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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글

2015년

드디어.


2015년을 밟았다.

2015년이 내게 왔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긁적긁적)

어떤 말로 해봐도 아직 완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 2014년 이라고 써넣는 손의 움직임이 더 익숙하고 이천십사년-이라고 내뱉는 발음이 더 정겹다.

2015년을 화면 위에 쳐넣는 손가락의 위치와, 이천십오년-이라고 발음할 때의 혀의 위치가, 낯설다.


어제, 그러니까 2014년의 마지막 날 나는 무엇을 했는가.


아침 9시에 일어나 공연히 달뜬 마음에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의 어릴적 내 사진들을 뒤적대다가 몇장을 골라내고.

나의 쪼잔한 마음과, 그 쪼잔함이 늘상 불러일으키고야 마는 서러움에 잠깐 훌쩍이기도 했다.


올해의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정시에 맞추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고,

21살짜리 다른 알바생과는 다른 날과 다르게 대화를 좀 더 나눴다.

차가운 밖의 공기와 1월 1일에도 문을 연다는 가게의 얘기를 잠깐 나눴을 뿐이지만.


오늘따라 가게에 올라와 구경하는 손님들이 많지 않아서,

한 해동안 고맙고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그 중 두 분은 용건이 있는 전화를 걸어와 나를 약간 당황하게 만드셨고,

대리님은 전화를 걸어 내게 안부를 물었다.

대부분은 상냥한 답신을 보내주었고 몇은 아직 답장이 없다.


저녁시간엔 점장님이 사장님의 카드를 받아 커피와 베이글, 빵을 사다주셨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너도 복 많이 받아라"

또 한번의 덕담이 오고 갔다.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화를 받지 않는 사장님의 핸드폰에 문자를 남겼다.

"아마 네 번호를 몰라서 안 받으신 걸거야" "그럴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크크" 하며 점장님과 농담을 주고 받았다.


마감 직전엔 지난 3개월 거의 매 출근마다 얼굴을 보아온 아래 세븐일레븐 알바생과 인사를 나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5200원과 5500원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 웃으며 서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퇴근. 일찍 집에 들어가고 싶어 오들거리는 몸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달리면서,

얼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달떴다.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


오늘 있었던 재밌는 일화들과,

가요대제전과,

웃긴 짤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다가


"언니, 아빠가 맥주랑 과자 사오래"

라는 문자를 받고, 집에 가는 길에 단지앞 작은 마트에 들러 OB맥주 6캔들이와 과자 3봉을 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1시간 남기고 마트 아주머니와 나는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대로도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근사한 끝을 보냈겠지.

더 맛있는 것들을 먹고, 따뜻한 곳에서 재미있는 걸 구경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24살의 마지막 날은 나쁘지 않았고, 꽤 좋기까지 했다.


속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작과 화해가 있었고,

(어떻게 보면 그 시작은 이전보다 더 큰 문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근사한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늘 살아가는 곳에서 늘 만나던 사람들과 조금은 더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 시간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으며

내가 시간을 내어 보낸 감사의 연락에 많은 사람들이 상냥한 답을 해 주었다.

누군가는 나와 올해의 첫 글자들을 함께 하려고 와이파이를 잡았겠고,

늘 지나쳤겠지만 한번도 마주보지 않은 마트 아주머니께 새해 인사를 건네는 기회를 갖기도 했으며,


화투판을 벌이고 나의 맥주 배달을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

작은 빵 위에 꽂은 6개의 초를 하나하나 불어가며 6명 각자의 소원을 빌 때의 그 따뜻함.


그렇게 나는, 어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날은 춥지만, (심지어 내일은 영하 10도라는데) 2015년의 시작이 조금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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