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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조선일보] 도서정가제

등록 : 2015.01.21 18:35수정 : 2015.01.21 21:05

새 정가제로 할인폭 줄자
다른 업종이 도서 취급 신고
낙찰 수수료 노리고 입찰전
납품 난립에 동네서점 울상
“협상 방식 전환 허점 보완해야”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2011년 지역 단체와 주민들의 기부로 만들어진 마을배움터 청소년 도서관 ‘하랑’.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최근 납품업체가 난립하는 가운데, 성남시는 공공도서관 납품업체를 지역 내 동네 중소서점들로 지정해 주목을 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해 말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도서관 납품 도서 최저낙찰제가 사라진 뒤 제약회사와 주유소까지 도서관 납품에 뛰어들면서 동네서점을 비롯한 중소 도서 납품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 부천의 도서 도매점 한결문고의 박점복 전무이사는 20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예전에는 500만~600만원 규모의 입찰에 참여하는 도서 납품업체가 3~5개 정도였으나 지금은 무려 100개가 넘는다. 4000만원 규모의 입찰에 참가업체수가 171개나 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도서와 전혀 무관한 제약업체와 주유소까지 사업종목에 도서 항목을 추가해 입찰에 참여한 뒤 낙찰되면 많게는 20%, 적게는 10%안팎의 수수료를 받고 빠진다”며 “새 도서정가제로 엄청난 이득을 볼 걸로 보고 몰려든 입찰브로커, 페이퍼컴퍼니들”이라고 말했다.

신구간을 불문하고 정가의 10%(경품·마일리지 등을 포함해서 최대 15%) 이상 할인할 수 없도록 한 새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는 도서관들이 주로 최저낙찰제로 도서를 구입했기 때문에 정가의 절반 이하로 내려간 저가할인을 감당할 수 없는 군소업체들은 낙찰 받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10% 할인상한제 때문에 입찰에서 저가공세가 어려워져 낙찰 받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다. 이런 상황을 틈타 납품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는 것이다.

의정부에서 동네책방 광동서점을 운영하는 양수열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정무위원장은 “서점은 신고제이기 때문에 어떤 분야 업체라도 세무서에 가서 취급품목에 도서항목만 추가 등록하면 도서 납품 입찰에 응할 수 있어 낙찰 수수료를 노린 자격없는 납품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 부성서점의 이병준 대표도 “새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새 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납품업체 난립과 제도상의 미비점 때문에 중소서점들이 되살아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또 멀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행정법 예규 개정과 함께 도서납품제도를 파행으로 몰고가는 현행의 ‘변별력 없는 업체 적격심사제도’보다는 발주처가 성실한 업체를 구별해낼 수 있는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으로의 방향전환을 촉구했다. 양 위원장은 “지금 행정법 예규는 5000만원 규모 이상의 납품은 입찰 대상지역을 특정지역으로 한정할 수 없도록 할 뿐 아니라 몇 억짜리 입찰을 5000만원 이하 규모로 쪼개서 입찰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쟁을 신조로 떠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의 공공 및 대학 도서관들이 해당 지역 서점들을 지정해서 납품받을 길을 막아놓아 지역 중소 서점들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비판했다. 성남지역 등에서 그 지역 동네서점들을 지정해서 도서를 납품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고유권한을 발동한 ‘예외적’인 경우다.

이들은 또 책 납품 때 도서정보를 담은 소프트웨어 마크 데이타(marc data)를 함께 납품하는데, 페이퍼컴퍼니들은 전문사서와 고가의 프로그램 비용이 들어가는 마크 데이타 작업을 해낼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지적했다. 경품 등을 통한 5% 추가 할인을 할 수 있도록 한 법 규정도 일부 도서관들이 납품업체에게 갖다 바치기를 강요하는 ‘합법적 뇌물’ 장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이와 함께 이들은 일부 출판사들이 새 도서정가제 시행 뒤 도서 공급가격을 올리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입력 : 2015.01.22 03:00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 "시행 2개월… 책값 더 내려야
육군 GOP 책 기증 운동도 시작… 더 깊고 넓고 다양한 책 만들 것"

"동네 서점 주인들 얼굴이 해맑아졌다. 매출도 좀 늘고 일할 맛이 난다고 한다. 출판 시장에 '빙하기'가 올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양호해서 출판사들 분위기도 좋다. 할인 스트레스를 덜 받고,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신간 비중도 높아졌다."

