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타디스 창고/문학

[박민규 외] 눈먼 자들의 국가: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눈먼 자들의 국가

저자
황종연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10-0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
가격비교


김애란 박민규 김연수 진은영 같은 문인들과, 여러 사화과학자들이 쓴 글을 엮은 책.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의 글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이런 책에 이런 후기를 먼저 쓰는 것은 좀 방정맞고 모욕적이라고까지 할 수도 있겠으나

솔직히 이 부분이 눈에 띄었으니 그냥 써본다.

잘나가는 문인들의 글을 묶어놓다보니 나도 모르게 '비교' 해보게 되더라.

마치 논술시험 채점자가 수많은 논술문을 채점하듯이


'세월호 사건'이라는 제시어를 받고 낸 12편의 글을 봤다.



그리고 느낀점.


1.
글은 박민규처럼 써야 한다.


2.

동어반복은 지루하다.


3.

과연 잘 엮인 책인가.



첫번째로,


박민규의 글은 정말 좋았다.

독보적으로 정말 좋았다.


세월호 사건의 전모에 대해 기억해야 할 점을 모두 서술하고 있었고

그 근본적인 잘못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고

왜 어떤 점에서 세월호는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었는지.

정부는 어떤 프레임에 사건을 감추려 하는지,


그리고 나아가 세월호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은유인지

왜 우리가 눈을 떠야 하는지.

전부 다 이야기하면서도 슬픔과 분노, 감정의 흐름을 잃지도 않는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누구의 글보다도 더 깊고 강하게 심장을 긁는다.


쉽게 이야기하는 게 가장 어렵다.

소름이 끼치고 몇번이나 눈물이 울컥 솟아올랐을 정도로 멋진 글.

그래서 아마 책의 제목으로 박은 거겠지.




두번째로,


동어반복은 지루했다.

같은 주제어로 글을 쓰다보니

그게 정부의 잘못이라는 것과,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줄줄 서술하게 되긴 하겠지.

하지만 그 글들을 한번에 연달이 읽어야 되다 보니

그런 특색없는 자기고백과 같은 지적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논술 심사하는 사람들도 이런 의미에서 뻔한 글은 쓰지 말라 하는 거겠지.


-


뻔한 글이 아니라 하더라도, 너무 개인적으로 접근하는 글은 잘 읽히질 않았다.

김연수와 같은 경우에는 글 전체가 두괄식이 아닌 미괄식의 글이었는데

나중에 가서 '아, 이 얘기를 하려 했던 거구나. 똑똑하네' 싶긴 했지만

글의 성격이 소설이 아닌 어떻게 보면 긴 칼럼이나 논설에 가깝기 때문에


임팩트도 없고,

재미도 없고.



세번째로,


이 책은 잘 엮였나?


솔직히 말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사실 앞쪽 문인들의 글은 어렵지 않았다.

재미가 있든 없든 일단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이다.


하지만 뒤에 사회과학자들, 혹은 몇 문인들이 쓴 글은 너무 어려워서

심지어 국문과 5년 언정과 3년 다니며 각종 글읽기에 익숙해져있는 나조차도 버겁고 읽기 짜증났다.


그들이 너무도 똑똑한 사람들이기에

세월호를 얘기하며 프로이트나 한나아렌트, 햄릿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세월호는 국가적 재난이다.


그들을 위한 책이라고,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엮었다면

그들이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 유족들도,

그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수많은 일반 국민들도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뒤에 실린 꽤많은 수의 글들이

심각한 짜증까지 불러올만큼 어려웠고

세월호 희생자나 유족, 그들을 추모하는 국민들을 위한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한 글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들이 <문학동네>에 실렸던 글이기 때문에 사실상 독자층이 이 책과는 달랐겠지만

적어도 책으로 엮을 때 만큼은 조금 더 쉽게 했어야 하지 않을까.


몇 글은 정말 읽으려고 노력해도 읽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80% 이후부터는 눈으로 훑으며 쉭쉭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었는데

심지어 나같이 책을 공부하려는 독자에게도 그렇게 읽힌다면

그게 세월호를 기억하도록 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책의 궁극적 목표와,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결국


박민규 만세.



정말 그 글은 엄청나다.

글은 이렇게 써야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