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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미술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 거대서사 1부 전시를 보고 나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한국현대미술-거대서사1>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물론 그 중에서는 아직 일본식 서양화풍을 지니고 있는 작품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한국전쟁 이후 한국적 색채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들 또한 많이 생겨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크게 ‘원형의 흔적’, ‘지상의 낙원’, ‘집단적 정체성’, ‘집단의 분화’의 네 소주제로 나누어져 있는데 먼저 첫 번째 소주제는‘원형의 흔적’이었다. 이 소주제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은 윤명로의 <문신64-1>이다. 이 작품은 1964년 제작되었으며 린넨에 유채와 회반죽을 사용하였다. <문신64-1>은 작품은 바라보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굳어있는 물감들, 그러나 그들은 나름대로의 질서를 가진 채 대칭적으로 존재한다. 계속 바라보고 있자면 사람의 흉상이 떠오르기도 했다가 마침내는 뭉크의 <절규>처럼 절규하는 한 사람의 핏빛 얼굴이 튀어나온다.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그 질감과 피를 연상시키는 짙은 색감은 그가 무언가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무엇에 대한 문신일까. 문신이란 살갗을 바늘로 찔러 먹물이나 물감으로 글씨, 그림, 무늬 따위를 새긴 것을 의미한다. 먼저 앵포르멜이 추구했던 그림은 어떤 특정한 주제를 담고 있기보다는 그저 새기는 것, 그대로 굳는 것이었다. 그들은 비정형성을 추구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결과보다는 그 행위나 과정을 중시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그림 자체는 물감과 색채, 조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문신이 된다. 또한 이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전쟁의 아픔이란 절규와 피의 문신으로 남았다. 그의 작품에서는 살갗을 찔러내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새기는 고통, 한국인의 삶에 새겨진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어 ‘지상의 낙원’에서는 1970년대 산업화, 역사화 등이 나타났다. 정창섭의 <을지문덕 살수대첩>이나 김태훈의 <행주대첩>과 같은 역사화들이 이 시기 많이 등장한 한편 하인두나 신학철 같은 작가들은 <고전의 율>과 <하늘소> 같은 작품들을 통해 고전의,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해냈다. 김구림이나 하종현, 최명영, 이강소 등의 작가들은 삽이나 용수철 등 독특한 소재를 사용해 모던한 작품을 많이 작업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강소의 <아담과 이브 이후> 작품이 강한 충격을 주었는데 이 작품은 1971년도 작품이라기에 너무도 현대적이고 자극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작품에는 남성과 여성의 형상이 나타난다. 남성은 엉덩이와 손, 다리가 잘린 채 유리 밖에 붙어있고 여성의 형체는 붉은색 물질 속에 잠겨 있는데 판넬에 붙어 있는 전구가 특히 눈에 띈다. 작품의 제목으로 유추하자면 이 둘은 각각 아담과 이브 이후의 남성과 여성을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구약성서 속에서 이브가 선악과를 탐한 이후 인간은 순수함을 잃고 그 결과 세계에 악이 만연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남성의 몸은 흰색으로, 피처럼 붉은 물질 속에 잠긴 여성의 몸은 검은색으로 표현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여성에게 원죄를 덮어씌우고 붉은색으로 낙인을 찍고, 남성들이 규정한 이미지로서 여성들을 규정하는 경우는 비단 과거의 성서에서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또한 여성들은 때때로 남성들이 규정해놓은 틀에 갇힌다. 이렇게 남성이 절대적인, ‘신적인’ 색일 수 있는 흰색으로 자신을 치장한 채 여성이 옴싹달싹 하지 못하게 누르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은 그래서 어딘가 폭력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특히 전구, 판넬과 합쳐져 그 속의 여성은 마치 하나의 상품과 같이 느껴지고 이 속에서 검은색 몸을 한 여성은 붉은 물질에 잠겨 아무런 저항의식도,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 김구림은 독특한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인 <삽>은 마치 마르쉘 뒤샹의 <샘>을 연상시키는데, 그는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재인 삽을 가져와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제목은 <삽>이지만 전시된 삽은 사용할 수 없다. 삽의 앞부분이 깨져있기 때문이다. 전시 중 그의 또 다른 작품 중에 <현상에서 흔적으로>라는 사진 작품이 있다. 그는 1970년대 자신이 개울가 옆 땅을 불로 태워 만들어낸 대지미술 작품을 찍기 위해 개울가와 그 주변을 촬영하였는데 그로써 그는 잔디를 태우는 행위를 행위, 즉 현상을 흔적으로 남기게 되었다. 이에 더 나아가 그것을 ‘사진으로 찍는’ 행위 자체도 그 제목과 닿아있을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당시 주변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과 개울물의 움직임, 공기의 흐름이라는 현상은 그의 ‘사진을 찍는’ 행위로 인해 한 장의 흔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인 <삽>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의 작품 속 삽은 현상을 내포하고 있는, 현상으로 변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사물이었지만 작가가 그것을 전시시키고, 또 앞부분을 깨뜨려 놓음으로서 흔적으로 변화했다. 삽의 정의는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는 데 쓰이는 연장인데 만약 그것이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는 데 쓰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연 삽인가? 그의 <삽>은 삽이지만 동시에 삽이 아니다. 


  세 번째 소주제인 1980년대 ‘집단적 정체성’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민중미술’이 등장한다. 민중미술이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나타나 민중을 주체로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의 삶과 행동을 주제로 하는 미술을 주창했다.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안창홍의 <가족사진>은 1982년도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괴하다. 가족으로 보이는 세 사람은 가면을 쓴 것 같기도 하고 사진 위에 누군가 고의적으로 유령처럼 그들의 영혼을 삭제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남자의 한 손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손과 발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언가를 하거나 말하는 존재가 아니다. 1982년도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2년 뒤로 당시는 전두환 정권의 제 5공화국 시기였다. 안창홍은 작품을 통해 영혼과 온기, 움직임이 사라진 가족을 표현함으로써 당시 사회의 억압과 암담한 민중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해체된 가족과 영혼이 사라져버린 피폐한 개인들을 그려낸다. 그는 그의 또 다른 작품 <봄날은 간다>에서도 낡은 흑백 사진을 사용했는데 이 작품은 1995년부터 시작된 사진연작이다. 그는 인화지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해 노란색의 배경과 중간 중간에 나비 이미지를 넣었는데 이 때의 작품 또한 물론 애잔한 느낌과 죽음, 상실감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가족사진>보다는 한층 밝아진 느낌이다. 그의 작품에는 아름다웠던 과거, 가족 공동체의 해체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마지막 주제인 ‘집단의 분화’에서는 1990년대 시점이 다양하게 분화된 한국미술을 조명한다. 90년대 이전까지 여성은 마치 정물처럼 좌상으로 그려지는 경우 외에 미술의 주체나 혹은 주제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여러 다양한 주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성미술, 이주민미술 등 사회적으로 소수인 이들의 시각을 다룬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윤석남의 <어머니 3-요조숙녀>는 정말 유명한 작품이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작품을 보는 순간 그 무거움과 불편한 감정이 이미지로 다가왔다. 무표정한 듯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며 마치 칼을 쓴 듯 무거운 나무판을 지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한 번도 그들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던 관람자에게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이렇게 나무재료의 사용과 슬픈 듯, 슬프지 않은 듯 미묘한 작품 속 어머니의 표정을 사용해 사회에서 그저 당연하게 아줌마 또는 어머니로 여겨졌던 모든 여성들을 작품과 의식의 가운데로 끌어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