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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애거사 크리스티] 딸은 딸이다


딸은 딸이다

저자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출판사
포레 | 2014-05-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랑하는 자식과 사노라면 늘 마음속에 희미한 초조감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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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엄마는 아빠보다 훨씬 각별한 존재다. 엄마에게 딸이 그렇듯. 물론 아들도 같은 자식이지만, 같은 성별으로서 한 사회에서 겪는 일들을 공유한다는 것은 꽤 강한 동질감과 유대감을 준다. 내가 살아왔던 삶을 그대로 살아갈 것이므로, 알려주고 싶은 것도, 토닥여주고싶은 것도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사실 영향을 받은 걸로 치자면 나는 엄마보다는 아빠를 더 닮았다. 생김새도 그렇고 성격까지도. 가장 자주 싸우게 되는 것도 아빠와 나고, 집안에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부딪히는 것도 아빠와 나다. 내가 읽어온 책들, 공부했던 것들 모두 아빠의 영향이 컸으며 심지어 고등학생 시절, 나의 입시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빠였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살아온 과정을 따져보면 나는 아빠에게 더 각별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맞지만, 꼭 그게 컴퓨터 돌리듯 되지만은 않는가보다. 아빠가 나와 더 닮았기 때문에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성별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감정의 지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항상 아빠보다는 엄마가 나를 더 잘 이해해준다. 20살 때 만난 고딩 동창 남자친구를 오픈했었는데, 아빠는 그 자체를 너무 싫어해서 엄마와 연애얘기를 할 때면 혼자 방에 들어가버렸다. 대학 다니는 내내 외박, 여행 허락을 받아내는 것은 거의 전쟁이었다. 처음부터 풀어주면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할 것 같았다고 이후에 아빠는 자신의 행동에 변명했지만, 4년 넘는 기간동안 이해받지 못해왔던 앙금이 말 몇마디로 풀릴리 없다. 뭐, 분명히 지금은 아빠도 많이 변했고, 그래서 동생은 나보다 편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5년을 피터지게 개기고 깨져온 나는 기본적으로 지금까지도 아빠는 나에 대해 50%도 이해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떤 어른은, 모든 딸은 아빠의 첫사랑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더 소중히 하고싶고 빼앗기기 싫은거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그 말도 참 우습다. 첫사랑은 덜익고 서툰 풋사랑일수밖에 없다더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빠는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는 알지 못한 것이다. 물론 내가 많은 사랑을 받아왔고, 아빠가 나를 길러온 방식은 대체로 합리적이고 옳았으니 감사해야 하는 것이 먼저지만, 그동안 내가 느꼈던 단절감 때문에 자꾸만 울컥 하는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반면에 엄마는 항상 나를 이해해주었다.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 정도는 해주었다. 나와 아빠 사이에서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중재자이자 나의 조력자였다. 연애에 있어서도, 뭐 대상을 싫어한 적은 있었다 해도 상황 자체를 부정하려하진 않았다. 여행 허락을 받으려 할 때도 늘 내 편에 서서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것은 물론 마음 약한 엄마의 원래 성격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엄마도 나와 같이 엄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스물 다섯, 엄마가 아빠와 결혼했던 나이가 되었고, 내년이면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가 된다. 사람 일은 모른다지만 그래도 언젠간 나도 결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아이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그 아이의 엄마가 되겠지. 엄마가 곁에 있다면, 엄만 그 기간 내내 옆에서 그렇게 본인이 겪어왔던 인생을 따라 밟아가는 나를 바라보고 이것저것 알려줄 것이다. 겪어보지 못한, 남자의 삶을 살아가는 엄마의 두 아들에게는 그만큼의 동질감을 느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 책의 내용이 이런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며 엄마와 딸에 대해 생각했다. 나와 우리 엄마에 대해 생각했고, 엄마와 외할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찾아줘>도 그렇듯, 그렇게 국적을 떠나 딸에겐 엄마가, 엄마에겐 딸이 각별한가보다. 각별함 외에도 이 두 책은 모두 엄마의 '희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물론 주제의식은 완전 다르지만. <엄마를 찾아줘>는 완전 한국식 주제다) 특히나 우리 세대보다 엄마 세대가 안타까운 것은, 이 책에서도 지적한 대로 '희생'을 강요받은 세대였다는 것이다. 자식을 위하여 참고,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물론 희생이란 미덕이지만 부작용이 따른다. 피해의식. 이 책에서처럼. 


그러니까 드라마 부모님들 단골멘트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말이 나오는가보다. 그 앞에는 (내가 이런것까지 희생하며) 라는 괄호 속 속마음이 있을거다. 내가 이런 희생을 해서 너를 키웠으니 너는 이정도는 해줘야하지 않겠니- 하는 논리. 그리고 그 바라는 것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는 피해의식이 분노로 변하게 되겠지. 아마 울아빠도 그런 마음일까. 이렇게 키워놨는데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기진 않을까 혹시나 저런 일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30살 이후 아빠의 인생은 가족으로 꽉 차있었을 테니까. 그것이 참 감사하면서도, 이제는 아빠도 좀 더 성장할 시간이 왔다는 생각을 한다. 어른이라고 성장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지. 나를, 그리고 나의 선택을 믿고 조금은 아빠 삶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 엄마도 마찬가지고. 물론 일단 셋째도 입시중이고 막내까지 있어 그러기 쉽지 않겠지만.....


두근두근하게도, 내가 만약 엄마가 된다면 나는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친구나 애인이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나의 100%를 의지할 수 없듯이, 혹은 그러면 안되는 것처럼 내 삶을 아이로 가득 채우지도 않을 것이고 그 아이의 삶을 나로 가득 채우게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을 하게 두고, 그것이 설령 내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만 아니라면 원하는 것을 좇을 수 있게 늘 지지할 것이다. 그렇게 좋은 어른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