할인을 최대 15%로 제한하는 새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두 달 지났다. 공공도서관 등에서 빈틈이 발견됐지만 우려와 달리 연착륙하는 분위기다. 21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윤철호(54)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도서정가제는 출판계가 우리 사회로부터 특별한 격려금을 받은 것과 같다"며 "좀 더 깊고 넓고 다양한 책을 싼 가격에 공급할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출판 불황은 읽을 만한 책을 만들지 못한 출판계 탓”이라며 “도서정가제라는 기회를 줬는데도 엉망이면 출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출판 불황은 읽을 만한 책을 만들지 못한 출판계 탓”이라며 “도서정가제라는 기회를 줬는데도 엉망이면 출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최전방 군 초소 300여곳에는 올 초 출판인회의 회원사들이 기증한 책 12만6000권이 들어간다. 육군과 함께 병영 문화 개선을 위해 GOP(일반전초) 및 해안 소초 생활관에 독서 카페를 만드는 사업이다. 윤철호 회장은 "책 읽는 부대에서는 구타도 없을 것이고, 미래 독자를 개발하는 일이기도 하다"며 "육군참모총장이 특별히 부탁한 '미생'을 완비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이문열 삼국지 세트를 비롯해 구간 4000여종이 정가(定價)를 낮췄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스테디셀러가 많이 참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문화유통북스 통계를 보면 도서정가제 이후 신간 가격은 4.1% 내려갔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책값이 비싸졌다고 느낀다.

"과거에는 1만원짜리 책을 서점엔 6000원에 공급했고 서점은 30% 할인한 7000원에 파는 식이었다. 같은 책을 이젠 8500~9000원에 사야 하니 가격 저항이 있다. 할인 폭이 줄어 서점 출고율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서점과 소비자 모두 득을 보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미생'처럼 저렴한 보급판이 자꾸 나와야 한다."

―성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26분,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96분(문체부 조사)이다.

"책도 오락 도구인데 강력한 경쟁자가 많아졌다. 출판사들의 게으름도 있다. 기획부터 상품까지 업그레이드하진 않고 독자만 탓할 수는 없다. 홈쇼핑에서 파는 전집 사서 보면 읽기 어려운 게 많다. 10여년 동안 할인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콘텐츠 개발에 소홀했다. 소비자들이 만날 속나? 이젠 안 읽는 거다."

―개론서 수요는 있는데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책이 안 팔린다고 한다.

"난 생각이 다르다. 출판사도 문제고 저자도 문제다. 깊이 들어가더라도 읽을 수는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나. 출판사가 읽을 만한 책을 만드는 데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느냐 보면 '×판'이다. 독자가 안 읽는다고 불평하는 건 양심 없는 짓이다. 저술이 교수 업적 평가에 반영되지 않아 실력 있는 교수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개론서와 전문서 사이의 간격이 메워지질 않으니 백날 개론서만 읽는 셈이다. 독자가 얕은 물에서만 헤엄치니 우리 사회의 수준도 제자리걸음이다."

―편집자의 역량 하락도 문제다.

"텍스트를 이해하고 깊이가 생기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편집자는 제목 장사 하고 필자 접대하느라 역량 축적이 안 된다. 나이 마흔이면 '퇴물'이다. 할인이 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10여년을 허송세월했다. 좋은 책 만드는 출판사가 돈 버는 구조가 돼야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