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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영화

[더리더:책읽어주는남자] ★★★★ 진실과 법, 사랑과 욕정, 양심과 거짓 사이의 책장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영화



오늘은 뭐가 있나 보다.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고른 영화 두 개에 전부 나치 얘기가 나온다.

거의 5시간 내내, 눈으로 보고 생각할 수 있었다.


영화는 진실과 법, 사랑과 욕정, 양심과 거짓 사이의 날카로운 경계를 줄타기하듯 넘나든다.

욕정으로 시작된 둘의 관계는 사람들에게 지탄 받을만 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이었고

법체계 속에서 사실만을 말하고 누명까지 써 살인죄라는 주홍글씨가 찍힌 그녀는

그녀로 인해 형량을 줄여보려 거짓 증언을 하는 다른 피고들보다 양심적이었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가?

혹은 이 곳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할 수는 있는가?

"유태인 중에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진 않겠지만요"라는 말처럼

교육과 안락한 가족을 제공받았던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던 피해자의 딸과

가족도 없고 글도 읽지 못해 계약서의 내용을 모른 채 선을 그리듯 서명을 해야 했던 한나.


한나는 어떤 일인지 모르고 친위대에 지원해 유태인들을 학살한 살인마가 되었지만

과연 판결대로 그녀만이 살인을 저지른 죄인일까.

300명의 사람들을 모두 죽인 것은 그녀일까.

폭격기는, 폭격하라는 지시를 내린 사람은, 전쟁을 벌인 사람은, 그 아래 침묵하고 동요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무죄일까? 나는, 무죄인가?

피해자의 딸은 한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에도 한나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나가 죄없는 유태인들을 죽음의 방으로 몰아넣었다는 표면적인 사실만에 집중한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그녀는 가해자가  사실은 또다른 피해자임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살인마 한나는 부끄러워했고, 스스로 판단했다.


아, 글을 읽지 못하는 한나가 그 사실을 알리는 것보다 차라리 무기징역을 택할 때.

삶 따위에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꺾지 않을 때.

옥살이를 하는 중에서도 글자를 배우기 위해 귀로 들어 한 글자씩 익혀 갈 때

누구보다도 멋지게 느껴졌다.


너무나 당연시 여겼던 '글'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좋은 영화였다.


요새 법대 교수님 수업 들어서 그런지 '법'과 '진실'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되는데

이 영화 또한 내게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케이트 윈슬렛 연기 잘 한다.

그런데 할머니 돼서도 목소리는 그대로인데

왠지 일부러,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