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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
유시민 지음
출판사
생각의길 | 2013-03-1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힐링에서 스탠딩으로,멘붕 사회에 해독제로 쓰일 책자유인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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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참 잘 쓴다. 때가 없고 깔끔하다.

문장만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들도 많다.


지난 날의 인생과 관련해서는이것저것 말이 많은 사람이지만,

꼭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싹이 난 감자맛' 사랑을 알고,

가족을 사랑하고, 아내를 아끼고, 주변의 수많은 약한 생명을 사랑하는 어른.


남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고

실패를 실패라고 담담히 인정할 수 있으며

피섞이지 않은 수많은 자식들을 위해 나의 고집과 이기심을 내려놓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는 사람.


작가가 원하듯, 나도 그렇게 죽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거리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죽은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땅에 묻혀 한그루 나무로 자라나고 싶다.






p.56.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랑의 느낌... 이런 것들이 살아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이나 피안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p.99.

'나'는 무엇인가. '나'는 욕망과 감정, 기억과 소망의 덩어리이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것을 '에고ego'라 불렀다. 에고는 이드id와 슈퍼에고super-ego의 통일이다. 이드는 오로지 욕망을 따르고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반면 슈퍼에고는 양심과 이상을 좇는다. 에고는 과거의 사건과 행위를 비판적으로 기억하고 평가하면서 미래를 기대하고 상상하는 가운데 현재의 행위를 설계하고 실행한다. 에고는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는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개인적 기준과 원칙을 만들어내며, 그 기준과 원칙에 의거하여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한다. 이 기준과 원칙이 자아 정체성의 핵심이다.


p.111.

인간의 뇌는 짧게는 수백만 년, 길게 보면 40억 년 가까운 진화적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 도시로 치면 매우 오래 된, 크고 복잡한 대도시와 같다. 파리나 베를린, 서울이나 베이징을 생각하면 된다. 이 도시들은 전체를 합리적으로 설계해서 만든 신도시가 아니다. 음침한 뒷골목에는 술집과 홍등가, 조폭의 소굴이 즐비하다. 구시가에는 중세기 권력자들의 부귀영화를 보여주는 거대한 왕궁과 사원, 오래된 석조 건물이 서 있다.


신시가지에는 권력과 지식, 현대 문명의 상징인 마천루 숲과 정부 청사 단지, 호화 주택과 문화예술센터, 도서관과 공원이 있다. 이 도시에는 야만과 문명이, 욕망과 이성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한다. 도마뱀과 매, 토끼와 사슴, 침팬지와 고래, 진시황과 미켈란젤로, 히틀러와 테레사 수녀, 이완용과 안중근이 뒤엉켜 산다. 겉으로는 질서 정연해 보이지만 곳곳에서 격렬한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탐욕, 연민, 복수심, 질투심, 동정심, 정의감, 절망, 희망, 고통, 환희...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그 쟁투가 빚어낸 것이다.


뇌의 구조는 오래된 도시와 닮았지만 그 작동 방식을 이해하려면 지하실이 딸린 2층집을 생각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지하실은 뇌간이다. 척수 바로 위 대뇌 아래에 있는 뇌간은 파충류의 뇌와 비슷하다고 한다. 뇌간은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생명활동을 담당한다. ... 이런 일들은 도마뱀도 다 한다.... 뇌의 지하실에는 살아가는 데는 꼭 필요하지만 남에게 내놓고 자랑하기는 좀 곤란한 것들이 들어있다고 보면 되겠다.


뇌의 1층은 변연계 limbic system 이다. 번연계는 대뇌피질 아래에서 뇌간을 둘러싸고 있다. 여기에는 방이 여럿 있다. '편도'는 감정을 조절한다. '해마'는 기억을 저장한다. '시상하부'는 호르몬 분비를 조절한다. '기저핵'은 운동을 제어한다. 번연계는 오리너구리 같은 원시 포유류 단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파충류 시절에 지은 지하실 위에 한 층을 더 올린 것이다. 변연계는 특히 짝짓기를 할 때 맹활약을 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뇌에서 강한 활성도를 나타낸다. ...


