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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영화

[라이프 인 어 데이] 영화 life in a day를 보고.

2011-2학기 희곡의 이론과 분석 


‘극적인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2006년 한참 유행이었던 UCC, 그리고 일반 인터넷 사용자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수정, 보완되는 ‘살아 움직이는 사전’ 위키피디아. 이 둘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과 타임지가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바로 'YOU'를 지목한 것은 다른 맥락이 아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전문 지식이나 영상, 예술 등 본래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던 분야가 지금은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놀이의 장으로 변했다는 종류의 이야기는 이젠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하고도 당연한 것이 되었다. 과거 전문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던 분야들은 제작 과정에 있어 많은 지식과 노력, 그리고 제작자의 지식적, 사회적 권위가 필요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영화 한 편을 만들거나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영화나 연극, 책을 보고 항상 무언가를 위에서 아래로 ‘배우거나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Life In A Day>는 이와 좀 다르다. 감독은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전지전능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저 편집자로서 존재한다. ‘FILMED BY YOU'를 핵심으로 삼는 이 영화는 2010년 7월 24일 하루, 전 세계에서 331명이 직접 찍은 영상으로 이루어진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이 영화는 우선 기본적인 영화의 형식상 특성을 상당히 많이 벗어난다. 대부분의 영화나 연극들이 몇 군데의 한정된 공간을 정해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데 반해, <Life In A Day>는 공간과 등장인물에 있어 매우 개방적이다. 공간으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 등 전 세계를 넘나들고 있으며 같은 장소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등장인물들도 이에 맞추어 전 세계인이다. 그리고 331명이라는 많은 숫자의 인물들 모두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이는 전통적 극, 혹은 영화의 특성과 매우 다르다. 일반적으로 영화나 연극의 경우는 등장인물이 한정되어 있고, 그 속에서 주연과 조연은 나누어져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에서는 대개 등장인물의 행동이 연기보다 사실에 가깝긴 하지만 그러한 영화에서도 주연과 대략적인 줄거리는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기에 이 영화와는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영화의 특성 상 산발적으로 흩어진 각각의 영상들은 특이한 형태의 편집을 통해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꼬리 물기 형식’이라 설명할 수 있다. 각 장면은 최소한의 공통적 연관성을 통해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독특한 편집 방법은 영화의 특성과 주제를 나타내기에 매우 적합하다. 영화는 단순한 UCC의 연결로 인해 전 세계의 다양한 얼굴과 삶이 사실은 얼마나 비슷하게 일상적이거나 비일상적인지, 또 이를 통해 일상적인 사건들이 영화가 될 수 있고 그 사소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위에서 이야기한 바대로 형식적인 측면에서 다른 영화들과 차이를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내용적 측면으로 들어가 보면 영화의 내용은 전통적인 극의 형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확히 나누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극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기본적 틀은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을 나누는 기준인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에서 아침은 출생으로, 밤은 죽음에 비유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중요한 테마들이 다루어진다. 그들의 아침은 용변과 세수, 아침밥으로 시작되어 출근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태어나서 여러 놀이와 일을 하게 되고 자라면서 많은 일들(생애 처음으로 면도를 배우거나 아픈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일 등)을 겪게 된다. 점심이라는 인생의 중반에 다다르면 삶의 가장 중요한 테마들이 등장한다. 이 중에는 운동, 여행, 통일(평화)이 있으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랑이다. 이 사랑에는 아픈 엄마를 사랑하는 가족 간의 사랑도 있으며, 결혼 50주년 언약식을 치르는 영국 노부부의 사랑도 있고, 할머니에게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하는 한 남성의 동성애도 포함되어 있다. 저녁으로 들어설 즈음 가난, 싸움, 갈등, 총, 싸움 죽음 등 인간이 무서워하는 것이 인생의 위기, 절정으로 등장한다. 인생의 해질녘,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서로 광적으로 싸우기도 하며 질병으로 인한 불안감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와 같은 불안을 이기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영화의 마지막에 제시한다. 영화는 ‘하루 종일 좋은 일, 특별한 일 따위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내가 여기에 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나는 내일을 기대한다’라는 한 평범한 여성의 독백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마지막 대사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대사에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희망’이 담겨 있으며 이 이야기를 통해 모든 연관성 없는 각각의 UCC 영상은 하나의 줄로 연결된다.

CNN으로부터 ‘인류 역사상 최고의 타입캡슐’이라는 평을 받은 영화 <Life In A Day>는 역사상 최다 인원이 참여한 영화이며 인간의 삶의 여러 중요한 테마들을 아침-점심-저녁이라는 일상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틀에 맞추어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감독은 전 세계 60억 인구 모두가 이 영화 속에서는 주연 배우이자 감독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우리 삶의 조각이 감동과 극적 요소들을 지닐 수 있음을 맛깔나는 편집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2010년 7월 24일의 세상을 하나의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극적 영상으로 묶었다는 의의를 넘어 ‘영화적’이거나 ‘극적인’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폭탄이 터지는 테러 이야기나 할아버지 곁에서 평생을 일하다 죽은 누렁소의 이야기만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본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도 극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여자의 대사처럼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별로 대단한 일도, 흔히 말하는 ‘극적인(갈등과 긴장이 있고 놀랍고 재미난)’ 일 따위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극적이지 않은 이 작은 부분들이 모여, 또 그 작은 부분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들이 모여 하나의 극적인 컨텐츠를 만들어 낸 것이다. <Life In A Day>는 이러한 측면에서 주제, 형식, 극에 대한 관점을 하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고 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