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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트레이시 슈발리에] 라스트 런어웨이


라스트 런어웨이

저자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출판사
아르테 | 2014-03-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4년 만의 신작 !!"이 감동적인 소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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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를 좋아하게 된 것은 비단 그림을 이어붙인 그 작가적 상상력 때문만은 아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건너간 62년생 이 여성 소설가의 글 자체를 나는 좋아한다. 한 때는 아름다운 그림 속을 촘촘히 메꾸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 때문이었고, 한 때는 그녀 손에서 탄생한 여성 주인공들의 차분하고도 심지 굳은 성품 때문이었다. 또 나중에 들어서는 여성과, 사회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좋았다. 좋다기보다는, 위로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 더 옳은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소설도 <진주 귀고리 소녀>를 능가하지 못해 늘 비교가 되곤 했지만 이 책은 다르다. <진주 귀고리 소녀>와 비슷하지만 어쩐지 더 성숙하다. 일단 주인공이 풍기는 향이 같다. 자취도 같다. 아너가 불편한 흔들의자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 모습은 그리트가 베르메르의 화실을 꼼꼼하게 청소하는 모습과 겹친다.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하지도, 같은 시대의 네덜란드 이야기를 그린 것도 아니지만 내게는 이 책이 진주 귀고리 소녀와 이어지는 후속에 가깝게 느껴졌다. 작가의 말에도 이런 이야기가 살짝 언급되어 있기도 했고.



그리트처럼 아너는 낯선 환경에 던져진다. 이전에 살던 세계에서 지켜오던 존엄과 신념을 지키기 힘든. 그것이 그리트에게는 하녀로 일해야 했던 베르메르의 집이었고 아너에게는 낯선 미국 땅이다. 지금까지 지켜오던 신념들, 삶의 원칙들, 옳다고 믿는 바를 지키기 힘든 상황에서도 그리트와 아너는 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늘 자신의 식대로 원칙을 지켜가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신념이 결국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두 사람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는 지지대가 된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은 그 정신과 의지의 차이다.


두 사람의 성격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동물과 식물에 대한 태도다. 그리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이 결혼해야만 하는, 정육점에서 일하는 약혼자 피터의 손톱 사이 핏물에 불편함을 느낀다. 아너는 헤이메이커 집안이 관리하는 농장에 중압감을 느낀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젖소도 돼지도 아닌 건초더미다. 그녀는 그 옆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 건초더미는 그녀가 도망노예들을 숨기는 곳이 되기도 한다.



그녀들이 만나게 되는 남자들도 비슷하게 나뉜다. 결국 그 둘이 이어지게 되는 피터와 잭 모두, 그녀들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역시 육식의 세계에 속한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을 탐하고, 그렇게 동물적으로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그리트, 아너가 사랑하는 그림과 퀼트에는 관심이 없다. 정신적인 교감에도 흥미가 없다. 그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일을 도울 수 있는 예쁘고 참한 아내, 그리고 그 아내가 낳아줄 아이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고기'를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안정된 생활, 남들이 보았을 때 정상적인 선택으로 여겨질 만한 상식적인 남자들. 하지만 그리트와 아너에게 그들은 모두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다.


폭력성, 이기심, 무자비함, 본능, 욕망. 하지만 그리트와 아너가 추구했던 세계는 그 건너편에 있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그림과 퀼트. 불편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베르메르의 화실, 그리고 만드는 데 시간이 들어도 소중한 사람들의 숨결이 모두 녹아 있는 퀼트. 그 속에는 '肉'의 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정신성이 들어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짓는 정신적인 인간다움이.



이 소설은 확실히 그녀의 이전 걸작에서 한발짝 더 성숙한 느낌을 준다. 그리트의 시선은 자신과 가족의 인생에만 머물렀지만 아너는 그 시선을 사회에까지 돌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트에게 중요한 정신성은 미학, 그러니까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추구였다. 반면 아너는 그 정신성을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는다. 19세기 미국, 영국에서 막 건너와 흑인노예들의 '지하철도운동'을 목격하게 된 아너는 그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끝없이 고뇌한다. 노예를 돕다 죽은 아버지 일 때문에 노예를 돕는 것을 주저하는 헤이메이커 가문과, 노예를 사냥하러 다니는 노예사냥꾼 도너번, 그리고 그의 사상은 혐오하지만 그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게 되는 아너. 이 사이에서 아너가 겪는 심적 갈등은 더 복잡하고, 어렵다.


내가 그리트와 아너의 캐릭터에 푹 빠질 수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이 추구하는 그 정신성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사실 두 사람, 특히 아너의 경우 앞장서서 흑인노예 해방을 외친다거나, 총칼을 들고 싸운다거나 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위치에서 도울 수 있는 것들, 길을 알려준다든지- 음식을 준다든지, 자신을 말리는 헤이메이커 집안에 대항하여 묵언을 한다든지.


나도 그런 식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다. 비겁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앞장서 무언가를 외칠만큼 똑똑하지도 그럴만한 용기도 없으니, 그 큰 흐름에 한걸음 정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라도 되고 싶다. 큰 위치에 올라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는 없어도 당장 내 옆에 있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리트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아너는 그 선택을 보여줬다. 아너는 그 반대편의 세상조차 감싸안았다. 자신이 살던 영국적 가치가 옳다고 믿고 살던 아너는 미국에도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메이플 시럽, 낙엽들, 산들바람.. 퀼트처럼 의미있진 않아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닌 미국식 아플리케. 그리고 아이를 낳고, 잭과 안정된 생활을 한다. 삶이 이상적으로만 흐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테다. 그리고 그 삶이 꼭 의미 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현실을 조금씩 고쳐가고 개선해나가는 것. 삶을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내고 일궈내는 것이니까.


그리트였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작가가 그간 나이를 먹었듯 나도 나이를 먹었다. 소설 속 그리트도 작가도, 이만큼 성숙했는데 과연 나는 그간 이만큼이나 자랐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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