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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버티는 삶에 관하여

저자
허지웅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9-2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글쓰는 허지웅""의 에세이""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가격비교



평소에 좋아하지 않던 사람의 글을 읽고나서의 나의 첫번째 감상은 대개 둘로 나뉜다.


'아, 겉으로는 이렇게 보였지만 사실 속에는 이만한 생각을 담고 사는 큰 사람이었구나'

하며 그의 인간됨을 몰라보았던 나를 반성하거나


'역시 딱 이만한 사람이었구나'

하고 코웃음치는 것.



이 책은 완전 후자였다.



생각에도 깊이가 있다.

같은 방향을 지지하고 같은 것을 느낀다고 해서 똑같은 정도로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가 하는 말 중 틀린 것은 하나도 없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마음으로 들어와 울린 글자는 단 하나도 없다.


본인이 그렇게 줄기차게 외치는 '글씨는 허지웅'이라는 소개가 너무나 명백한 자뻑으로 들릴 정도로

글 한줄한줄이 블로그에 배설해놓은 감정의 똥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한줄한줄 읽어가며 넘기다가 '도대체 이건 읽고 앉아있을 의미가 없다' 싶어

눈으로 대충 주제만 훑은 뒤 전부 넘겨버렸다.

그것도 기한이 지나 절반만 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글의 대부분의 내용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생각을 잘 정리한 (척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적은 것들도 대개는

'나는 이런 힘든 경험을 해봤으니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식의 힘들었던 과거 무용담처럼 뽐내기느낌이 나는데다가

명색이 영화평론가라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연예 관련 가십거리들밖에 없었다.


특.히.나 읽는 내내 느껴졌던 자칭 비관론자 타칭 자신의 힘듦과 고생에 취해 사는 똥폼잡는 2류 중2병학생의 구린내는

그가 쓴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더욱 더 진해졌는데

어머니의 사랑을 한편 높게 치고 갈구하며 못되게 행동하는 자신에 대해 반성하면서도

반성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줄 것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엄마 품을 벗어나지 못한 아이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한 잘못을 인정하고, 그걸 극복하고 해결해 나가며 어른이 될텐데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그 잘못을 되풀이하고

그러면서도 엄마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이거 뭐,

해묵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그가 비판하는) 정부와 다를 바가 뭐가 있나?

그게 뭐 자랑이라고 이렇게 반복적으로 엄마 품에 대한 그리움을 구구절절하게 적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환영(?)을 본 건지 뭔지 시위 관련해서 쓴 그 글은

정말로 코웃음이 쳐나왔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비밀글로 써놓을 정도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시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자신이 뭔가 '깨어있는' 사람이라도 된 듯 젠체하며 무용담을 줄줄이 사탕처럼 늘어놓고

'아 그 때 내가 피좀 났잖아'

'아 그 때 나 아는 형이 끌려갔었잖아'

하고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자신에 대해 포장하는 데 급급하는 듯 보였던 허세 다이어리식 글들.


남들 다 아는 뻔한 얘기를 마치 자신이 처음 시작이라도 한 것처럼 정리나 하고 앉아 있으면서도

스스로 '글 쓴다'고 자부하는 그 부심이 오글거려서 읽을 수가 없었다.

'글 쓰는 허지웅'이 아니라 그냥 '블로그하는 허지웅' 정도가 적당한듯.




내가 싸지르는 글을 엄청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야 혼자 싸지르는 글이고, 스스로 '글쓴다'고 자부하지도 절대 그럴 수 있단 생각도 들질 않는데

어찌 이런 글을 써내면서 '글쓴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책으로 펴낸다고 다 글이 아니고

기사로 올린다고 다 글이 아닌 건데.


같은 주제로 글을 써도

어떤 사람의 글은 깊게 음미하며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글은 눈으로만 읽기에도 지루하다.


스스로 '글 쓴다', '책 좀 읽는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이 정말 내놓기에 제대로된 글을 쓰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자신은 책에서 '연예인'으로 분류되는 게 싫다고 했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을 무기로 앞세워 내놓은

생각 있다고 입소문 나서 칼럼집 제안받은 한 '연예인' 칼럼집으로밖에 여겨지질 않았다.



오늘의 교훈.


생각하기 전에 생각을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