자오 지음
출판사
유유 | 2014-10-04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100년도 더 된 철 지난 ‘과거의 유물’? 분단국가이자 반공 ...
가격비교



와우. 이분 뭔가 대박인듯.. 나란 아이를 이해하게 했어. 진짜 쉽게 잘 쓰인 책이다.

나는 도서관에 가면 북트럭에서 다른 사람이 보던 책을 빌려오는 걸 좋아한다.

이게 이번에 건진 책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익했다. 쉽기도 했고.


마르크스, 마르크스 주의 하면 유물론- 뭔가 딱딱한 느낌이었는데

책 내용 읽어보니 뭔가 인문학인문학 하네 인간미 넘치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줄은 몰랐다.

원전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저씨가 쓴 서양고전강의 시리즈 1권 2권을 찾아봐야겠다.

하나는 프로이트 꿈의 해석이던데.................wow


그나저나 손빠지는줄.. 너무 많네...  정리해놨다가 저작권 문제로 쇠고랑 차는 건 아니겠지






p.19.

고전의 내용을 '두세 마디'로 농축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학생들은 이 두세 마디로 고전을 이해했다고 여기게 된다. 이는 고전을 공부하는 데 바람직한 방법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고전의 가치를 파괴하는 가장 큰 죄인이 되는 지름길이다. 고전은 원전 전체를 읽어야 그 내용이 생생하게 경험으로 스며들 수 있다.


p.46.

미국-> 금연운동-> 건강 배상 소송으로 담배 제조사들에 25년 내에 2천억 달러가 넘는 돈을 배상하라는 판결

->담배 회사들: 해외 다른 국가들에서 적극적인 시장 공세를 펼치며 미국에서 지불한 배상금을 회수 중. 불과 4-5년 만에 제3세계 국가의 흡연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 흡연 연령도 낮아졌다.


p.60.

헤겔은 일련의 변화의 목적을 제시했다. 변화는 법칙이 있되 절대로 맹목적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더 원대한 안목으로 보자면, 헤겔은 우리에게 변화에는 방향과 목적이 있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변화의 근원은 일정한 힘이자 신비한 동력이다. 헤겔은 이를 '정신' 혹은 '초월적 정신'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정신' 혹은 '초월적 정신'이 신의 화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논리적으로 '정신'은 신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실에서 끊임없이 추구하는 원인, 더 이상 소급되지 않는 '최초의 원인'이다. 우주의 인과 관계는 여기에서 시작하지만 그 자체에는 결과만 있고 원인은 없다. '최초의 원인'에는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결과는 있고 그것을 만들어 낸 원인은 없어야만 세계의 인과 관계에 대한 우리의 역탐색을 끝낼 수 있다.


p.73.

마르크스가 관심을 갖는 것은 군중이 조직한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을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느냐 하는 문제다. 이 때문에 그는 어떤 사회 요소 혹은 힘이 사람의 '진실한' 삶을 저해하는지를 가장 열심히 분석했다. 그는 왜 자본주의를 죽도록 미워했던 것일까? 왜 그토록 비판적인 필치로 그 두꺼운 <자본론>을 썼던 것일가? 그의 철학적 시각에서는 자본과 자본주의가 인간의 '진실' 사이에 가로놓인 가장 커다란 장애였기 때문이다.


p.96.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자본론>이 경제학서이자 정치경제학서인 동시에 정치경제학 비판서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철학자는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라는 명구를 남겼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제학, 즉 보통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은 그저 이 세계에 대한 해석, 나아가 특정한 방향을 갖는 해석일 뿐이다. 경제학의 임무는 우리에게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것일 뿐, 경제학이라는 영역 안에서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해 줄 의무는 없으며 우리가 이런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의견을 내놓을 능력은 더더욱 없다.