뇌의 2층은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이다. 대뇌피질은 교양 있는 지식인의 거실이라고 생각하면 적당할 것이다. 서가에는 세계문학전집이나 최신 베스트셀러 교양서가 꽂혀 있다. 개인용 컴퓨터와 홈시어터, 전화기, 안락한 소파, 해가 잘 드는 커다란 창이 있고 벽에는 램브란트의 그림이 걸렸다. 실내에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커피향이 은은하게 감돈다. 대뇌피질은 가장 높이 진화한 고등 포유류의 것이다. 포유류 중에도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가 가장 발달한 대뇌피질을 보유하고 있다.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도 단연 비대한 대뇌피질을 자랑한다. 인간 뇌의 무게는 약 1.4킬로그램 정도 되는데 80퍼센트가 대뇌피질이다. 회백색인 피질은 대뇌를 밖에서 둘러싸고 있다. 가장 중요한 부위이기 때문에 단단한 두개골의 보호를 받는다. 단어를 물건과 연관 짓고,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과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현재의 삶을 설계하는 고도의 지적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 바로 대뇌피질이다.



p.114.

'슈퍼에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자폐 증세가 생기거나 사이코패스가 탄생한다. 이런 현상이 어떤 이유에서 대중에게 전염되면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스탈린의 대숙청,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와 같은 참사가 벌어져 죽음이 강처럼 흐르고 문명이 잿더미가 된다.


p.114.

삶은 욕망과 규범의 충돌


p.119.

로날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은 아흔 네 살 나이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 대통령을 두 번 지냈으며 죽기 전 십 년 동안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다. .. 그런데 그는 보기 드문 방식으로 이 병을 맞아들였다. 알츠하이머병 확진을 받은 사실을 미국 국민들에게 알린 것이다. 이 담화문에서 레이건은 병을 공개하는 것이 치매에 대한, 그리고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했다.


p.154.

글을 잘 쓰려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 나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 1부를 다섯 번 넘게 읽었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과 황석영 선생의 <장길산>도 여러 번 읽었다. 어휘가 풍부하고 문장이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베껴 쓰기 못지않게 어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p.193.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 원내대표가 된 박기춘 의원은 초선의원 시절,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지역구 유권자를 한 사람이라도 만나지 않고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자기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 김태년 의원은 초선 시절 임기 4년 동안 지역구에 잇는 모든 중소기업을 다 방문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작은 공장들을 방문했다. ... 신기남 의원은 변호사를 하다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다.


p.203.

사랑은 싹이 난 감자맛


갑작스럽게 찾아든 영원한 이별에 대한 상상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색깔과 맛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럴 때 사랑은 싹 난 감자처럼 아린 맛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와의 영원한 작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리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p.223.

젊은 시절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떨쳤던 홍사중 선생


p.225.

내 노년기 롤모델은 2010년 작고하신 언론인 리영희 선생이다. .. 그는 자유의 고귀함을, 진실과 지성의 위대함을 증명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지만 반공주의와 싸웠고, 자유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자유를 실천하며 살았다. ... <전환 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대화>.


'십자매'는 호주제 폐지 싸움에서 맹활약한 '무서운 여자'들이다. 기자, 변호사, 한의사, 소설가 등 직업이 다양하다.


p.228.

<쇼에게 세상을 묻다>


p.243.

나는 한 달에 26시간 일하고 6만 원을 버는데, 나와 나이가 같은 야학 학생들은 250시간 넘게 일하고도 2만 3천 원을 받고 있었다. 시간급으로는 백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노동을 제한하고 노동조합 설립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헌법과 노동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구로공단 앞'과 '이대 앞', '26시간 6만 원'과 '250시간 2만 3천 원', '시급 2천 원과 시급 백 원'의 콘트라스트가 괴로웠다. 가해자가 된 것만 같았다. 비록 본의는 아닐지라도, 타파해야 할 불평등과 사회악에 기대어 쉽게 사는 기득권층이 된 기분이었다.


p.245.

