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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천정환, 김건우, 이정숙] 혁명과 웃음

 

총 사백 몇 페이지인데, 한 한신가부터 읽기 시작해서 다 읽고 나니까 다섯시 반.. 미친 줄 알았다. 나란 녀석은 이렇게 조금만 시간이 남으면 낮과 밤을 바꿔 버린다 휙휙. 어쨌든 김승옥이 1960년 봄에서 1961년 봄 까지 <서울경제신문>에 그린 4컷짜리 시사만화 <파고다 영감>을 통해서 그 시기 핵심적이었던 정치 이슈나 사회상을 쭉 따라가는 책인데, 굉장히 재밌었고 뭐랄까, 상식 차원에서 내가 너무 무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아무래도 60년대에 태어난 부모님 정도만 되어도 이 시기의 일이 적어도 이해랄까, 상상이라도 되겠지만 사실 머릿속에 박혀있는 기억의 시작이 90년대를 훌쩍 넘은 어느 시기부터인 나는, 그간 '뭔 일이 있었다' 따위의 글 한 문장 가지고는 이 시기의 생활이라든지, 불안감이라든지, 하는 게 제대로 이해되지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미디어 책도 그렇고 이 책도, 그 시기의 모습들을 쉬운 문장들로 꽤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특히 내가 들어온 수업들이나 정규 교과과정에서도 60년대부터 61년, 이 사이의 일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다뤄졌었기에 더 흥미로웠던 것 같기도 하다. 보통 4.19에서 독재로 향하는 작고 썩은 징검다리 정도로만 여겨졌달까,  이렇게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책을 읽은 건 처음이라 내가 너무 멍청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간, 흥미로웠다.

정치적인 내용 외에도 김승옥은 참 사회를 살아가는 약자들, 서민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는데 그런 만화들과 또 신문에 실린 짧은 기사들을 보니 예전에는 비록 못 살더라도 정이 있고 양심이 있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기사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한 여성이 배를 굶다 못해 상점에서 물건을 훔쳤는데, 훔친 물건을 팔아 그 돈으로 밥을 먹고 나니 양심에 찔렸더란다. 그래서 남은 돈이라도 가져다 주려고 상점에 들렀다가 경찰에 신고되었다고 한다. 참 뭐랄까.. 도둑질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요즘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