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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영화

[조정래, 김보경] 파울볼



파울볼 (2015)

WONDERS 
9.2
감독
조정래, 김보경
출연
김성근, 조진웅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87 분 | 2015-04-02


그 어떤 야알못이라고 해도 이름 한번쯤은 듣고도 남을 김성근.


요즘의 한화를 두고 말이 많기도 하고,

평이 워낙 극단적으로 갈리는 감독이라 찾아봤다.


아버지같은 스승, 감독이 아닌 선생

이런 쌍팔년도식 사제관계가 가질 극단적 장점과 극단적 단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설같은 존재랄까.


김성근 리더십이라는 건 확실히 내스타일은 아니다.


물론 이런 다큐를 본다거나, 그의 전설적인 과거 행적들을 읽다보면

감동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고양원더스와, 그가 만들어낸 선수들과 그 노고에는 '야신'이라는 칭호를 붙일 만하다.


그렇지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내가 널 키워내겠어' 하는 방식이 가지고 있을 폭력성이다.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독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에게는 독이 될.


중간에 한 선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내 생각을 가지고 했다가 한번 그만두고 다시 돌아와서는 내 모든 걸 내려놓고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했더니 감독님이 가르쳐주시는 게 몸에 흡수가 되더라. 감사하다"

는 식의 발언이었던 것 같다.


위에서 아래로, 무조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하는 가르침은

각자의 개별성을 없애버리고 좌절시킨다.

박정희와 비교하는 건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70년대의 우리나라 성장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런 이유.


물론 김성근은 선수 하나하나를 아끼고, 그런 마음에서 힘든 훈련을 시키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그 단결력, 성공의 이면에는 사실 보이지 않는 폐해도 많을 것이다.


특히나 고양 원더스의 경우,

독립구단의 오합지졸의 선수들을 모아 선수로서의 기틀을 잡고 성장시키는 데에는

이런 스파르타 식의 훈련이 꼭 필요했을 것이고

그랬기 때문에 선수도 코치도 그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들도 감동했던 거지만


이미 프로에 가 있는 선수들을 상대로도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그건 좀 문제가 아닌가싶다.

프로라면 어느정도 실력이 입증된 선수들일 것이고,

당장 포스트시즌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수의 야구생명이 아닐까.

그 '야구생명' 때문에 김성근 감독이 고양 원더스 선수들을 그만큼까지 키워낸 거고.


정말 좋은 스승이라면 가르치는 제자에 따라 교육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양 원더스의 제자들에게는 빡센 훈련이 필요했고,

지금 한화의 선수들에게는 물론 승리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오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당장 혹사시킨 그 투수가 지금의 무리로 일찍 방출되고 은퇴하게 된다면

고양 원더스에 모였던 선수들,

뛰고 싶지만 뛰지 못하는 그런 선수가 야구계에 한 명 더 생기는 건데.

닫힌 앞문은 확 열어제끼고 뒷문만 막으면 뭐하나.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이입이 안 됐다.

나는 좋은 시기에 만나는 좋은 스승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살아오며 좋은 선생님을 몇번 만났고, 지금도 늘 감사하지만

항상 나의 중심까지 넘기지는 않았다.

같은 선생님 아래 있었다고 모두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후회가 없다.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내 삶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하고 선택도 내 스스로 해야만 한다.


좋은 스승에게 모든 자리를 내어놓고 무조건 따르는 것은 모두에게 좋지 않다.

최근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교사 4명의 여학생, 여교사 성추행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권력이었다.

그 교사는 학교에서 유명한 입시상담가였고, 모두가 대학 입시에 불이익을 얻을까 쉬쉬했던 것이다.


여교사들이 교장에게 몇 번 얘기했으나 교장도 사건을 묵살했단다.

가장 놀랐던 것은 신고자 주변 여학생들의 반응.


신고한 피해자 여학생이 요즘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어차피 곧 수능인데 너만 조금 참았으면 모두가 피해볼 일은 없었다는 거다.

성공, 승리을 가져다줄 그 '스승'이라는 권력의 아래에서는 이런 일도 벌어진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제도고 체제다.

고양 원더스 같은 독립구단들, 제 2의 기회가 부재한 스포츠계의 현실

프로가 되지 못하면 바로 사회 낙오자로 추락하는 수많은 청춘들.


문제는 야신 김성근 같은 좋은 선생의 부재가 아니라

이 청춘들의 추락을 받아낼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현실이다.

이런 사회적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고

구단들과 kbo, 정부가 나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해피앤딩.


요즘 하도 청년 복지 청년 복지 하는데 그 차원에서

이런 독립구단들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게 되면 좋겠다.

요즘 케베스에서 하는 청춘 fc도 떠올랐다.


이 영화가 거기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았겠지만,

'야신' 찬양에 중심 축을 두고 흘러가는 전개가 좀 아쉽다.

개천용과 개천용을 만들어낸 인물을 칭찬하는 것도 마땅하지만

중요한 것은 뒷부분에 짧게 언급되었던 제도 부분일텐데.


무튼 그래도 보고나니까, 김성근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뚝심 있는 좋은 스승이자, 멋진 감독이다.

단지 내 마음까지 울리지는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