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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ㅡ 를 읽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를 쓴 작가의 에세이집이지마는

뭐 딱히 엄청나게 마음에 드는 책은 아니었다.

그냥 그와 친분이 있는 배우와 감독에 관한 얘기와

짧은 역사와 짧은 연애에 대한 이야기.

드라마 작가여서 그런지 문장은 단순했고 행간에 숨겨진 의미나 거창한 수식어도 없었다.

에세이집이라 더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술술, 엄청 빨리 읽혔던 책이었다.


다만 한 가지 내 맘 속에서 여러가지 의문과 생각들을 만들어 낸 이야기는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얘기였다.

작가의 아버지는 7남매를 두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집을 돌본 적이 없었고

아무럴 것 없는 시골 사람이었던 아내를 두고 바람을 펴댔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를 미치도록 증오했던 어린 작가는, 

나이가 든 지금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를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했다. 

그의 손을 잡고, 가만가만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23년이라는 내가 살아온 햇수가 아직도 너무 짧은 탓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내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고 책을 많이 읽고 세상을 알아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 자신을 슬프게 했던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용서할 수가 있을까?


말로는 물론 가능하겠지만 작가가 설명한 것처럼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해는

나는 죽었다가 깨나도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이가 들면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나는 아마 아닐 거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 소설가와 드라마작가의 차이를 문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대본이 중간중간 쓰여 있었는데, 확실히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대사가 이렇게나 형편없었나'라는 생각만 들어서 놀랐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대사는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

(드라마의 세상은 사람들의 움직임, 표정, 행동, 목소리, 웃음, 소리, 음악 같은 요소들이 한꺼번에 합쳐져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리고 대사는 눈이 아닌 귀로 전달된다)

간략하고 쉽게 전달되다 보니, 글에서는 그 '느낌'과 '뉘앙스'가 온전히 살지 않더라.

글로써만 세상을 구성해야 하는 소설과는 다르게 간결하고, 깊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