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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만일의 경우 Wszelki wypadek


만일의 경우 Wszelki wypadek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일어날 수도 있었어.

일어났어야만 했어.

일어났었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너무 가까이, 아니면 너무 멀리서,

일어났었어, 너에게, 혹은 너를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너는 살아남았지, 맨 처음이었기 때문에.

너는 살아남았지, 제일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혼자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왼쪽으로 갔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갔기 때문에.

비가 왔기 때문에. 그늘이 드리웠기 때문에.

날시가 화창했기 때문에.


운 좋게도 거기 숲이 있었어.

운 좋게도 거기 나무가 없었어.

운 좋게도 철로, 갈고리, 대들보, 브레이크,

문설주, 갈림길, 일 밀리미터, 일 초가 있었어.

운 좋게도 지푸라기가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발을 움직여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할 수도 있었어.

우연의 일치에 좌우되는

불과 한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 안에서, 일촉즉발에 오차 내에서.


그래서 넌 지금 여기에 있는 거니?

가까스로 열린 찰나의 순간에?

그물에 뚫린 단 하나의 구멍, 그리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버렸니?

난 놀랄 수도, 침묵할 수도 없어.

자, 귀 기울여봐,

네 심장이 내 안에서 얼마나 빠르게 두근거리는지.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