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글

오늘 하루 이야기


오전에 언론사 시험을 봤는데, 미쳤는지 오픈북 시험에 책을 안 가져갔다. 다른 학교에서 애써 빌려다 놓고, 또 수업은 하나도 안 들어갔으나 시험이라도 제대로 볼 요량으로 어제 책까지 재미있게 다 읽었는데. 공지 하나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집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학교에 갔다. 시험 치기 전에 다들 책을 갖고 있길래, '와 다들 책을 사거나 빌리거나 했나보네. 사기엔 꽤 비싸고 우리 도서관에선 빌릴 수도 없었을 텐데 대단하다' 따위의 잡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앞에 보이는 교수님의 시험문제 파일제목. 


'언론사 오픈북 시험문제'

'언론사 오픈북 시험문제'

'언론사 오픈북 시험문제'


잠시 멘붕이 와서 어버버 하다가, 그나마도 다행이게 챙겨온 정리 A4들을 보며 전략을 짰다. 어제 공부하며 상식 차원에서도 알아둘 것들이 많아 종이에 메모를 하며 봤는데 그게 꽤 많아서 한 10장 정도 됐다. 아침에 지하철에서 볼 생각으로 가져온 그 10장의 종이들이 나의 시험을 구원해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어쨌든 이러저러하게 시험을 치고 나와서, 대충 김밥을 먹고, 추워서 덜덜 떨며 매점 옆 kirin방에서 공부를 하는데 (열람실에 자리가 없었다. 슬펐다) 눈이 펑펑 왔다. 펑펑펑 정말 펑펑펑 내렸다. 감상에 빠졌다. 그래서 이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시험지를 만들고 마는데.. 음운론은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다. 아예 나는 언어학과 안 맞는 것 같다. 국문과 학생이란 놈이 언어학도 싫다 고전도 싫다, 그럼 대체 뭐 어쩌라고? 하겠지만 난 현대문학 할건데? 라고 받아치겠다. 아무튼 정말 들으려고 해도 너무 어려워서 들을 수가 없어서 늘 수업엔 갔지만 자거나 책을 봤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프린트를 들춰봐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제 아는 동생을 만나 특강까지 들었으나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F가 뜨면 졸업이 안 되는 상황이라 뭐라도 꾸역꾸역 써야 했고.. 이런 걸 생각하다 보니 공부는 하지도 않았는데 공강시간이 다 갔다.


다음 수업은 철학 수업이었는데.. 교수님께서 학생 전원에게 루돌프 빨간 코를 주셨다. 



귀여움 터짐! 교수님 사랑해여. 막 학생들이 상담도 많이 가고 얘기도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철학과 학생들이 부럽던 순간은 많지 않았는데 이번만은 부러워졌다.

아무튼 그렇게 마지막 수업을 듣고 대망의 음운론 시험을 갔다. 문제는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풀 수 있는 문제였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저것 대충 씨부리고 나니 30분이 남았다. 교수님이 감독을 보시는데 텅텅 빈 시험지를 당당하게 내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편지를 썼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내가 국문과에서 듣는 가장 마지막 수업의 가장 마지막 시험이다. 물론 아직 두 개가 남았지마는 그건 철학과 수업이랑 언정과 수업이라, 사실상 내가 보는 주전공 마지막 시험이다. 그동안 국문과에 진 빚도 많고 (지금 가진 내 성격의 8할까진 아니고 한 6할 정도는 국문과 지분이다) 고마운 점도 많고, 아무튼 내가 우리 과에 갖는 애정이 무한한지 갑자기 엄청나게 센치해져서 B4 한장 반을 채워 교수님께 편지를 썼다. 블라블라블라.. 다 쓰고 다시 읽어보려고 했지만 레포트나 편지를 다음날 아침 다시 읽어보면 벽차듯이 편지도 벽찰 것 같아서 그냥 읽지 않고 다른 애들이 내는 틈을 타 재빠르게 제출했다.


아 모르겠다. 이걸 왜 쓰고 있지 지금 새벽 2시 15분이다. 하지만 내일 학교를 안 가네? 헝거게임 봐야지. 내일 아침에 볼까. 언제 볼까. 그렇네요 이 글에는 의식의 흐름기법이 포함되어 있네요.


어쨌든 결론은, 아디오스, 나의 국문과 그동안 고마웠다.






  

'끄적끄적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뢰즈 시험을 마쳤다.  (0) 2013.12.16
새기고 싶은 말  (0) 2013.12.13
고전문학 쪽은 너무 이상하다  (0) 2013.12.09
나는 표지를 믿는가?  (0) 2013.11.23
답답함 xx ...  (0) 2013.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