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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글

어제 겪은 일

 

난데없이 생리가 터졌다. 며칠 전부터 배가 꽁냥대는 것 같아 예상하고 있었기에 특별히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엉덩이에 핏자국을 남긴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지하철에 서있지 않을 수 있게 집에서 터져준 자궁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생리 때가 되면 아랫배 부분이 묵직한 게 별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스물스물, 침대로 기어 들어가 핸드폰을 한 손으로 높게 쳐들고 드라마를 봤다.

 

두 편을 연달아 보고 나니 좀 졸렸다. 게다가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 같잖은 자소서를 쓴답시고 봉사에 빠진터라 이번 토요일만은 지각하지 말아야 했다. 조용히 일어나 불을 끄고, 침대로 뛰어들었는데 느낌이 쎄했다. 배는 묵직하고 머리는 가벼웠다. 그리고 그 요상한 느낌이 바로 어제 나의 잠을 망쳐버린 미친듯한 생리통의 서막을  알리는 종소리였던 줄 어제, 그 때의 나는 몰랐다.

 

가까스로 몸을 다잡고 누웠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왔다. 누가 내 아랫배를 누르는 것도 같았지만 그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절대. 그거슨 누군가 내 자궁의 안쪽에서 칼로 바깥 가죽을 찌른 느낌이었다. 마침 닥터후를 보고 난 터라 어떤 외계 생물체가 내 뱃속 안에 들어가 칼로 내 자궁을 찌르고 그걸로 외부와 교류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미친 생각까지 들었다. 차라리 칼을 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 칼은 계속 꼽혀있었다. 어.젯.밤. 내.내.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파서 난 눈물이기도 하지만 외로워서 눈물이 났다. 내가 만약 막내였다면 확 울어젖혀 엄마 아빠 누나들까지 몽땅 불러모으겠지마는 나는 이제 23살이나 먹은 늙은 아기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지않나. 대신 나와 항상 붙어다니는 베프격의 핸드폰을 쥐어들고 '엉엉 나 배가 아파' '엉엉 배가 아파서 눈물 난다' 따위의 문자나 지껄이고 다시 배를 문질렀다. 새벽 2시의 문자에 답해줄리 없었다. 그리고 그 때 동생이 샤워하고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구세주! 내 방은 화장실 바로 앞에 있다.

 

내가 거의 기다시피 해서 방문을 열고 눈물로 탱탱 불어터진 눈으로 동생을 올려다보니 동생은 날 보고 깜짝 놀랐다. 동생이 놀라고 날 토닥토닥해주니 더 눈물이 났다. 제대로 말도 못하며 어버버 배가 너무 아파 생리통 오늘 내 방에서 같이 자자 으허엉 눈물 통곡 따위의 말을 짐승처럼 뱉어냈던 것 같다. 동생은 머리만 털고 곧바로 내 방으로 왔고 배에 가지런히 두 손을 올린채 완벽한 1자 모양으로 누워있는 나를 보며 "언니 어떡해 ㅠㅠ"라며 안타까움에 찬 말들을 쏟아냈다.

 

근데 이상한게, 동생의 걱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잠이 왔다. 잠이 안 와 엄청 고생했었던 게 억울할만큼 잠이 갑자기 쏟아졌다. 그래서 나는 "아냐 괜찮아 이제 잠이 올 것 같아 이제 나가도 돼"라는 배은망덕한 말을 지껄이고 동생이 떠난 뒤 정확히 2초만에 잠든 것 같다. 동생아 미안. 아마 배가 아픈 것보다는 아픈데 혼자인게 서러워서 잠이 안 왔나보다. 대체 내 몸은 언제쯤 철이 들까.

 

아침에 일어났더니 여전히 배는 아프다. 하지만 머리는 완전히 정상이다. 근데 배는 아프긴 하다. 근데 울지는 않는다. 외롭지도 않다. 그런데 밤에만 왜 이렇게 징징이가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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