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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파울로 코엘료] 불륜



불륜

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7-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은 오직 사랑이다!"[브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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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책을 처음 접한 게 언제였더라 고등학교 때였나, 무튼 그 이후로 베로니카 등등 대학 새내기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였는데 점점 느끼는 바가 적어지고 있다. 어릴 때나, 아니면 오히려 나이 많이 먹어서는 좋아할 수 있어도, 지금 내 나이 때에는 좋아하기 힘든 작가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 신과 닿아있으며 또 직설적이다. 그러니까 내가 읽어왔던 그의 대부분 책들은 모두 '사회적 기준에 억압돼 살아가는 자신을 버리고 진장한 자신을 찾아라' '특히 성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솔직하게 추구하라' '그리고 그 길 위에 신이 계실 지어니' 이런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그런 내용이 심지어 직설적으로 대사에 바로 담겨 쏟아진다. 그러니 내용만 살짝 다른 일련의 동어반복으로밖에 느껴질 수밖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19살, 그러니까 새내기 때 읽었다. 당시로는 매우 인상깊었는데 그가 여성의 욕망을 다룬다는 점에서, 또 그 문제의식이 꽤나 정확하다는 점에서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이 소설 <불륜>도 여성의 욕망을 다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편한 감정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내가 결혼을 해본적이 없어 공감이 안 가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군데 군데 마음에 들지 않는 설정과 장면이 많았다.


주인공은 직업은 있으나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거의 의존하는 그런 여성상으로 그려진다. 본인은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삶은 그대로 완벽하다. 물론 그런 여자들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부족함과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시작점이긴 하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일군 결과물도 아닌, 남편의 결과물로 이루어진 행복의 틀 안에서 그걸 지겨워 한다는 게 좀 얄밉다.


게다가 남편은 가정에 충실하고 돈도 잘 벌고 허세부리지 않고 그녀의 불륜마저도 덮어주는 완벽남으로 나온다. 그래서 마지막에 결국 얻게 되는 그녀의 깨달음에 공감이 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불쌍해진다. 가정에 소홀한 것도, 그녀의 고민을 묵살한 것도, 아이들을 내팽개친 것도,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그녀의 깊은 마음속까지 훑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을 너무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서. 게다가 그녀는 일년에 걸쳐 난동을 부렸던 응어리를, 남편은 하룻밤의 분노로 해결해버린다. 얼마나 좋은 남편이야..


만약 이 둘의 성별이 반대였다면, 만약 이 내용이 남편의 불륜이고 그 배우자가 지극히 현모양처인 아내였다면 진짜 겁나 욕을 처먹었겠지. 뭐? 불륜이 장난이냐? 인간이라면 그럴수도 있지- 사랑을 다시 찾았으니 그걸로 됐어- 하는 순종적인 아내상을 미화한다고 여성주의자들에게 욕 처묵처묵 할듯. 그러나 그걸 딱 반대로 돌린 것이 이 소설인데, 그게 바로 불편한 지점이다.


결과적으로 얘기하려는 것은 불륜을 정당화하거나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었다만, 기본적인 소설의 뼈대가 그런 내용이다보니 중간중간 턱턱 감정이 걸린다. 그 큰 틀의 주제의식엔 어느정도 동감하는 바이지만, 이제는 내가 그렇게까지 순수하지는 않으므로 또 예전만큼은 공감하지는 못하겠다.



사실 이 책은 굉장히 뜻밖이었다. 마침 어제 밤 '열정과 안정은 함께 갈 수 없다'는 글귀를 읽은 뒤에 읽게 되어서다. 대출예약 걸어놓고 나서 잊고 있다가 책 들어온 걸 우연하게 오늘 발견했다. 읽기 시작해 속도가 붙어 오늘 하루에 끝내버렸는데, 이 책의 모든 문장이 모호하게 그 글귀와 전부 연관이 있더라. 역시나 삶은 꼬리를 물고 계속되나보다.


이 책에서처럼, 열정과 안정은 보통, 대개, 일반적으로, 같이 가지 않으나 이 둘중 어느 하나가 과하게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비단 관계만이 아니다. 안정만 있다면 설렘과 모험이 부재한다. 편안하고 따뜻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제자리를 돈다. 그러나 열정만 있다면 그것도 파국이다. 일정 정도의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열정은 철로를 잃은 기관차처럼 폭주하다가 탈선한다. 지상에 발 붙이지 않고 둥둥 떠다니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 중간 어느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항상 중요하다.


나는 늘, 모든 것에 있어서 끝까지 가보고 싶다. 끝까지-라는 게 엄청난 게 아니라, 내 삶이 나에게 보여주는 길, 구름에 가려 뒤편이 보이지 않는 그 길의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다. 삶에는 이곳저곳 많은 우연의 퀘스트들이 뿌려져 있는데, 적어도 그 퀘스트들이 뭔지 눌러라도 보고 싶다. 대단한 곳에서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설렘으로 찬 삶을 살고 싶다. 모험과 열정, 그리고 안정이 균형적으로 꽉 들어찬 삶을 살고 싶다. 내일이 궁금한 생을 살고 싶다.


예전에 여행갔을 때 만난 언니가, 나이 서른에 쉬고싶어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직장 상사가 불러 3개월 휴가를 제안했다고 한다. 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니 그럼 6개월? 하고 물었다고. 20대의 딱 중간에 도착한 내가 지금 꾸는 꿈은 그거다. 한국에 돌아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되든지, 29살이 되어 내가 일을 그만둔다 했을 때 6개월 휴가를 제안받을 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기. 그래서 나는 그 6개월 휴가를 받아들이고 어디론가 떠날테다! 물론 그 언니는 나보다 훨씬 대단했고 하지만.. 일단 나름의 단기 목표를 세운 느낌이라 좀 투지가 날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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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위험한 일이지요.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절대로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불쌍한 사람. 만족이란 걸 맛본 적이 없는 거야. 분명 슬픔과 회한에 젖어 삶을 마치게 되겠지.'


다음날, 나는 내가 결코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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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찾아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면 나는 모든 것이 두렵다. 삶, 죽음, 사랑 혹은 사랑의 결핍. 새로운 모든 것이 단숨에 습관이 되어버린다는 사실.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반복될 판에 박힌 일상에 내 인생 최고의 시절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아무리 흥미진진하고 흥분되는 것일지라도, 미지의 것을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찾아드는 순전한 공포까지.


자연히, 나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서 위안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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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테네브라스 룩스. 어둠 뒤에 빛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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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아야 할 짓을 막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하나요?


"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함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될 거예요. 아까 말했듯이 기자님 영혼의 빛은 어둠보다 더 강해요. 그렇지만 깨닫기 위해서는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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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백육십오 일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바람이 불었고, 천둥이 쳤고, 바다가 내 보트를 집어삼킬 뻔했지만 결국에는 대양을 건나 마른 땅에 도착했다.


마른 땅? 어떤 관계도 그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죽이는 것이 바로 모험의 부족, 그 무엇도 이젠 새롭지 않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계속 예상 밖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야 한다. 


... 우리는 시간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지혜와 경험이 아니다. 시간도 아니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다 . 하늘을 날고 있을 대 나는 삶에 대한, 우주에 대한 내 사랑이 그 무엇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겁나 오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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