이것이 바로 <자본론>이 현대 경제학자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현대 경제학자는 경제학에서 자랑스럽게 도덕과 윤리의 문제를 배제한다. 이 때문에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이 아마르티아 센에게 돌아가자 모든 사람이 그렇게 놀랐던 것이다. 센이 아주 오랫동안 줄곧 서양 경제학의 주변인으로 머물러 있었던 이유는 인도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경제학에 윤리적인 논의가 가득 차 있어 주류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학적 분석에 절대로 도덕 차원의 논의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센은 사람들에게 경제학에 윤리와 도덕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일개웠지만 마르크스는 정치경제를 분석하기 전부터 먼저 이상적이고 완벽하며 반드시 있어야 할 인간의 상태를 가정했다. 그리고 이를 모든 목표의 종점으로 설정하는 한편 분석과 토론의 기준으로 삼아 인류가 어떻게 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일관성 있게 사유했다.


p.106-107.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학의 기본 경향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본토가 파괴되지 않은 데다 전쟁으로 대량 생산 메커니즘을 자극받은 전후의 미국은 전에 없던 엄청난 풍요를 만끽했다. 미국인은 생산 공간의 대규모 확장과 단기간의 대규모 동원으로 이처럼 무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생산 메커니즘으로 생활 용품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수요만 조절하면 훨씬 큰 경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수요의 확대가 공급을 자극하여 또 다른 경제적 균형 상태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전시의 경험으로 미국 경제학자들은 전례없는 낙관적 견해를 갖게 됐고, 전후에 세상을 뒤집을 듯한 기세로 밀려드는 '수요 자극'과 '수요 창출'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조장하였다. 수요의 억제를 요구하거나 수요를 제한하여 유한한 공급에 적응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인위적인 방식으로 수요의 증가를 고무했다. 이는 대단히 극적인 관념의 전도였다.


확실히 몇십 년 사이에 우리의 생활에는 창조된 수요가 넘치게 되었다. 의학을 공부하는 한 친구는 오늘날 우리가 매일 목욕하는 행위도 '양의 기름과 인간의 기름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피부에서 수시로 기름을 분비하고 신진대사를 진행하는데도 오히려 비누로 자연스러운 유지를 씻어 버리고 온갖 방법을 궁리해 동물의 유지로 피부를 보호하려 한다며, 이것이야말로 공연히 일거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물었다....


p.112.

교환은 이런 관계를 파괴하고 변형시켜 원래는 계량화가 불가능한 가치를 억지로 가격 계량화 체계 안에 편입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물건의 교환 가치가 그 '사용 가치'와 같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비싼 물건일수록 더 유용하고 추구와 소유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착각한다. 이는 곧 우리 욕망의 '소외'이기도 하다. 우리는 더 이상 내재된 사용 수요에 따라 사물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 과정에서 발생한 가격이라는 외부 기준으로 사물의 가치를 결정한다. 상품이 되기 전까지, 사물은 우리와 대체할 수 없는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다...


'상품'에 관해 논의할 때 가격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는 서양 경제학과 철저하게 상반된다. 가격은 가치의 왜곡이며, 더 진실하고 기본적이며 '사용 가치'로 구축된 세계를 파괴한다. 가격은 물건을 '상품'으로 변화시키고 모든 물건을 빨아들여 '상품 체계'를 형성함으로써 모든 물건이 그 가격에 따라서만 서로 관계를 맺도록 한다. 이 때문에 상품 관계는 곧 사회관계다.


p.115.

하지만 돈은 아주 간단한 숫자로 모든 복잡한 비례 관계를 해결한다. 어떤 물건이든 일단 '상품'이 되기만 하면 곧장 금액으로 표시되는 판매 가격이 매겨지고, 이 물건과 다른 '상품' 사이에 설정되는 가격의 높고 낮은 관계도 일목요연해진다. 물건이 본래 가지고 있떤 각각의 교환 가치 비례는 일단 돈의 숫자 관계로 변하면 너무나 쉽게 고정되어 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판매 가격만 보고도 자신이 이 물건에 어느 정도의 욕망을 투사해야 하는지 아는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p.117.

