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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영화

[리차드 링클레이터] 보이후드



보이후드 (2014)

Boyhood 
8.7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출연
엘라 콜트레인, 에단 호크, 패트리샤 아케이트, 로렐라이 링클레이터, 엘리야 스미스
정보
드라마 | 미국 | 165 분 | 2014-10-23


삶은, 한 편의 영화다.


삶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있고, 영화에서처럼 큰 결절점들이 있어 우리는 지금도 그 사이를 수많은 '순간'들로 메우며 살고 있다. 어설픈 신인 배우인 우리는, 매 순간 뇌로부터 주어지는 작은 쪽대본을 들고 당장의 하루하루를 연기해나간다.


삶은 한 편의 영화지만 영화와는 다른점도 있다. 영화는 몇 번이고 재촬영이 가능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이미 순간을 놓친 이상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재차 다시 연기한다 해도 그것은 또 다른 새로운 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삶은 재촬영이 불가능한 한 편의 리허설이다. 카메라 앞에 처음 서 본 배우와 메가폰을 처음 잡아본 감독이 헤매며 만들어내는 한 편의 리허설. 매 순간은 새로운 신이다. 나는 처음으로 그 신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서툴게, 드문드문 헤매며 스크린을 채운다. 인생에 범퍼는 없으므로.


한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12년동안 촬영된 이 영화는 그러므로, 나의 삶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은유다. 어떤 감독과 어떤 배우, 그리고 얼마의 제작비가 주어졌는지의 여건에 따라 바뀌는 영화처럼, 그 작은 부분만 변화할 뿐 우리 모두의 삶은 결국 이 영화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메이슨을 살았거나, 살고 있거나, 살 예정이다.


한 소년이 자라 청년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일들, 그 안에서의 나의 모습, 엄마와 아빠, 내 동생들, 내 친구들, 내가 좋아했던 일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한 사람의 인생은 이 모든 것과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관계로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중요한 세계다. 마치 영화가 보잘것 없는 나란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네 인생도 그렇게 의미없지는 않았어."


나의 소년기. 지금은 뭉뚱그려 '어렸을 적'이라고 통째 지칭해버리곤 하는 그 시기의 나도, 나름대로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다. 나름대로 힘든 일도 많이 겼었으며, 나름의 고민도 많았다. 그 나이대 아이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겪기도 했으며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근거없는 자존심을 겨드랑이에 끼고 인생을 다 아는 것 마냥 행동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실은 그 시기를 '나의 소년기'라고 뭉뚱그려 얘기해버릴 수 없다. 그 시기는 3분 예고편 클립으로는 절대 설명될 수 없는, 3시간으로도 부족한 엄청난 순간들의 합산이므로.


"순간을 붙잡으라는 말이 있잖아,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해.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거지. 시간은 영원하잖아 늘 지금이 순간이 되는거지."


그렇게 자란 수많은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어른이 된 소년들은 이제 또 어떤 신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을까. 영화를 보며 또 나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떤 다음 장면을 기획하고 있으며 나라는 배우는 어떤 장면을 연기하려 하고 있나. 감동이 있는 다큐도 좋고, 로맨스만이 철철 흐르는 뻔한 영화도 나쁘지 않지만, 일단 예측 불가능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미셸 공드리의 영화처럼, 모든 관계들이 특별하고, 마치 꿈처럼 이상하게 튀어오르고,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어 장난스런 설렘으로 다음 순간을 기대하게 되는 그런 영화. 그런 삶을 살아내고 싶다.


영화를 보고 바로 닥터후 시즌6 크리스마스 특집을 이어서 봤는데 우주의 표지인지 이런 장면을 봤다.


백작이 얼어있는 여자를 보고 말한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야." 그러자 닥터가 말한다.

"내가 지금껏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는데,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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