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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다니엘 지라르댕, 크리스티앙 피르케르]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저자
다니엘 지라르댕, 크리스티앙 피르케르 지음
출판사
미메시스 | 2011-04-10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사진의 법적, 윤리적 문제를 정면에서 포착하다 사진은 세상에 처...
가격비교

 

 

페이스북을 하다가 우연히 미메시스에서 이 도서를 할인한다는 문구를 봤는데 39000원 짜리를 무려 19000원에 판다고 해서 질러버렸다. 만구천원이라도 비싸긴 하지만 지난 달이 5주라 10만원을 더 벌어서(어쩐지 뭔가 더 돈도 모자라고 힘들었다 지난달은) 마음이 편해진 탓인가, '어차피 책인데! 2만원이나 할인하는데!' 하면서 주섬주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카드번호 따위를 작성해 넣는 내 손이 조금 떨리는 것도 같았지만 느낌 탓이겠지.

책. 매우 빳빳하고 굵고 뭔가 보고 있기만 해도 '이 책이 도서관 책이 아니라 내 꺼라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속부터 뿌듯해지는 느낌이 드는, 그런 책이다.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슉슉 하고 훑어 내리다가 인상깊은 대목을 발견했다.

 

그러나 갈 길은 멀었다. 위조가 성립하려면 사진이 예술 작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 인간의 지적인 개입이 없다고 자칭하던 사진의 기계적인 면은, 순수 예술로서 인정되는 뛰어난 솜씨의 수공 기법과 상반되었다. 마예르와 피에르송의 변호사는 소송 중에 이렇게 주장했다. <사진은 예술인가? 사진의 생사가 걸린 중대하고 심각한 질문이다.> 변호인은 사진이 예술이라는 주장을 옹호하면서, 화가를 예술가라고 부르듯이 <사진 예술가>라는 말을 내세웠고 사진가도 화가와 마찬가지 수법으로 사진을 제작한다는 점을 입증하려 했다. 베트브데르와 슈바베의 변호인은 이에 맞서 <26인 탄원서>를 내놓았다. <사진을 어떤 식으로든 예술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앵그르 같은 화단 인사들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변호인은 또 예술계가 사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묵시적 동의에 관해서도 증언했다. 피고 측 변호인은 어떤 독창성도 없는 사진의 자동적, 기술적 성격을 지적했다.

 

얼마 전 대한한공과 마이클케나의 솔섬 작품에 대한 저작권 침해 논란 기사를 읽었다. 마이클 케나라는 사진작가가 대한항공이 광고에서 사용한 솔섬 사진을 두고 표절이라고 소송을 건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소송에서 대한항공이 승소했다는 사실도 곧 알려졌다. 법원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풍경을 단순히 비슷한 구도로 촬영했다고 해서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이유는 여전히 사진이라는 장르가 차별을 받고 있다는 느낌때문이었다. 물론 실제로 저 솔섬이라는 곳을 저런 구도로 찍은 사람들은 꽤 있었다. 그 중에는 마이클 케냐처럼 전문 작가들도 있었겠지만, 그저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그 표절시비가 정당한가 아닌가를 차치하고서라도) 굳이 대한항공의 사진에 표절을 주장한 것은 그들이 광고라는 상업적인 활동에 사진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풍경이라는 것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고, 그래서 인간이 사진기를 가져다 대고 찍기만 하면 그대로 작품이 되기 때문에 이 논란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작가가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그 자리를 세 낸 것이 된 거냐?'라고 물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 논리에 따르면 모든 풍경사진 작가들은 작가로서의 타이틀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누군가 '작가'라고 불린다면 그것은 그만의 고유한 예술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는 일일텐데, 그 사람이 단지 수많은 아류의 엄마작품을 만들어낼 뿐이라면, 그 사람을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정말 자신의 사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걸까.

물론 요새는 보정들도 많이 하고, 풍경작가들은 취미로 삼는 일반인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에서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 좋은 사진을 찍기 때문에 쉽게 따라할 수 없으니 이런 걱정은 좀 오바다, 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원론을 비껴나가는 단순한 추측의 문제인 듯하다. 이미 이런식으로 판결이 난 마당에, 만약에라도 저런 일이 생긴다면 그는 꼼짝없이 자신이 힘들게 발견하고 찾아낸 자연의 아름다운 순간을 모두의 것으로 놓아주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은 자연을 독점한 것이 아니다.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독점하는 것과 자연을 독점해버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쳐버린, 그러나 자신이 발견한 그 순간과 그 순간을 담아낸 작품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지 자연과 장소에 대한 독점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린 아를의 풍경이라든지, 밀밭이라든지 비슷한 장소 그 구도를 두고 현대 작가가 그 모습을 그린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표절, 아니 너무 유명해져서 표절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을 것이고 패러디나 오마주 정도로 이해할 것이다. 그 풍경에서 달라진 것은 그림을 그린 사람의 손과 그 표현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그 작품의 파생작으로 평가받는 반면 사진은 그 대상이 풍경이란 이유로 그런 취급을 받지 않는다면, 이는 카메라를 예술도구로서 생각하지 않는 인식이 아직 많기 때문일 것이다. 솔섬의 사진은 사실 구도가 비슷할 뿐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또 색감이나 느낌 같은 것이 확연히 달라 이 판결을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있을 모든 논란들에 대해 "풍경사진에서 구도가 같다는 이유로 저작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못박아 버린 구절에 마음이 여전히 찜찜하다. 그럼 풍경사진에 구도를 빼면 대체 뭐가 남는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