우리는 모든 사물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고 필연적으로 가격으로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길들여져 있다. 우리는 가격에 포위되어 있고 욕망의 자주성을 배앗기고 있다. 마르크스는 이런 처지가 슬프다고 생각했다. 서양 경제학에서, 정가 15만 원짜리 손목시계를 보았을 때 사람들의 기본 반응은 어떤 요소가 이 시계의 가격을 15만 원으로 정하게 했을까 하는 것이다. 반면에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15만 원짜리 손목시계를 보았을 때의 기본 반응은 어떤 요소가 우리에게 이 시계를 욕망하도록 하는 것일까, 어떤 요소들이 열 근의 쌀이나 열 권의 책보다 이 시계를 더 갈구하게 하는 것일까, 이 시계에 이런 가격을 부여하면 우리의 원시적인 물아 관계에 어떤 왜곡이 발생하게 될까 하는 것이다.


p.120.

돈은 원래 사람들이 물품을 구매할 때 사용하는 도구였지만 '자본'이 된 뒤에는 거꾸로 돈이 사람을 사고 사람이 '자본'에 복무하는 노예가 된다.


이는 <씰낙원>의 이야기와 궤를 같이한다. 인간은 사악한 힘에 이끌려 원래 살고 있던 천국에서 벗어난 뒤로 한 걸음 한 걸음 더 타락하여 천당과 갈수록 멀어진다. <실낙원>은 종교적인 이야기지만 마르크스는 이런 구도를 빌려 인간이 끊임없이 타락해 가는 과정을 밝힐 뿐 아니라 모두가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으라고 격려하면서 모두를 속죄의 길로 인도한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소외' 이전의 원초적 상태로 되돌리려는 마르크스의 위대한 계획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소외'된 이후의 타락한 인간 세계에 익숙해져 있지만 마르크스는 이를 거부하는 동시에 사실은 타락한 인간 세계 밖에 더 순수한 존재 방식이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p.129.

<자본론>의 근본 문제는 자본을 운용하여 생산을 진행하는 시대에 창출된 재부와 인간의 자원을 누가 누려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누릴 자격을 분배해야 공평한가, 누가 좀 더 갖고 누가 좀 덜 갖는 것을 어떤 이유로 판단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기존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정리할 수도 없으며, 부와 자원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분배할 때 이처럼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현실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p.134.

공산주의와 마르크스 경제학이 사라지면서 중요한 관념 하나가 그들의 사회에서 함께 사라졌다. 다름 아닌 '소외당하지 않을 권리'다. 마르크스는 무엇보다 사람마다 착취당하지 않고 소외당하지 않을 기본권이 있다고 가정했고, 그의 경제학의 존재 목적은 경제학 분야에서 이 기본권을 보장하는 사유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p.136.

프락시스Praxis

'실천'


p.147.

오늘날 마르크스를 읽는 것은 모두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의 신도가 되어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로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를 때려 부수려는 몽상을 품으라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하나의 가능한 선택지로 보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의 오만한 독선에서 일어나는 편파와 사악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영국 역사학자 액튼 경의 이 명구는 사상과 이데올로기에도 적용된다. 어떠한 도전이나 질의도 받지 않고 절대 진리라는 권력을 가진 사상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끊임없는 검증과 개선 그리고 현실에 적응하는 움직임을 잃고, 어떠한 질의도 허용하지 않는 태도로 현실을 덮어씌워, 현실에 맞는 조정을 오만하게 거부할 뿐 아니라 도리어 자기에게 맞춰 현실의 왜곡과 변조를 요구하게 된다.


p.153.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은 '실낙원'식이다. 그는 모든 경제활동이 발생하기 전에 절대적인 이상 상태가 있었다고 가정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 생활의 모든 물건은 각각 독특하고 유일하여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방법도 없고 해서도 안되며, 교환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말한다. 모든 물건은 그 자체의 가치를 지니며 자체의 단위로만 평가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등가 교한'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 한 권과 식사 한 끼를 어떻게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신발 한 켤레와 영화 입장권 한 장을 어떻게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바다 풍경과 산책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p.158-159.

