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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저자
정여울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3-05-1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감성을 울리는 첫 번째 에세이 서툴러서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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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에세이를 읽다가 이 사람의 글에 빠져 허겁지겁 대출해버린 책.

글도 곱고 사람도 참 곱다.


맏딸인 것부터, 포기가 빠르고 걱정이 많은 사람인 것도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20대를 엄마와의 싸움으로 채운 것도 (나의 경우는 아빠였지만)

내 진로,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조차

내가 막 한가운데를 보내고 있는 20대와 너무 닮아있어서,

친언니의 조언을 듣는 듯 마음이 따뜻해졌다.


늘 내 삶에 따뜻한 방향을 일러줄 친언니를 갖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내 이상 속 언니라면 이런 얘기를 해줄 것 같다.

20대에게 보낸다는 책 중에, 가장 마음으로 읽었던 책.



상상속 언니로부터의 짧은 편지.txt


더 아름답고, 꽉찬 삶을 살아.

네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끝없이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옳은 마음을 품기.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고, 예술을 탐하고 너만의 색깔을 만들어 나가라 닝겐아!

네 가장 밝고 빛나는, 그 반짝이는 매순간을 즐기길 바란다.


ps. 순간순간을 메모하는 습관을 만들려무나. 글로 남겨놓은 현재의 조각들은 미래로 날아가 너에게 큰 벽참을 선물해줄테니 ^ㅇ^)aaaaa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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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란 곧 아군을 만드는 일이라 믿어왔던 편견은 조금씩 빛을 잃어갔다. 아군을 만드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적군을 만들지 않는 일이고, 적군을 만들지 않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적군과 맞서는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세상을 살다 보면 적도 아도 구분할 수 없는 아비규환에 휩쓸리기도 한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적과 아를 가르는 분별심이 아니라 내 안에도 적이 있고, 적 안에도 내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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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속이고 사랑받느니, 너 자신을 드러내고 미움받는 게 낫다. - 앙드레 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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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에 결사반대한다. 돌이켜보면, 그 속담을 믿고 견뎌냈던 20대의 고생이 나에게 결코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고난에 어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사람은 받느시 그 고난에 대한 미래의 보상을 바라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무리하게 자기 인생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잔꾀를 쓰거나, 뒤늦게 20대에서 잃어버린 시간은 무슨 수를 써도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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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기 때문에 사서 하는 고생'의 엄청난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알아볼 만한 명랑한 시선을 회복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잃어버린 영혼의 명랑성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썼던 달콤한 극약처방이 바로 '여행'이었다. 여행 늦바람을 통해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사는 곳에서 통용되는 게임의 법칙이 결코 절대적인 거이 아니라는 것. 바쁜 인생 속에서 때로는 '돈을 벌지 않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향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 20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미래를 위한 막무가내식 스파르타 훈련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게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바쁨을 핑계 대며 내가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속속들이 알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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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너와 나의 경계가 엷어지는 것.


사랑이란, 그가 내 아픔의 끝없는 기원임을 기쁘게 인정하는 것이다.


