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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글

졸업사진을 찍고 나서 든 생각


오늘 졸업사진을 찍었다. 안 찍으려고 했으나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찍게된 사진 치고는 너무 즐겁게 찍었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화장에, 머리에 들뜬 것도 사실이고,(비록 예약을 늦게하는 바람에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 반까지 학교 앞에 가야 했지만) 혼자일 줄 알았건만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어 그 아이와 친해진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 과가 90명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래서인지 30명 중 아는 얼굴을 찾을 수 없었다.


거의 5시간 동안이나 이어진 긴 촬영 가운데 우리를 웃게 만드는 농담 중 대부분은 '포샵' 이었다. "한껏 웃으세요, 그래서 사각된 턱은 포토샵으로 다듬으면 됩니다." "하하하하" "얼굴형부터 팔뚝살, 종아리, 허리 뭐 원하는 거 다 있잖아요", "배가 뽈록 튀어나오면 그거는 우리가 어떻게 뽀샵을 할 수가 없어요" 그 뒤로 또 흐르는 "하하하하". 참으로 친절하고 소비자를 위하는 이 스튜디오는 무려 한명 당 20분의 시간 동안 일대일로 포토샵을 봐준다고 했다. 그 긴 시간동안 나는 고치기를 원하는 나의 부분을 다 이야기하면 된다. 어찌나 편리한지!


내 사진은 거지같이 찍혔다. 원체 카메라 앞에서, 특히 공식적인 사진을 찍는 상황에서 표정이 굳어버리는 나니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아마 나는 그 일대일 '뽀샵타임'을 이용할 것이다. 올라간 눈꼬리는 내리고, 경련진 입꼬리는 예쁘게 들어올리고, 살 때문에 울퉁불퉁한 턱은 갸름하게 만들고 싶을 거다. 그리고 내가 받게 될 졸업앨범에는 그렇게 완성된 몇 천명의 졸업생의 사진이 실릴 것이다. 무려 20분이나! 고친 그 얼굴들이 다 어느 정도로 비슷하게 예쁠지는 보지 않아도 상상이 된다. 누구도 턱을 늘리지는 않을 것이고 누구도 허리살을 부풀리지는 않을 테니까.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춰 나의 얼굴을 자르고, 깎고, 맞추는 작업은 비단 실제 얼굴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너무 당연하게도 우리를 증명하는 모든 사진에서 그런 다듬기 작업은 이루어진다. 내가 이 학교에서, 5년간 많은 것을 배우고 이렇게 자라서 떠난다는 것을 증명하는 졸업사진은, 나의 있지도 않은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싸구려 홍보책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대학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법과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 진창을 진창이라서 좋아하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해 왔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가리고 나를 숨기는 데 급급하다. 행여나 예쁘지 않게 보일까 한껏 치아를 드러내고 입가에 경련이 일 정도로 웃는다. 


과학기술과 누군가는 발전이라고 부르는 그 발전의 편리함이 나 또한 편리하게 만들어버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야금야금, 그 발전이란 것은 나를 내가 내 의지로서 나 스스로를 다듬고 편리하게 만들도록 조종한다. 세상의 편리하고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기준에 맞춰, 나는 아마 무려 20분의 시간 동안 충혈된 눈에 또다시 핏대를 세워 가며 마우스를 놀릴 부분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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