W-G-W, 상품-화폐-상품

<자본론>에는 '소외'라는 단어가 직접 나타나지 않지만 마르크스는 제 1장에서 먼저 G-W-G에 관해 논한다. G-W-G는 사실 '소외'이자 수단과 목적의 교란으로, 수단이 거꾸로 목적을 견제한다. 원래 중개의 도구인 화폐가 반대로 목적이 되고, 교환은 더 이상 '사용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화폐를 축적하기 위한 것이 되고 만다.


G-W-G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마르크스가 발견한 것은 경제 활동이 당연히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경제 활동으로 사회 전체의 사용 이익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 일부분, 심지어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사실 본말이 전도되어 화폐 가치를 높이고자 이뤄진다.


p.200.

마르크스는 노동자에게 '노동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현란한 주장이 여러분의 눈과 생각을 흐리고 있다. 여러분의 생각을 흐리는 것은 이 체계가 여러분의 생각을 조작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여러분의 머리를 냉철하게 함으로써 원점으로 돌아와 간단한 기본 원리를 확실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 기본 원리가 바로 '노동이 모든 가치의 근원'이다. 노동하는 인간, 생산하는 인간이 없다면 어떤 영역에서든 갗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는 깨뜨릴 수 없는 진리이고, 이 진리는 온갖 귀신의 유혹으로 가득한 어두운 밤중에 마음 놓고 길을 걸을 수 있게 해 주는 횃불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이처럼 간단한 원리로 가치를 평가하고, 이에 의지하여 시장 가격 및 '교환 가치'가 조성하는 혼란으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타인의 조작을 피할 수 있도록 교육하려 했다.


p.210.

정작 마르크스 본인은 '투쟁'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서로 다른 계급 사이의 투쟁은 그의 계급 사관에서 역사 변화의 주요 요소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그는 결코 '투쟁'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학을 구성하려 하지 않았다. <자본론>은 노동자의 경제학이자 노동자의 입장에서 출발한 경제 활동 분석이다. 노동자는 노동자 자신의 경제학을 가져야 한다. 자본가는 일찌감치 자본가만의 경제학을 갖고 있는 데다 이 경제학을 운용하여 노동자를 미혹시키고 노동자의 '노동 가치'를 찾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경제학은 자본가에게만 유리하다. 노동자가 이런 경제학을 받아들여 노동 가치에 대한 자본가의 정의를 순순히 인정한다면 '착취'는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고 결국 노동자는 '피착취' 상태에서 벗어날 기회를 잃을 것이다.


p.226.

임금 노동자는 이러한 노동의 감정을 잃는다.


p.234.

마르크스에게는 그런 현실 감각이 없었고 사회에 뛰어들어 강력하게 이러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행동을 기획하고 집행할 능력도 없었다. 레닌과 스탈린에게는 잔혹에 가까운 강력한 권력욕이 있었다. 하지만 레닌과 스탈린의 강렬한 권력욕으로 구축한 체제는 마르크스의 추상적인 이상의 특성을 절대로 보존할 수 없었다.


인간 세상에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의 공산주의 체제 수립은 이미 실패한 실험으로 드러났으며, 러시아에서 동유럽을 거쳐 중국에 이르는 이 커다란 비극 탓에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공산주의 천국의 수립을 꿈꾸지 못한다. 마르크스가 상상한 체제는 현실의 인류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고귀한 정신을 필요로 한다.

...

