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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로봇기자와 저널리즘

등록 : 2015.01.21 19:45수정 : 2015.01.21 19:46

김영주의 미디어 항해

종업원 대신 로봇이 서비스를 해주는 식당이 중국에 문을 열었다. 이 로봇은 손님 테이블에 주문한 요리를 가져다주고 간단한 인사말도 전한다. 월스트리트 금융거래의 약 80%를 컴퓨터 알고리즘이 대신하고 있고, 미국의 몇몇 대학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복용할 약을 로봇이 조제한다. 아마존은 드론(무인기)을 이용해 물품 배송을 하려고 한다. 육체노동에서 지적인 노동에 이르기까지 로봇의 활약은 가히 전천후라 할만하다.

최근 언론계에도 로봇의 ‘활약상’이 전해지고 있다. 로봇이, 더 정확하게는 정교한 알고리즘이 기사를 생산한다. 2014년 3월 엘에이(LA) 지역에 발생한 지진 속보를 가장 빨리 알린 <엘에이타임스>의 기사는 로봇이 작성한 기사였다. 로봇이 지진과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해 프로그램화 된 문장구조에 데이터를 배치했고 바로 온라인으로 기사가 나갔다. 이 모든 과정에 걸린 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았다. 영국의 <가디언>은 2013년 11월 로봇이 쓴 기사들로만 구성된 주간신문 <더롱굿리드(the long good read·사진)>를 발행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더롱굿리드>는 <가디언>의 기사 중 주제, 댓글, 리트윗 수, ‘좋아요’ 수 등을 기준으로 기사를 선별하고 자동편집한 뒤 이를 종이신문으로 제작해 무료 배포한다. 이 과정에 기자의 개입은 없다. 모든 과정은 독자들의 반응을 분석한 알고리즘이 해결한다.

국내에도 로봇이 쓴 기사가 등장했다. 기사 쓰는 로봇의 알고리즘 개발에 참여했다는 젊은 개발자는 기사의 데이터를 모으는데 5일, 기사작성에 0.1초, 기사가 포털에 유통되는 데 걸리는 대기시간이 9시간이라고 말한다. 데이터만 축적되어 있다면 기사 작성에는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왜 로봇이 기사를 써야 하는가?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로봇은 기자보다 저널리즘의 원칙에 더 충실한가? 우리가 로봇을 이용하는 이유는 로봇이 인간의 삶을 더 편리하고, 더 효율적이고,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로봇이 기자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객관적으로 기사를 쓸 수 있다. 데이터를 모으고 선별하고 분석하는 데 로봇은 기자보다 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24시간 기사를 생산해야 하는 디지털 퍼스트 시대에 더 적합한 노동력일 수 있다.

그러나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한국언론진흥재단 펴냄)을 보면, 저널리즘의 목적은 기술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또 기자들이나 그들이 활용하는 취재보도기법이 저널리즘의 목적을 정의하지도 않는다. 저널리즘의 원칙과 목적은 좀 더 ‘기본적인 무엇’에 의해 정의되는데, 그 기본적인 무엇은 바로 뉴스가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 기능이다. 로봇은 시민을 만날 수도,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에 따라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로봇은 양심 대신 알고리즘을 따른다. 물론 시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양심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는 기자들 때문에 로봇기자가 더 환영받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미래다.

집에 로봇청소기가 있다. 작동시키면 혼자 다니면서 먼지나 머리카락을 빨아들인다. 방전이 되면 스스로 충전을 하러 간다. 문턱을 넘지 못하고 옷가지가 바닥에 있으면 그대로 주저앉는다. 쫓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 가끔 말썽까지 피운다. 침대 밑에 숨어있거나 다 하지도 않은 청소를 마쳤다고 거짓말까지 한다. 결국 일반청소기를 다시 샀다. 사람이 기계를 이용해 직접 하는 청소가 로봇이 해주는 청소보다 더 만족스럽다. 로봇이 알고리즘으로 쓰는 기사보다 사람이 로봇을 활용해서 쓰는 기사가 더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말이다.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