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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영화

[설국열차] ★★★★★ 올해 개봉작 중에서 가장 좋은 영화를 보고 온 것 같다


스포 유유



봉준호 감독에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틸다 스윈튼, 존 허트, 제이미 벨, 고아성 등 출연

오늘 보고 왔는데, 올해 개봉작 중 가장 좋은 영화를 보고온 것 같다.


러닝타임 10분쯤엔 마르크스 노동자 혁명이 떠올랐다가 

40분쯤 되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느쯤엔가 가면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마지막 장면에선 고아성과 꼬마 흑인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뇌리에 총알을 박는 영화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래 종말영화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야지!" 였다.

<2012>나 <투모로우>나 대략 빙하기나 자연재해로 지구 종말을 앞두는 이야기인데

늘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일 뿐 별다른 감흥은 없다.

그러나 만화가 원작인 <설국열차> 는 달랐다.

(봉준호 감독은 이 프랑스 만화책 읽고 띠용 빠져서 판권을 사들이고 시나리오 수정 작업도 여러 번 거쳤다고 한다) 

재밌기도 정말 재미있었는데 역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잡는 특기..


빙하기로 인해 대부분의 인류가 사라지고 지구가 종말한 시기,

기차는 하나의 작은 세계이고 그 속의 사람들은 인류다.

틸다 스윈튼이 '총리'로 나오는데, 이 지위에서부터 알 수 있다.

그 작은 기차 안에서도 정치가 있고 이해관계가 상충한다.


(그녀의 연기는 멋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균형과 계획, 효율로써 관리되는 계급도 있다.

머리쪽으로 갈수록 윤택한 생활을 보장받고, 

기차의 꼬리쪽 사람들은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바를 먹으며 삶을 연명한다.

그리고 의문의 붉은 쪽지를 받은 꼬리쪽 사람들은 반란을 일으켜 기차의 앞으로 뻗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칸은 굉장히 재미있게도 (이 부분에서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사회의 다양한 기능들을 담당한다.

학교, 음식점, 수영장, 수족관, 과수원, 클럽, 사우나 등.

이런 상상은 어렸을 때부터 누구나 한번씩 하지 않나? 아무튼 정말 재미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열차의 끝까지 간 주인공 커티스는 

열차를 만든 윌포드의 '세계를 제대로 굴려나가기 위해서는 균형과 질서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심지어 반란조차 의도되어야 한다'는 지극히도 기능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생각에 약간 공감하는 듯 보이지만 

고아성이 뜯은 바닥 아래서 기계를 고치고 있는 흑인 어린아이 티미를 본 이후

그의 팔을 돌아가는 모터에 넣어 기계를 멈춰버린다.

그리고 송강호는 고아성을 시켜 열차의 옆부분을 폭파시키고 열차는 데굴데굴

굴러 떨어져 전복된다.



돌진하는 기차는 보통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돈, 자본이라는 엔진을 숭배하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자본주의 기차에 한번 올라타면

절대 멈출 수 없다. 끝을 향해 달릴 뿐이다.

그 속에는 정말 윌포드가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이, 심지어 인간조차

효율과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한, 가진 자들의 이득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로서 쓰인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그것이,

아이 낳는 기계와 바퀴벌레나 먹어치우는 쓰레기퇴치소가 되어버린 인간들로 보여진다.

머리의 조종 아래서는 심지어 사람들의 분노와 의지조차 조종당한다.



커티스는 앞으로 나가 마지막 엔진칸에 도착해 반란조차 머리쪽 사람들에 의해 의도돼

철저한 계산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좌절한다. 

하지만 송강호는 다르다. 그는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본다.

다른 사람들이 열차의 앞으로 가는 것에만 집중할 때

그는 창밖을 보고 달리는 열차 속에서 뛰어내릴 계획을 세운다.


우리의 모습이 겹쳤다.

사람들은 모두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이미 주어진 현실 속에서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뒤쳐지지는 말아야지"라는 생각만 갖고 앞으로만 돌진한다.

좀 더 나은 것을 갖기 위해, 좀 더 편한 생활을 하기 위해 체제 속에서 물고뜯는다.

하지만 송강호는 다른 것을 보았고 결국 기차를 전복시켜 새로운 세상을 찾아냈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기차의 옆면을 보고 한 

"다들 이게 벽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문이다"라는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송강호는 폭주하는 미친 기차에서, 선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사람이었고,

어떻게 보면 그의 생각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겨야 할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압권이라고 느낀 것은 마지막 고아성과 흑인 소년이 눈밭에 내려 눈을 밟는 장면이었다.

하얀 눈이 푹푹 들어가는 모습이 굉장히 한국적이었고 설원, 설국의 풍경도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의미있는 것은 마지막 보여준 인류 2명이 (실제로는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동양인 여자아이와 흑인 남자아이였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소수자라고 여겨질 수 있는 어린 유색인종 두 명을

인류가 살아나갈 마지막 희망과 출발로 제시한 것이다.

진짜 마지막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색감도 너무 예쁘고 설국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꼬리쪽과 머리쪽, 중간 열차들의 색채 대비가 인상깊었다.

 

좋은 영화였다.



이것은 설국열차 운행도와 탑승권!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