인간의 대뇌피질에는 특별한 기능을 하는 신경세포가 있다. 이것이 타인의 고통이나 기쁨에 감응하게 만든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거울뉴런morror neur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가 이름을 지었다면 '공감뉴런'이라고 했을 것 같다.


p.247.

거울뉴런을 처음 발견한 인물은 이탈리아 파르마대학 소속 생리학연구소 소장 자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로 알려져 있다. 리촐라티는 원숭이의 대뇌피질에 정교한 측정 장치를 연결한 실험에서 특정한 신경세포가 특정한 행동을 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원숭이가 접시 위에 놓인 땅콩을 손으로 잡으려 할 때만 신호를 보내느 특정 유형의 행동 뉴런을 주목했다. 이 뉴런은 원숭이가 땅콩을 보기만 하거나 다른 것을 잡을 때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기대한 바와 다르지 않았다. 리촐라티를 놀라게 한 것은 다른 원숭이가 땅콩을 집으려는 것을 보기만 했는데도 그 우너숭이의 해당 뉴런에서 신호가 발사된다는 사실이었다. 리촐라티는 연구 대상을 인간에게 확장한 결과 사람에게도 타인을 모방하고 타인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하는 거울뉴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p.269.

그러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신념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 신념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신념이 잘못된 것이 아닌 경우에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잘못 선택하면 삶이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샐로스 사르Saloth Sar는 크메르 루주Khmer Rouge, 캄보디아 공산당 지도자로서 1976년부터 4년 동안 민주캄푸치아공화국의 총리를 지냈다. 그는 본명이 아닌 폴 포트Pol Pot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폴 포트는 그리 길지 않았던 집권 기간 동안 당시 7백만 명 정도였던 캄보디아 국민 가운데 최소한 150만 명을 죽음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킬링필드라는 이름이 붙은 크메르 루주 정권의 대학살은 단순히 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이상 또는 강철 같은 신념을 폭력적 방법과 결합함으로써 일어난 국가 범죄였다.


p.272.

칼뱅은 1541년 자유 도시였던 스위스 제네바 시의회를 장악했다. 속세의 권력을 손에 넣은 그는 <교회계율>이라는 것을 만들어 법률을 대체하고 시민들이 이것을 준수하는지 감시하고 위반자를 처벌하는 '종교국'과 '도덕경찰'을 창설했다.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 신학과 세속 권력을 결합한 신권정치를 편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

신앙이나 이념은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다른 이념과 다른 신앙에 대한 관용tolerance을 갖추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신념은 삶을 풍요롭고 기쁘고 의미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이념의 도구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것이다. 빛나야 할 것은 신앙이나 이념이 아니다. 정말 빛나야 할 것은 자연이 준 본성과 욕망을 긍정적으로 표출하고 실현하면서 영위하는 기쁜 삶이다.


p.300.

명색이 글쟁이면서 아버지의 삶을, 어머니의 삶을 한 번도 제대로 듣고 기록한 적이 없었다.


p.334.

실제로 생전 장례식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국의 유명한 회계법인 KPMG 회장이었던 유진 오켈리Eugene O'Kelly는 53세에 죽었따. 그가 뇌암 확진을 받았을 때 남은 시간은 석 달뿐이었다. 오켈리는 삶의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편지와 전화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 수가 1천 명이 넘었다. 가까운 친지들을 초대해 좋은 식당에서 고급 와인을 나누면서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그 90일 동안의 경험과 사색을 책으로 남겼다. 그는 자신의 삶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지구 행성을 떠났다.


...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을 정리하던 때 하루 종일 멜라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과 'dust in the wind'를 듣곤 했는데, 내 장례 파티에서도 한 번쯤은 틀고 싶다. 나미의 '즐거운 인생', 싸이의 '챔피언'도 좋다.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도 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