오늘날 우리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기에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는 더더욱 필요하다.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밖의 기준을 제공하여 우리가 그것으로 인생과 사회를 바라보고, 그 대조를 통해 자본주의라는 가치가 결코 유일하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준다.


마르크스 사상은 자본주의 체제가 사악한 심연으로 빠지는 것을 피하도록 돕는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마르크스 사상의 가장 실질적인 작용은 공산당이 집권한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를 실행하는 국가들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임금'이지만 19세기 영국의 노동자가 받던 임금과 오늘날 타이완 노동자가 받는 임금 사이에는 이미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야근 수당도 없었고 의료 보험도 없었다. 최저 임금 보장도 없었고 해고 수당도 없었다.

...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지적과 경고를 받아들여 많은 부분을 수정했기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끊임없이 수정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내부에도 칭찬할 만한 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보기에 100여 년 동안 자본주의의 발전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느리고 구불구불한 궤적을 그려 왔다. 한쪽에는 원래의 '소외'와 '비인간화'의 힘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마르크스의 경고를 들은 뒤 시스템 전체가 너무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걱정하면서 수정하는 힘이 있었다.


p.238.

마르크스의 사상은 언제나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의 의의는 무엇인가, 인간의 목적은 무엇인가 등의 철학적 문제에 기반을 둔다. 경제학의 영역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인간적이며 이제나저제나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 사상이다.


p.277.

계급의 입장에서 마르크스는 단호하게 노동자 편에 서서 자본가에 대항했고, 그 배후에는 항상 약자를 지지하는 보편 가치가 있었다. 이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려 비유해 보자.


대단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소설을 쓸 때, 항상 염두에 두는 일입니다. 종이에 써서 벽에 붙인 적이 없지만 제 마음속의 벽에 아주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건 이렇습니다. .....


그렇습니다. 벽이 아무리 옳고 알이 아무리 틀렸다 해도 저는 항상 알 편에 설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다른 사람들에게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시간과 역사가 결정할지도 모릅니다. 소설가가 어떤 이유를 위해서든 벽의 편에 서서 글을 쓴다면 이런 작가에게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벽이 옳고 알이 틀렸다 해도 그는 알의 편에 설 것이다. 벽이 알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자본가가 아무리 옳고 노동자가 아무리 틀렸다해도 마르크스는 항상 노동자 편에 서려고 했다. 자본가가 노동자보다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과 노력으로 그렇게 강해졌다. 단지 마르크스는 소설가가 아니라 철학자였으므로, 옳고 그름을 다른 사람에게 결정하도록 맡기지 못하고 결연히 노동자가 옳고 자본가가 그른 이유를 말해야 했다. <자본론> 전체는 이런 약자들을 위해 쓴 '변론서'다.


p.288.

이는 정말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다! 이런 문제가 마르크스에게도 발생했다. 마르크스의 이론 가운데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은 바로 마르크스 자신이다. 그는 노동자가 아니었지만 노동자보다 더 강렬한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고 노동자의 계급 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이것이 계급 의식과 계급 신분이 서로 분리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는 아닐까? 노동자가 아닌 마르크스가 노동자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면,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는 어째서 반드시 자산 계급의 의식을 지녀야 하고 반드시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계급의 차이를 끊임없이 확대하고 마침내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불러온단 말인가?


마르크스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설명한 적이 없다.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나 우리는 아주 쉽게 그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존재는 사회의 자각적인 계급 신분의 떠돌이가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지식인'이라고 통칭한다.

.....


그리고 이것이 마르크스의 심각한 실수다. 사실 그 자신의 노력은 직접적인 이익을 초월하고 계급 신분을 뛰어넘는 '지식인'이 필요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론에서 이 점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고 '지식인'에게 명확한 지위를 부여하는 데 인색했다. 그 결과 나중에 그의 이름을 걸고 진행된 공산주의 혁명은 철저하게 '지식인'의 개입권을 말살하는 사회를 조성했고, 무수한 공포와 왜곡의 비극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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