파리의 로댕 박물관에서 <키스>를 처음 봤을 때, 나도 모르게 탑돌이를 하듯 작품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리 '그의 입술'과 '그녀의 입술' 사이의 경계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점이 너무 좋았다. 사랑이란 이런 것, 그러니까 '너'와 '나'의 경계를 아무리 구분하려 해도 결코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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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샤세리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이 그림은 마침내 네가 없어지고, 네가 없어졌기에 나 또한 저절로 없어질 것 같은, 그 끔찍한 상실의 고통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연인이 죽지 않아도, 내가 죽지 않아도, 사랑의 원형은 본래 이런 모습이 아닐까. 너와 나의 경계가 자꾸만 엷어져가는 것, 너의 것과 내 것을 어느새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것, 너의 안녕이 나의 행복만큼 소중해지는 것, 아니 너의 안녕이 없다면 나의 행복도 더 이상 불가능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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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기이한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인정받지 못해도 좋다. 돈을 벌지 못해도 좋다. 누가 뭐라 하든, 내 마음이 가리키는 꿈의 화살표를 따라가자. 그때부터는 재능보다도 열정이 관건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재능보다 열정이 중요했고, 열정보다 성실함이 중요했다. 재능과 열정과 성실이 하나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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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실컷 발휘하며 원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무엇일까. 그런 사람들이 자기 재능과의 전투에서 롱런하는 비결은, 구도자처럼 일정한 삶의 규칙대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요컨대 재능의 첫 번째 비밀은 절제다. 너무 많은 재능을 한꺼번에 탕진하지 않고,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겸손해하고 감사하면서, 매일매일 벽돌을 쌓듯이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재능을 소중히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재능의 유일한 비결은 매일매일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조차도, 심지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꿈속에서도,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타오르는 열정 때문에 오직 그것만 생각하는 것. 그리하여 아름다운 재능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대한 무구한 '집중'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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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나는 카네기보다 시몬 베유가 좋고, 힐러리보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좋았다. 그건 지금도 변함 없다. 누군가의 왁자지껄한 성공보다는 누군가의 소리 없는 절실함이 굳게 닫힌 마음을 끝내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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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싶은지 스스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치유의 시작이다 -로버트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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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여행지에서 우표를 산다. 우표 하나하나를 물그러미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핫이슈였던 사람, 사건, 공간의 이미지가 눈앞에서 커다랗게 펼쳐진다. 그 순간 손톱만 한 우표 화면은 갑자기 거대한 극장의 스크린처럼, 마음의 극장에서 커다랗게 확대된다. 손톱만 한 우표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이야. 매번 감탄하면서, 우표를 만들어서라도 꼭 기념해야 했던 그때 그 시절의 빛나는 사건과 인물들을 되돌아본다. 이렇게 작은 우표에도 이토록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 주변에 멘토 아닌 것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사물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다만 우리가 너무 많은 미디어의 목소리들에 사로잡혀, 그 간절한 메시지를 듣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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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땐 행복의 마지막 한 올까지 한껏 느낄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고, 불행할 땐 그 감정에 지나치게 빠지기보다 냉철하게 그 불행의 원인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지 않는 거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불행에 빠진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기 마련이다. 때로는 불행하고 때로는 행복함을 인정하면서 그 당연한 변화를 즐기고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야말로 행복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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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은 기억할 만한 장소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나의 든다는 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장소가 하나 둘 늘어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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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라서 더욱 의미 있는 공간들'


우린 그때 돈도 없고, 계획도 없고, 대책도 없었지만, 그냥 한 번 불쑥 가보는 곳이 많았다. 청평사도 그랬고, 선운사도 그랬고, 백마도 그랬다. 그 모든 의외의 장소들, 충동적인 결정의 장소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련한 기억의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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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공간은 수많은 이야기를, 이미지를,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공간들은 시간의 잔인한 불가역성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20대들은 모른다. 20대를 이미 지나온 세대들이, 그들을 얼마나 부러워하고 있는지. 그대들이 머물고 이쓴 바로 그 '시간'이야말로, 아무런 책임감도 부담감도 없이 무언가에 '미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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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간판을 위한 전공'이 아니라 '마음의 전공'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학점을 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공을 넘어서, 평생 함께할 영혼의 동반자로서 '마음의 전공'이 필요하다. ... 왜 쇼팽을 좋아하는지, 왜 파울 클레를 좋아하는지, 밤새도록 오직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열정과 지혜가 생겼을 때 비로소 우리 마음 속에서 '제2의 전공'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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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만나더라도 소중한 사람, 돈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내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숨을 수 있는 곳', '도망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숨 가쁜 인생의 시계를 잠시 멈추고,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대상. 그렇게 제2, 제3의 탐닉을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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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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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재화의 쾌락이 누구의 고통을 짓밟고 태어나는 거인지. 어떤 사람들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딛고 이 쾌락의 상품들이 힘겹게 태어나는 것인지. 나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영혼의 결핍을, 상쾌한 기분전환을 핑계로 내 소비를 정당화했지만, 나도 모르게 타인의 아픔을, 타인의 슬픔을 잔인하게 과소비하며 살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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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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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며 처절하게 실패하는 사람들을 마음속 깊이 질투하고 존경한다.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포기의 역사보다는 실패의 역사가 아름답다는 것을. 제대로 부딪혀보지도 않은 채 포기하는 것보다는, 멋지게 도전하고 처참하게 실패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을. 꿈을 이루는 데 실패하더라도, 삶에서 실패하는 것은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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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으로 내 삶을 전시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무엇을 해야만 멋진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할 때 정말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건 직업이 아니라, 내 삶이 아름다워야만 이룰 수 있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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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이렇듯 무조건 꿈을 세우고 꿈을 향해 돌진하는 '떠들썩한 맹목의 시간'이 아니라, 꿈에 대해 오랫동안 곱씹어보고 '꿈'과 '삶'과 '나'를 일치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고독한 몽상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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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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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의 소통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물은 무엇일까. 나의 경험 속에서 타인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장애물은 바로 '타인에 대한 판단'이었다. ... 그러나 '판단'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기대'다. 저 사람은 날 이해해줄 거야, 저 사람은 아마 말하지 않아도 내 망므을 저절로 알아줄 거야, 저 사람은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눈빛만으로도 내 망므을 알아주겠지. 이런 식의 지나친 기대도 소통을 가로막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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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나이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도 없고,

