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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프란츠 카프카 <선고> 1

프란츠 카프카





[선고]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ukino8031&logNo=80094792185

전문이 있는 블로그의 링크다.

그리고 괜찮았던 리뷰

http://bjcecil.tistory.com/50



카프카(1883-1924)의 단편소설.


1912년 집필, 1913년 문학연감 아르카디아에 발표. 

  젊은 상인 게오르크 벤데만은 러시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자신이 유복한 가문의 딸 프리다 브란덴펠트와 약혼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그는 이 소식을 아버지에게도 전하지만 아버지는 불명확한 비난을 한다. 게오르크는 아버지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지만 아버지는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아버지는 화를 내며 게오르크가 자신과 친구를 속였다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프리다와의 약혼은 아버지와 죽은 어머니를 배신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익사형의 판결문을 전하고 게오르크는 비틀거리며 집을 나와 강물에 빠져 죽는다. 

  카프카는 프란츠 베르펠의 여자 거인, 막스 브로트의 아놀드 비어로부터 이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 1913년 8월 14일자 카프카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선고에서 도출된 결론들은 나의 경우에 해당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펠리체 바우어 덕택이다. 그러나 게오르크는 약혼녀 때문에 파멸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러시아의 친구는 카프카의 특성을 지닌다. 게오르크와 친구 사이의 관계는 카프카의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 생존방식 사이의 대결로 이해할 수 있다. 

  카프카의 아버지와 전혀 닮지 않은 작품 속의 아버지는 사업가에 반대하는 카프카의 입장을 옹호한다. 카프카는 이러한 아버지 형상을 통해 소망을 이뤘다. 그는 문학 작업을 통해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고 줄곧 시도했다. 게오르크 벤데만의 아버지가 내린 사형선고는 시민적인 존재방식에 대한 사형선고이다. 

  게오르크는 자신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와 자신의 분열된 작가적인 존재 사이의 유대가 확고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대가 카프카의 소망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의지에 복종한다. 시민적인 존재가 사형선고를 받음으로써 예술가는 아버지가 인정하는 가운데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1913년 8월 14일 자 카프카의 일기


"<선고>의 결론은 내 경우다. 내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그녀 덕택이다. 그러나 게오르크는 약혼녀 때문에 파멸한다."

카프카는 당시 이 <선고>를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헌정했다. 카프카는 그녀와 두 번 약혼하지만 파혼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창작을 방해받을까봐 두려워서였다.

또한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위압적인 아버지에게 벗어나, 결혼하여 자신 또한 한 아버지가 되는 평범한 삶에 실패했기 때문에 문학으로 도피했다고 고백했다.

<선고>의 아버지가 내린 익사형의 주된 이유는 게오르크의 약혼녀 때문이고, 실제로 카프카의 아버지도 펠리체 바우어 양과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게오르크와 친구는 카프카의 이중적인 모습의 반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시민적인 삶(게오르크)과 예술가의 삶(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카프카의 모습이다. 아버지가 내린 사형선고는 곧 시민적인 존재 방식에 대한 사형선고다. 게오르크는 자신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카프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아버지에 대한 증오인가, 사랑인가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곧 세계였으며,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분”이었다.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지배­종속 관계에서 그는 아버지 체제에 대한 저항을 은밀히 모색하는 한편 그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었다. 

  그런 카프카가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지 36년 만에 최초로 대화를 시도한다. "왜 아버지가 두렵다는 말을 하느냐고 물으셨지요?"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편지에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등장한다. 이 글은 분노의 발산이 아니라 분노에 대한 보고이다. 그가 쓴 것은 아버지의 가슴에 대고 터뜨리지 못했던 불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푸념하지 못하던 것들"이다. 이것을 그는 가능한 한 감정을 절제하고, 논리적으로 빈틈없이 서술한다. 편지는 분량과 내용 모두 충격적일 정도로 흥미롭다. 줄지어 등장하는 아버지의 가학적 언행, 그리고 한이 맺힌 듯한 카프카의 회상은 우리를 당혹스럽게도 만든다.

  그러나 이 편지는 결코 억압과 분노만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이 편지는 애증이라는 복합적 감정의 산물이며, 편지가 작성된 힘의 원천은 깊은 사랑과 그만큼 깊은 미움이며, 이 두 가지의 상호충돌이 그 계기이다. 그가 거듭 말했던 "편지에 걸고 있는 온 희망"은 무엇보다 부자간의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자립적 존재 간의 대등하고 화목한 관계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애증으로 얽힌 부자 관계에 대한 극한의 탐색

  이 편지는 고유한 용도를 갖는 사적인 서한인 동시에 자전적 에세이다. 그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진술은 그의 작품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들, 즉 교육, 사업, 유대주의, 작가의 실존, 직업, 성과 결혼 등의 문제를 차례로 짚어가며 체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카프의 난해한 문학 작품들은 대부분이 자전적 성찰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장 중요한 자전적 진술로 평가되는 이 편지가 그의 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카프카 문학의 난해성도 이 편지를 읽으면 서서히 단초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인 《소송》《성》《심판》에 등장하는 불가사의한 권력의 힘과 맹목적으로 지배당하는 개인의 실체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편지는 치밀한 구성과 논리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이고 흥미로우며, 평이할 뿐만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탄식하게 할 만큼 감동적인 동시에 소중한 통찰 을 선사한다. 수십 년 애증으로 굴곡진 부자 관계를 포함해서 한 인간과 다른 한 인간의 관계에 대한 글로서, 이 편지만큼 '극한에 가깝게 정밀한' 탐색은 또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래는 해피캠퍼스 미리보기 요약 펌.

카프카는 기이하고도 짧은 이 단편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 '선고'에서 묘사되는 게오르그와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는 도저히 친자 지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상식적이며, 가장 비상식적이고 충격적인 것은 아버지의 일방적인 매도와 비난에 순종하여, 자살의 길을 택하는 게오르그의 모습이다. 

이처럼 현실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아이러니 하게도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교묘히 섞어 표현하여, 숨겨진 세계의 단면을 포착해내는 것이 카프카 소설의 특징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이 기이한 인물들간의 관계는 표현된 그대로 해석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도대체 게오르그는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왜 아버지의 말에 순순히 굴복하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묘사되는 게오르그의 모습은 오히려 무엇엔가 쫒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자살하는 것일까. 

또한 게오르그의 아버지는 왜 자식을 그토록 비난하고 끝내는 사형선고를 내리는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우선 작품 속의 게오르그와 그의 아버지로부터 보편적인 부자관계의 굴레를 벗겨내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의미없는 혈육애를 소멸시킨 위에서 게오르그와 아버지, 그리고 페테스부르크의 친구가 만들어 내고 있는 대립구도에 주목하여야 한다. 대립구도 속에서 이 세 인물들이 어떤 관계는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그의 익사를 해명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접근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