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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유시민, 조국 외] 그가 그립다



그가 그립다

저자
이이화, 유시민, 신경림, 조국, 노경실, 한홍구, 정여울, 서민, 노항래 지음
출판사
생각의길 | 2014-05-0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노무현 5주기 기념 출...
가격비교



잘 엮인 책이로다.


글은 짧아서 간결하고

그의 가장 주변에 머물었던 사람들의

그들이 마주했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그의 인간됨을 보여준다.


알면 알수록 더 멋진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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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뜻과는 무관하게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인문계를 포기해야한다는 현실은 내게 이 세상에 부조리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이 될 수 있는 세상. 그것은 세상을 얼마나 성실히 열심히 사느냐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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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을 "관찰자가 기꺼이 다른 사람의 경험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경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인류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서는 '공감의 문명(empathic civilization)'이 중요하며 21세기 '공감의 시대'에는 우리 속에 들어 있는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즉 '공감하는 인간'을 찾고 계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최재천 교수는 <호모 심비우스>에서 21세기가 추구하는 이상적 인가는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라고 말했다. 경쟁 일변도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협력하고 공생하는 인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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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법정에서 활동한다. 아무나 변호사가 되는 게 아니다. 국가의 자격 인정을 받아야 법정에서 누군가를 변호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호인은 그렇지 않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의 변호인이 될 수 있으며 생활공간 어디서나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호인은 그렇지 않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의 변호인이 될 수 있으며 생활공간 어디서나 활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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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 특별히 훌륭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 헌법이 보장한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당했다면, 당연히 공분을 느끼고 그들의 변호인이 되어 주어야 한다. 훌륭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든 아니든, 주장과 행동이 내 맘에 들든 들지 않든, 그것이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그 당연한 이치를 망각했다. 30년 전 이돈명, 황인철, 홍성우 변호사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폭력범'의 변호인이 되어 주었는데, 정작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공분을 터뜨려야 마땅한 상황에서도, 종종 냉담한 태도를 취했다. 마치 관심이 없는 것처럼 외면해 버리기도 했다. 남에게 무엇을 주지는 못할망정 내가 받은 만큼이라도 돌려주는 것이 합당한 도리인데 그 도리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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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시인

신충진 요리사 치킨

나쁜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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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노하우'와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로 원외 정치인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한 프로그래머는 2000년 부산 북강서을 선거 낙선 직후 '바보 노무현'과 가진 술자리 얘기를 지금도 꼭 품고 있다.


"제가 그런 질문을 한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텐데요, '정치라는 게 도대체 뭔가요?'라고 물어봤어요. 그러시더라고요. '법은 너무 느리게 변한다.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법이 잘못되면 고쳐야 되는데 그러기까진 시간이 걸리니 그 갭(gap)을 메우기 위해서 정치인이 존재하고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정치를 한다.' 더 그럴듯하게 설명하셨는데 하여튼 뜻은 그랬어요. 법으로 모든 걸 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가 있는 거구나. 이후에도 그 말씀을 많이 생각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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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노무현은 '진짜'였다. 그 전에 스스로 진짜가 되려고 노력했다. 가난에서 세속의 성공까지, 앞서 소개한 노무현 이야기는 충분히 통속적이다. 굳이 노무현만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그런 노무현은 부림사건으로 처음 접한 국가의 폭력에, 3당 합당에서 겪은 불의와 반칙에 솔직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지역 구조와 분열의 극복, 국민 통합의 길로 일관했다. 그리하여 가까이서 일한 사람들이 접한 노무현과 멀리서 지켜본 사람들이 아는 노무현이 다르지 않은, 진짜가 되었다.

...

노무현은 도전과 실천의 결과로 받아 든 한계와 실패만큼을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 줬다. 해야 하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지금 안 돼도 언젠가는 결국 될 것 같은 딱 그런 난이도의 과제, 때론 승리를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하고, 패배하면 '처음 진 것도 아닌데, 한두 번 진 것도 아닌데' 하며 툭툭 털고 일어나게 만드는 딱 그런 무게의 숙제 말이다.


노무현은 우러러볼 만큼 높은 곳에 있지 않았고, 눈 내리 깔아야 할 것처럼 위압적이지도 않았다. 우리가 받아 든 숙제도 그러하다고 믿는다. 설혹 풀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숙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노무현과 다르지 않은 진짜가 될 것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노무현 이야기와 노무현을 기억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행복하게 만나고 우리는 더 ㅏㄶ은, 노무현 없는 노무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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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깨달은 것은 내가 가진 재주라고는 그나마 글 쓰는 일이라는 사실이었으며, 그렇다면 앞으로는 시를 쓰되 지금까지와는 달리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시,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의 삶이 담긴 시를 쓰자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시 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일 먼저 쓴 시가 <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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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들이 다 하는 옳은 소리나 뒤쫓아 하고 없는 목소리를 쥐어짜 통일을 외치는 따위는 내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현실에 깊이 뿌리박은 시와도 한참 거리가 있었으며, 시가 '무엇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더더욱 동조할 수가 없었다. 시가 옳은 소리나 하고 사람들 앞장서서 그들을 끌고 간다고 생각할 때 시는 거짓이 되고 위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관념의 틀 속에 갇힐 때 시가 팔팔하게 산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

시란 그 자체로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무엇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한없이 자유스러운 것으로서 무엇을 위해 서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을 위해서 혹은 무엇에 따라서 쓰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니, 시 쓰는 일이 다시 즐겁고 신명 나기 시작했다.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뒷부분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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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문서라 평가받는 <유엔세계인권선언문>을 인간 스스로 작성한 것이 1948년 일이다.

...

국제적으로도 '이라크 전쟁 10문 10답' 같은 문건이 널리 유포되면서 미국의 침공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셌다. 


또한 국내의 시민단체들도 한결같이 반전 여론을 이끌며 들끓었다. 심지어 미국의 파병 요구를 받아들인 노무현 대통령을 '부시의 푸들'이라고 야유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인권위원회는 'GO의 옷을 입은 NGO'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추구하는 가치와 그 본성이 그러해야 할진데, 그러잖아도 이상주의적 경향의 시민단체들로부터 무능한 인권위원회라고 비난받고 있던 터였기에 침묵하고 있다가는 더 곤경으로 곤두박질칠 형국이었다.


나는 오래 고민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일을 시작하고 말았다. 인권위원회 전원위 소집을 발의하고 파병 반대 의견서를 썼다. 오후에 소집한 전원위 회의는 사안이 중대한 만큼 치료차 입원 중이던 위원장만 불참한 채 전체 위원이 모였다. ... 나는 여기저기 방송에도 나가 반전 의견서의 내용을 되풀이 했다.


"가령 큰 댐을 건설하려고 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적극 추진하겠지만 환경부는 반대할 수도 있지 않나요? 인권위는 헌법 가치를 지키고자 합니다."


한바탕 회오리를 각오하고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예상 외 반응에 크게 허를 찔리고 말았다. 그는 평사잇 어조로 지극히 낮게 말했다.


"인권위원회, 그런 일 하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유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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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했던 연설이 아닐까 합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어요. 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 줬던 저희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였습니다. 1980년대 시위 하다 감옥에 간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였습니다.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뤄져야만 이제 비로소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잇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한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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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2006년 4월 3일,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하여 남긴 말이었다.

(조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