거리를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별들에 둘러싸여서,

우리가 확인도 할 수 없는 물질로 가득 채워진 채고,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물리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우주에 살고 있다는 셈이다.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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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하고, 어려워하고, 망설이는 능력이야말로 20대에 가장 필요한 배움의 기술이 아닐까. 걸핏하면 '힐링'을 외치는 사회에서 우리가 진정 잃어버린 것은 '아픔을 아픔답게 아파하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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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돈을 버는데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에 13실링도 안 되는 돈을 버릭 위해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일하다가 결국은 구빈원에서 쓰러져 죽는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밝히고 싶었다.


G.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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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처럼 느껴졌다. 그렇게도 사랑했던 우리 아빠가, 이제는 무섭다. 그렇게도 당차고 씩씩했던 엄마가, 이제는 불쌍하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나의 소원은 오직 하나로 압축되었다. 가족으로부터 도망치자. 그것만이 살 길이다. 나는 쓰러져가는 가족의 아픔을 감당할 수 있는 훌륭한 재목이 아닌 것 같았다. 압박, 집착, 구속, 부담, 그리고 고통. 가족을 생각하면 늘 그런 우울한 단어들이 도미노처럼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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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어릴 때는 가족의 의미가 '보호'와 '성장'에 있다. 아이들이 무사히 잘 클 수 있도록, 부모는 따스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 가족은 서로가 '더 나은 독립적 개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단계가 오히려 더욱 험난한 여정일 때가 많다. 바라보고 지켜주되, 서로가 홀로 일어설 수 있도록 때로는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거리감이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주지만, 가슴이 찢어지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야만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부모는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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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마음에 그런 규율은 억압과 통제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면, 나는 아예 누구의 부모도 되지 말아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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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여신 니케.


나는 니케에게서 '승리한 자들만 골라 포옹해주는 선택적 모성'이 아니라 패배한 자들의 아픈 마음, 죽어간 자의 안타까운 마지막 숨소리까지 품어주는 위대한 대지의 모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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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앎을 넘어 존재한다. 이해나 분석이나 비판을 뛰어넘는 곳에, 예술의 감동은 존재한다. 예술은 유용한 정보도 실용적인 지식도 아니지만, 그 어떤 '쓸모있는 것들'도 해내지 못하는 마음의 기적을 일궈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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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는 일로 시간을 보내라.

다른 사람이 고생을 하면서 깨우친 것을 보고 쉽게 자신을 개선시킬 수 있다.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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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재란 없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좀 더 쉬운 것'을 선택할 경우, 끊임없이 '가장 원했던 바로 그것'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가장 원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는 처음부터 없다. 나는 수많은 실수를 통해 '대체재란 없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좀 더 안전한 것, 좀 더 덜 힘든 것을 찾다가, 가장 원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한참 동안 방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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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정말 나다워질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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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와 내 친구들이 20대를 보내며 미처 끝내지 못한 사랑과 우정의 '뒤풀이'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차라리 빨리 늙어버리기를 바랐던, 그래서 제대로 작별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나와 내 친구들의 20대를 향한 때늦은 뒤풀이.


나는 그 뒤풀이의 주모가 되어 밤새도록 향기로운 술을 나르고 푸짐하게 안주를 요리하며 아직 우리 가슴속에 여전히 시린 꿈으로 빛나는 20대를 다독이고 구슬리고 보듬어주고 싶다. 사랑과 혁명과 우정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던, 아직 실현되지 않은 너무도 푸른 꿈을 향해 골든벨을 울리고 싶다.


이 모든 단어들이 내게는 소중하지만, 이 스무 개의 키워드를 딱 세 개로만 요약한다면? 나는 세 가지를 꼽고 싶다. 바로 사랑, 혁명, 우정이다. 내가 소중하게 가꿔온 청춘의 키워드들은 이 세 가지와 어떤 방식으로든 아름답게 연결되어 있다. 사랑, 혁명, 우정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우리의 20대를 빛나게 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