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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창고 N

내 책을 만드는 사람들

자신의 책을 쓰는 일은 이제 은하계의 별처럼 요원한 일이 아니다. 기존의 출판 관행을 벗어난 소자본 독립 출판으로 본인의 생각과 경험을 출간한 사람도 있고, 전문 작가의 유려한 문체는 아니지만 세계 일주를 하며 느낀 감상과 얻은 지혜를 소박하게 엮어낸 부부도 있다. 내 책을 만들겠다는 오랜 꿈을 실현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Step 1 독립 출판의 세계

독립 출판이란?
독자 위주, 시장 위주의 기존 출판 관행에서 벗어나 작가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글을 쓰는 것부터 인쇄, 홍보, 유통까지 출판의 전 영역에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반 대형 출판사는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즉, 상업적 목표로 책을 만들지만, 독립 출판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펴내고 싶은 내용을 출판할 수 있다. 현재 매년 400~600종의 독립 출판물이 발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에서 독립 출판 서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대신 서울 홍대 앞에 위치한 ‘유어마인드’나 ‘헬로 인디북스’, ‘별책부록’, 대학로 ‘이음 책방’, 용산 ‘스토리지 북앤필름’, 성북동 ‘오디너리북샵’ 등 전국에 38개 정도의 독립 서점을 위주로 유통되고 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의 저자
회사원 정인성씨가 말하는 독립 출판 A to Z



1 책을 쓰게 된 계기
우연히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별책부록’이라는 독립 서점을 방문했을 때다. 책장을 빼곡하게 채운 책들 중 내가 아는 도서는 단 한 권도 없었다. 소위 ‘B급 정서’가 물씬 풍기는 ‘마이너’한 주제의 책과 잡지를 보고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기존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솔직하고 다양한 콘텐츠는 멋진 신세계였다. 독립 출판을 통해서라면 내 책을 내겠다는 오랜 꿈을 이룰 수 있겠다 싶었다. 그날부터 퇴근 후 글쓰기를 시작했고, 정확히 3개월 뒤 나는 작가가 됐다.

2 독립 출판의 과정

주제 선정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주제가 분명해야 한다. 당시 스물아홉 살이던 나는 서른을 목전에 두고 20대를 기록하고 또 추억하고 싶었다. 군 시절부터 읽었던 모든 책들을 간단하게 개인 홈페이지에 기록해둔 게 좋은 글감이 됐다. ‘의미 있는 20대를 보내게 해준 15권의 책’이라는 부제를 정한 뒤 리뷰를 다듬어가며 글을 써내려갔다.

편집 포토샵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책을 편집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어도비에서 나오는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책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독학으로 공부해 내가 원하는 대로 글과 사진을 배치했다. 책의 크기를 정한 뒤 표지와 내지를 어떤 종이로 할지 재질도 선택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혼자 감당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독립 서점에서 진행하는 수업 듣기를 추천한다.

인쇄 인쇄를 하기 위한 파일은 만들었는데, 어디에 맡기면 좋을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독립 서점에 찾아가 진열된 서적들을 찾아보니 몇 군데 인쇄소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인쇄소는 서울 을지로와 경기 파주 부근에 많다.

유통 세 달 뒤, 드디어 책이 탄생했다. 만족할 만큼의 완성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다. 이후 독립 서점에 납품을 하면 되는데 문턱이 그리 높지 않다. 먼저 점장님들께 메일 등으로 자신이 출간한 책에 대한 소개와 입점 제안 등을 보내면 웬만하면 입점이 가능하다.

3 총제작비

사업자등록 관련 비용+몇 잔의 커피 값+인디자인 관련 책값+인쇄비(500부)=합계/총 150만원 미만


Step 2 세계 여행을 책으로 엮은 부부

신혼집 전세 계약을 해지해서 세계 여행 경비를 마련한 부부. 모두가 바삐 앞으로 가는 세상에서 우리만 반대로 걸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밀려들 때가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인생에 단 한 번 태산 같은 배짱을 부리겠노라고 호기롭게 결정했으니, 이왕이면 이 경험을 책으로 엮어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한 달에 한 도시」의 저자
김은덕·백종민 부부가 말하는 여행 서적 출판하기

1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여행 컨셉트를 찾아라!
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여행 코너에 있는 에세이란 에세이는 모조리 읽었다. 수많은 여행 서적 가운데 돋보이기 위해서는 여행의 주제 자체가 특별해야 했기에 공을 가장 많이 들였다. 현지인의 집을 빌려 숙소로 사용하는 ‘에어비앤비’는 당시 뜨고 있는 여행 트렌드였지만 놀랍게도 관련된 책이 전무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박비를 줄이고 한 달 동안 한 도시를 깊게 경험하고 오는 것으로 주제를 정했다.


2 가치관이 맞는 출판사를 컨택할 것
출판사 컨택은 정말 중요하다. 눈여겨봤던 책을 출판한 회사 몇 군데에 전화를 했다. 거대 담론을 설파하는 곳보다는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는 곳이 좋을 것 같았다. 이전에 ‘카우치 서핑(현지인의 집에서 무료 숙박을 하는 것)’ 관련 책을 출판한 곳에서 관심을 보여왔다. 유럽, 남미, 아시아 세 대륙을 여행한 기록을 각각 1권씩 출판하기로 계약했다.

3 여행 중에도 마감 시한은 반드시 지킬 것
마침내 시작된 여행. 현지에서 매주 여행 주간지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한 주마다 각자 2편씩, 총 4편의 글로 한 회분의 주간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1년 동안 52권의 주간지를 발행했고, 2년간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때는 100호를 채웠다. 아무리 피곤해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마감은 지켜야 하는 거라고 서로에게 약속했기에 2년 동안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 없었다. 서울에서는 일기조차 쓰지 않던 두 사람이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글을 쓰기 위해 내 자신을 쥐어짜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눈물 콧물 짜가며 타이핑을 했더니 언제부턴가는 글을 쓰지 않으면 빚쟁이가 된 기분마저 든다. 이제는 비로소 글 쓰는 일에 익숙해졌다.


4 여행의 증거물은 필수
어떤 형태의 기록이든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하지만 비주얼 시대, 사진과 영상은 필수다. 한 달에 한 도시만을 느긋하게 여행하다 보니 타성에 젖어 게을러질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우리를 이끌어준 게 ‘기록하는 일’이었다. 피곤해서 널브러져 있고 싶다가도 사진을 찍고 쓸거리를 찾기 위해 고된 몸을 일으켰다.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썼지만, 마지막에는 주객이 전도돼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5 여행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
“특별한 사람만 글을 쓰는 건 아니에요. 우리 모두는 필자가 될 수 있어요. 개인 홈페이지, 블로그, 페이스북 등 SNS는 우리의 글을 게시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죠. 아날로그 시대에는 신문이나 단행본이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없었고, 기자가 되거나 작가가 돼 직업인으로서 글을 쓰는 방법뿐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원하면 누구든 글을 쓸 수 있어요. 평생 글을 써본 적 없던 저희는 요즘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뭔가를 쓰면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표현은 좀 과장일까요? 그런데 정말로 내면에 잠재돼 있던 글에 대한 욕망이 깨어나기라도 한 듯해요. 물론, 아직 여행 작가라는 수식어는 조심스럽고 또 부담스럽습니다. 저희처럼 평범한 소시민도 벌써 두 권의 책을 냈으니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보세요!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