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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면서 매력적인 ‘서울 속 서울’

잔혹하면서 매력적인 서울 속 서울

 

1970616일 서울시가 한수남쪽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강남 개발이 본격화한 지 40년이 지났다. ‘강남이란 이름을 둘러싼 아우라는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양하게 변모해 왔다. 당초 강남은 부동산 투기 열풍과 천민자본주의의 진원지였다. 강남의 윤곽이 형성된 1970~1980년대에 강남 원주민을 비롯해 초기에 땅과 건물을 획득한 이들은 엄청난 비율로 재산을 부풀렸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명품 매장 쇼윈도. 한국 자본주의의 쇼윈도인 강남은 쇼윈도에 어지럽게 비쳐진 풍경처럼 환상과 신기루를 생성하는 공간이다. |권호욱 기자

 

서울의 적자가 된 한국 자본주의 쇼윈도

이런 부가 축적된 결과 1990년대의 강남은 로데오 거리와 오렌지족이 대표하는 소비자본주의 문화의 대변자로 떠오른다. 고관대작들이 특혜 분양으로 입주한 아파트와 호화 백화점이 포진한 압구정동이란 동네가 지니는 매력과 위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이중성은 강남을 문화적 관심의 대상으로 편입시켰다. 그후 2000년대의 강남은 더 이상 비강남 시민의 진입이 불가능한 계급적 고착성을 지닌 곳이 되면서 기타 지역과 분리됐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와 비민주, 영남과 호남 등 기존 정치적 전선을 계급으로 변경시켜 탄생한 강남정권이기도 하다.

 

강남은 원래 산업화로 인해 갑자기 늘어난 중산층을 위해 만들어진 계획도시였다. <서울 600년사>에 따르면 1966년부터 1970년 사이에 증가한 서울 인구를 직업별로 볼 때 사무직이 94.3%, 전문직이 84.9%, 관리직이 56.7%나 각각 늘었다. 택지가 고갈된 강북을 대신해 이들을 위한 주거지를 조성할 필요성 때문에 만들어진 곳이 강남이었다.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 건설과 1970년 경부고속도로 완공에 맞춰 도로 주변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고, 영동과 잠실지구를 중심으로 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된다. 1970년 당시 개발진척도를 기준으로 강북과 73 비율에 그친 강남은 이후 서울의 적자로 떠오른다.

 

한국 자본주의의 쇼윈도인 강남은 지대 상승에 기반한 원시적 축적 단계의 자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문화와 경제가 결합한 후기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1992년에 나온 문화연구서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강내희 외 지음·현실문화연구)는 강남의 중심부인 압구정동을 자본주의적 야망과 탈자본주의적 욕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딜레탕트 측면과 아방가르드 측면을 동시에 지닌 문화적 공간으로 파악한다. 압구정동은 금전만능주의와 소비주의가 판을 치면서도 서구문화를 우리 식으로 수용한 청년문화의 진보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또 체제로부터의 일탈과 해방을 꿈꾸는 동시에 그런 욕망을 소비라는 자본주의적 방식과 외모·계급·성차 등을 중시하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표출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강남의 매력과 비애에 가장 먼저 눈을 돌려 대중의 관심을 끌어낸 이는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였다. 그는 두 번째 시집인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1)에서 압구정동 특유의 소비문화와 거기에서 느끼는 자신의 페이소스를 솔직하고 대담한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로서 강남의 존재를 증명했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사과맛 버찌맛/ 온갖 야리꾸리한 맛, 무쓰 스프레이 웰라폼 향기 흩날리는 거리/ 웬디스의 소녀들, 부띠끄의 여인들, 까페 상류사회의 문을 나서는/ 구찌 핸드백을 든 다찌들 오예, 바람불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저 흐벅진 허벅지들이여 시들지 않는 번뇌의 꽃들이여/ 하얀 다리들의 숲을 지나며 나는, 끝없이 이어진 내 번뇌의 구름다리를/ 출렁출렁 바라본다.”(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6’ 부분)

온갖 야리꾸리한 맛이 섞인 압구정동에는 구찌핸드백을 든 다찌’(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기생)들이 소비로 시름을 달래고, “심혜진 최진실 강수지 같은 황홀한 종아리를 지닌 그곳 여인들을 보면서 시인은 부정관(不淨觀, 아함경에 바탕을 두고 모든 육신은 더럽다는 것을 관하는 소승선의 방식)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숨막히는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그 종아리 가운데서 촌철살인적으로 다가오는 종아리 하나있으니 배나무숲을 노루처럼 질주하던 원두막지기의 딸이다.

