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타디스 창고/문학

[알랭 드 보통] 불안



불안

저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2-01-0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파헤친 불...
가격비교


우리는 모두 불안의 손아귀 아래 살아간다. 불안은 도처에 잠복해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방심할 때쯤 튀어나와 차갑게 웃으며 훈계한다. "정말 그정도로 괜찮겠어?" 우리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다시 달린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언니가 4월 초에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일본에 간단다. 길어봤자 몇달 여행하는 거겠지 싶어 물어봤더니 웬걸, 1년을 다녀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해서 먹고 살며 정신 차리고 온다고. 사회가 규정해놓은 인생 시간표에서, 특히 여성에게 기준점이 되는 30이란 나이에 단지 '정신차리고 오겠다'는 이유로 훌쩍 떠날 수 있는 그 여유가 무지 멋졌다. 내가 본 언니는 솔직하고, 봤던 영화를 영화관에서 몇 번이나 다시 볼만큼 영화광이며, 이것저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흔치 않다. 나만해도 그렇고, 내 친구들, 친척들도 그렇고, 가장 가까이의 내 가족도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의 기준을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을 내맡긴다. 정확히 이 책이 말한 그대로다. 나를 예로 들자면 일자리를 갖게되지 못할까봐 두렵고,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그게 변변찮을까봐 두렵고, 예쁜 사람들 앞에서 주눅든다. 누구나 지니고 있을법한 이러한 불안의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전부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련된 지위적인 불안이라는 점이다. 일자리를 갖지 못해도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면 그걸로 됐고, 일자리가 변변찮더라도 내가 즐기기만 하면 좋다. 예쁜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나의 가치를 절대 낮추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왜 불안해하는가? 왜 끊임없이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가? 그 '앞'이란 방향은, 과연 내가 정한 게 맞을까?


 알랭드 보통의 <불안>은 사회, 특히 능력주의의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지닌 불안감의 정도를 이전 계급사회의 그것과 비교하고 불안의 역사와 시대적 특징을 분석해낸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가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과 인정에의 욕구 때문이다. 사랑에 조건이 붙을 때는 항상 괴롭다. 공부를 잘 하는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날씬하고 완벽하게 아름다워야만 남자친구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어느 정도의 부의 수준을 갖추고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대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강박에 휩싸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송곳같은 아파트 사이로 숱하게 떨어지는 아이들은 그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 좌절한 피해자며 서울의 주요 역마다 줄줄이 늘어서있는 수많은 성형외과들과 발목까지 내려오는 모피코트를 입고 아파트 단지를 활보하는 할머니들, 굉음을 내며 달리는 스포츠카는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거대한 피켓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은 우리의 삶을 좀먹는다. 이것이 진정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사회의 기준에 맞춰 필수 퀘스트를 하나하나 완성해가고, 필수 아이템을 모으는 삶은 절대 자신의 것일 수 없다. 돈, 명예, 아름다운 얼굴 모두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중요시 여기도록 주입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조건들을 만들어 낸 건 신이 아닌, 그저 시간이 가면 바뀌는 사회의 주류일 뿐이다. 책에 따르면 시대, 사회마다 그 기준이 모두 달라졌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게 나의 욕망은 사실, 나의 욕망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제니홀저의 작품.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범람하는 욕망과 불안 속에서도 작가는 이 불안감이 극복 가능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이 강요된 불안을 벗어나기를 추구했던 사람들로 보헤미안들을 꼽는다. 보헤미안들은 속세의 지위나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틀에 박히지 않은, 스스로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것을 의미있다고 여기는 비범한 사람들이다. 사회에서 규정한 조건들의 자신의 가치를 맞추려 이리저리 불안해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는 현재와 스스로의 의지, 예술이 중요하다. 그들은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매 시간 다른 사람들에 좋든 싫든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기는 힘들다. 때문에 어떤 시대든 지위의 조건이 유행처럼 존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하지만 적어도 삶의 가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불안들이 진정한 나를 어떻게 좀먹어 가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변화를 시도할 가치가 있다. 사회에 휩쓸리듯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이 가치 있는 혹은 가치없는 삶인지, 어차피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한번 뿐인, 밀란쿤데라에 따르면 '완성작 없는 첫번째 리허설'과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고민해야 한다.

 

작가는 어떤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것이 많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내 가치를 드높이지는 못한다. 보들레르의 시구처럼, 시인이 걸을 수 없는 것은 큰 날개 때문이다.

 

 

'타디스 창고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보윤] 오즈의 닥터  (1) 2014.04.03
[한유주] 얼음의 책  (0) 2014.04.03
[하성란] 식사의 즐거움  (0) 2014.03.28
[팀 파호드] 경제학 콘서트  (0) 2014.03.28
[하성란] 내 영화의 주인공  (0) 201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