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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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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감사 감사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다른 누군가와 더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며안도를 느낀다. 내가 그 선한 양의 무리 속에서 늑대가 아니라는 사실에기쁨을 느낀다. 그들과 함께하면 평화롭고, 그들과 함께하면 자유롭다.그것은 사랑이 가져다줄 수도,빼앗아갈 수도 없는 소중한 것이다. 나는 창문과 대문을 서성이며그들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마치 해시계처럼무한한 인내심으로항상 너그럽게 그들을 이해한다.사랑이 결코 이해 못하는 것을. 언제나 관대하게 용서한다.사랑이 결코 용서 못하는 것을. 첫 만남부터 편지를 주고받을 때까지영원의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단지 며칠이나 몇 주일만 기다리면 된다. 그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성공적이다.음악회에 가도 끝까지 집중할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작은 별 아래서 작은 별 아래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우연이여, 너를 필연이라 명명한 데 대해 사과하노라.필연이여, 혹시라도 내가 뭔가를 혼동했다면, 사과하노라.행운이여, 내가 그대를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도, 너무 노여워 말라.고인들이여, 내 기억 속에서 당신들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진데도, 너그러이 이해해달라.시간이여, 매 순간, 세상의 수많은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데 대해 뉘우치노라.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 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라.벌어진 상처여, 손가락으로 쑤셔서 고통을 확인하는 나를 제발 용서하라.지옥의 변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여, 이렇게 한가하게 미뉴에트 CD나 듣고 있어 정말 미안하구나.기차역에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만일의 경우 Wszelki wypadek 만일의 경우 Wszelki wypadek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일어날 수도 있었어.일어났어야만 했어.일어났었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너무 가까이, 아니면 너무 멀리서,일어났었어, 너에게, 혹은 너를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너는 살아남았지, 맨 처음이었기 때문에.너는 살아남았지, 제일 마지막이었기 때문에.혼자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왼쪽으로 갔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갔기 때문에.비가 왔기 때문에. 그늘이 드리웠기 때문에.날시가 화창했기 때문에. 운 좋게도 거기 숲이 있었어.운 좋게도 거기 나무가 없었어.운 좋게도 철로, 갈고리, 대들보, 브레이크, 문설주, 갈림길, 일 밀리미터, 일 초가 있었어.운 좋게도 지푸라기가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렇지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기차역 Dworzec 낵 기차역 Dworzec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내가 N시(市)에 가지 않은 그 일은정확히 시간 맞춰 일어났다. 발송되지 않은 편지가네게 미리 예고를 해주었고, 예정된 시각에 너를 가까스로역에 오지 않을 수 있었다. 기차가 3번 플랫폼으로 들어왔고,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나의 부재(不在)는 인파 속에 섞여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황망함 속에서몇몇 여인들이 서둘러나를 대신했다. 그중 한 여인을 향해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이 달려갔지만그녀는 그를 알아보았다,그것도 당장에. 내 것이 아닌트렁크가 분실되었을 때,두 사람은 우리의 입맞춤이 아닌낯선 입맞춤을 서로 나누었다. N시의 기차역은'개고간적으로 존재하라'는 시험에훌륭하게 통과했다. 전체는 있어야 할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고,세부적인 사항들은 지정된 철로를 따라부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84p 87p 89p 121p 127p 171p 185p 187p 198p 199p 221p 287p 301p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Nic dwa razy 두 번은 없다 Nic dwa razy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여름에도 겨울에도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너는 존재..
[진은영] 단식하는 광대 단식하는 광대 진은영 얼마나 더여윈 가지 위에 올라야집요하게 흔들릴까 얼마나 더 높은 가지 위에 올라야집요하게 괴로울까 빽빽하게 들어선 침엽수림 위로 어둠이거대한 초콜릿바처럼솟아올랐다 - 2012,
[진은영] 그냥, 판도라 상자 그냥, 판도라 상자 진은영 너의 말이 낡은 소파에서 일어나 세상에서 가장 큰 기지개를 켜는 날이 있었지나의 말이 스텐 프라이팬에서 겹겹이 흩어진 양파처럼 희망의 냄새를 피우며 둥글게 구워지던 날이 있었지 우리의 말이 긴 속눈썹을 열고 부드러운 푸른 오솔길을 보여주던 날이 있었지빨간 스프링의 모가지를 가진 슬픔이 담장 너머로 튀어 오르던 날이,거대한 고깃덩이에서 기름을 떼어다가 미끄러진 도살장의 칼날 같은 말이,너와 내가 아주 모호한 거리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주고받은 말이 있었지 나는 그냥,망가진 몸의 상자로부터 뛰쳐나오는상자에 그려진 무섭고 익살스런 녹색 표정의 마지막 유령이나 되었으면아무 때나, 아무 곳에도 숨길 수 없는 - 2012,
[진은영] 세상의 절반 세상의 절반 진은영 세상의 절반은 붉은 모래나머지는 물 세상의 절반은 사랑나머지는 슬픔 붉은 물이 스민다모래 속으로, 너의 속으로 세상의 절반은 삶나머지는 노래 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 세상의 절반은 노래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 - 2012,
[진은영] 음악 음악 진은영 손바닥 위에 빗물이 죽은 이들의 이름을 가만히 써주는 것 같다너는 부드러운 하느님전원을 끄면부드럽게 흘러가던 환멸이돼지기름처럼 하얗게 응고된다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