 

압구정동 일대는 한창 나이의 시인을 유혹하는 거리에 그치지 않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기도 하다. 전북 고창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답십리를 거쳐 강남으로 이사를 왔다. 배밭이던 압구정동의 변모를 그는 이전벽해(梨田碧海)’라고 표현한다. 시 속에서 압구정동 원주민으로 별명이 양아치로 불린 그의 친구는 배()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학생주임의 눈을 피해 친구들에게 벌거벗은 금발 미녀의 꿀배 같은 유방이 나오는 <펜트하우스>를 팔았다. 시인은 바람부는 날이면 녀석 생각이 배맛처럼 떠올라 압구정동 그 넓은 배나무숲에 가야 했다고 회고한다.

 

시와 영화를 동시에 추구한 그는 박상우의 소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개작하고 자신의 시 제목을 붙인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란 영화로 입봉했다. 무협소설을 쓰면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주인공은 여자 친구 소영과 배우 혜진 사이를 방황한다. 그는 또 고교 시절의 추억을 바탕으로 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를 만들었다. 강남 개발 초기의 살풍경을 흙바람 부는 썰렁한 벌판과 학교 내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형상화한 이 영화는 개발시대 강남의 풍경을 직설적으로 보여 준다.

 

개발 초기 살풍경 <말죽거리 잔혹사>

강남 개발 초기의 살풍경을 학교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그려낸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주인공 현수(권상우 분)는 갓 개교한 정문고로 전학을 온다. 이곳은 교사의 폭력과 학생 사이의 폭력이 난무한다. 현수는 열혈 이소룡 키드라는 공통점 때문에 학교짱인 우식(이정진 분)과 친구가 된다. 하굣길 버스 안에서 이들은 올리비아 핫세를 꼭 닮은 여학생 강은주(한가인 분)가 깡패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것을 구해 주고, 이를 계기로 각자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학교짱을 놓고 우식과 경쟁하던 종훈은 비열한 방식으로 우식을 꺾는다. 결국 우식은 학교를 떠나고 현수도 그의 단짝이었다는 이유로 거센 압박을 받는다. 여기에다 은주가 우식의 연인이 된 걸 안 현수는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소룡의 쌍절곤 무술을 맹렬히 연습한 그는 옥상에서 종훈과 한판 붙고 학교를 떠난다.

 

강남이 소설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다. 문학사로 보면 민주화·분단 등 거대 담론에 경도한 리얼리즘 시대를 지나서 개인의 내면과 체제로부터의 일탈을 구가한 1990년대 문학을 거쳐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한 천착이 이뤄진다. 그 선두에 선 작가는 정이현이다. 첫 번째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와 두 번째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에서 정이현은 계산적이고 위악적인 면모, 되바라진 언사의 주인공을 통해 강남 출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소녀시대’ ‘삼풍백화점이 대표작이다.

 

고무줄이 헐렁하게 늘어나고 누렇게 물이 빠진 면 팬티는 말하자면, 나의 마지막 보루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되는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반포의 27평형 주공아파트를 통해 강남에 입성한 주인공이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야기다. 22살인 는 차가 없는 의대생 상우와 맹하지만 은색 투스카니를 몰고 다니는 민석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의 꿈은 강남 언저리를 맴도는 엄마의 삶, 허울만 좋은 중소기업 임원의 아내로 백화점 세일 때 허접한 옷 골라 사 입고 문화센터 노래교실에 다니는 걸로 여유를 찾는것과는 달리 진짜 강남 주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미국 로스쿨에 다니는 진지한남자와 사귀게 된 는 마지막 보루인 처녀막을 무기로 10가지 매뉴얼에 따라 그와의 정사를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그러나 혈흔은 보이지 않고, 남자 친구는 무감동하게 루이비통 백을 던져 준다.

 

솔직하고 거리낌 없는 강남 여성의 심리

강남의 화려한 생활 뒤에는 그것을 떠받치는 이들의 수고가 있다. 사진은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의 한 밸릿 파킹 주차원 대기소에서 대리주차원들이 차량을 기다리는 모습.

소녀시대의 주인공은 더욱 어리고 영악하다. 16살의 는 수도권 국립대학 교수이면서 채팅을 통해 어린 여자를 만나는 아빠와 부잣집 딸이지만 머리는 텅 빈 엄마를 냉소하면서 독립을 꿈꾼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남의 아파트를 통해서다. “미도아파트 5585, 저번 달보다 2천만원 올랐다. 진짜 미쳤다. 그 돈을 깔고 앉아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살다니.” ‘는 엄마 아빠가 죽으면 집을 팔아서 남자 친구 용이 오빠에게 빨간 포르셰, 민지에게 오피스텔을 각각 선물한 뒤 외국으로 뜰 생각을 하고 있다.

 

남자 친구 용이는 명동 카페의 알바생으로, “왠지 모를 강북 필이 나고 스타일도 구리다는 친구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사귀는 중이다. 베스트 프렌드인 민지만이 강남, 강북 그런 게 무슨 상관이니? 너희들은 진짜 사랑을 몰라라며 를 옹호한다. 오로지 차에만 관심 있는 용이는 에게 아빠의 지프 렝글러를 몰래 가져오라고 조른다. ‘는 아빠 삐삐에서 애인 깜찍이의 존재를 알고 그녀를 만나는데 갓 스물을 넘긴 그녀가 임신 중절할 돈이 없다고 하자 야동을 찍어 돈을 준다.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갈등하던 민지는 끝내 유학길에 오르고, 용이와 는 납치극을 벌여 부모에게 돈을 뜯어낸다

 

정이현의 주인공은 철저히 체제에 순응하고 전통적인 성 역할을 내면화하기보다 전략적으로 이용하며 강남을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특색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가 1인칭으로 풀어내는 강남 여성의 심리는 솔직하고 거리낌이 없다. ‘소녀시대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이 아저씨 시대보다, 할머니 시대보다 짱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런 쿨함의 뒤끝은 늘 고독하고 허무하다. 그런데 삼풍백화점에 오면서 그는 강남이란 신기루의 허약한 토대에 눈을 돌린다.

 

이 작품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소재로 한다. ‘는 취업준비생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제도권 바깥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비교적 온화한 중도우파의 부모, 슈퍼 싱글 사이즈의 깨끗한 침대, 반투명한 초록색 모토롤라 호출기와 네 개의 핸드백을 가진 중산층이다. 삼풍백화점에 들렀던 는 우연히 강북의 여고시절 동창인 R를 만난다. 여성복 매장에서 일하는 R는 친해지면서 학교 주변 R의 자취방 열쇠까지 받는 사이가 된다. R의 부탁으로 하루 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나는 계산 실수로 어떤 년이야란 욕설을 들으면서 백화점 점원의 생활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후 취직이 된 R와 점점 멀어진다. 그러던 어느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R가 행방불명된다. 이 사고에 대해 한 여성 명사는 신문 칼럼에 호화롭기로 소문났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대한민국이 사치와 향락에 물드는 것을 경계하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글을 싣는다. ‘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그 여자가 거기 한 번 와본 적이나 있대요? 거기 누가 있는지 안대요?”라고 울부짖는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고,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어둡다. 강남은 그런 이중성을 지닌 곳이다. 문제는 골짜기와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영국노동자계급의 상태>란 저서에서 19세기 중엽 맨체스터의 사례를 들었다. 산업 중심지로 발전해 가던 맨체스터에서 활동하는 부르주아지는 노동자들을 몇 년 동안이고 보지 않고 지낼 수 있다. 노동자 거주 지역과 부르주아지가 일하는 상가가 철저히 격리됐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는 쾌적한 교외에 살면서 맨체스터로 출근하며, 출근길은 노동자 거주 지역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 있다. 서울 강남, 나아가 재개발이 진행되는 서울 전체가 맨체스터와 비슷한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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