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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글

야구란 무엇인가?

 

인간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존재인가보다.  굉장히 귀찮은 많은 일들을,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자의로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보면 연애와 스포츠는 비슷하다. 대상에 애정을 쏟아서 얻게 되는 귀찮음, 분노, 짜증의 양과 가끔 얻게되는 기쁨의 양을 계산해보면 대략 비슷하거나 혹은 속상함이 더 큰 경우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애와 야구는 둘 다 돈이 들고, 가끔 '발암'스럽게 나를 답답하게 하고, 또 상대의 행동을 내가 어떻게 컨트롤 할 수가 없어 뭔가 일이 벌어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어디든 중립보다 치우친 관심과 애정을 쏟게되면 항상 그만큼의 귀찮음과 '발암'스러운 답답함이 따라온다는 것이 너무 자명한데도 우리는 항상 자의로 그 귀찮은 일을 하기를 원한다. 미친듯한 아이러니다. 수많은 야구팬들이 그 산증인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오는 솔로들의 슬픈 눈물 게시글과 커플들에게 선물하는 '아 그냥 두 분 축하드려요'가 그 증거다. 

나는 작년시즌부터 LG트윈스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마지막 경기에서 봉중근이 흘린 눈물과 선수들의 허탈한 표정을 보고서는 '아 정말로 이 팀에 누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어쩐지 어쨌든 지난 시즌 LG는 후반 상승세를 타고 정규시즌을 2위로 마무리지었다. 10년만에 가을야구까지 갈 수 있었고 그래서 최종순위 3위에 머물렀지만은 마치 연애초반과 같이 애틋한 마음이 더 들었다. 뭔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나는 팀에 빠져버렸고, 그때부터 마치 기념일을 챙기듯 피규어와 유니폼, 책 '엘지트윈스 때문에 산다' 따위를 주섬주섬 사모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팀에 대한 애정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하지만 연애의 1년 증후군과도 같이 이번 시즌 내게 다가온 발암함은 충격적이었다. 연애 1년만에 나랑 정말 안 맞는 남자친구의 성격을 발견한 것마냥 충격적인 게임 결과가 이어졌고, 가장 슬픈 것은 타자들이 순위권에 들만큼 잘하는 데도 투수들이 점수를 다 날려먹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감독 사퇴, 관련 기사와 글들을 찾아보며 알게 된 LG 구단주들 임원들의 짜증나는 행태들이 나를 더욱 슬프고 짜증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잘하는 다른 팀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미 한 번 마음을 주어버린 이상, 마음을 거둬들일 수는 있어도(있을까..) 다른 곳으로 바꾸기란 훨씬 힘들다.

사실, 어딘가에 그만한 애정을 쏟지 않으면 내 소중한 몸속에서 이런 일로 발암의 연기가 피어오를리도 없고, 매 경기마다 속상해할 일도 없다. 아빠와 주변 사람들의 무시와 비웃음을 한 몸에 받을 일도, 그 때문에 짜증낼 일도 없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상대에 그만큼의 애정을 쏟지 않으면 돈걱정으로 통장을 두드려볼 일도 많이 줄어들고 매 기념일 뭘 사야 하나 선물 따위를 걱정할 일도 없으며 다른 인간 둘이 만나 겪게 되는 피튀기는 싸움도 겪을 필요가 없다. 맘고생 할 일도 없고 상대의 변심에 슬퍼할 일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야구나 연애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수조건도 아니고 말이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연애를 하지 않아도 밥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고 잘 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로 다시 무언가에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발암 가능성을 뒤로하고서라도, 계속해서 어딘가에 애정을 쏟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이유 말이다. 나는 그 이유가 공감과 사랑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라고 생각한다. 즐거움에 대한 욕구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연애를 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 자체가 혼자인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인 것, 혹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상태를 더 즐겁게 여긴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아니다. 야구에서 또한 나와 상대를 동일시 했을 때, 또 함께라고 생각했을 때 느끼는 그 충만한 마음. 나와 팀이 하나가 되는, 팀아일체가 됐을 때 야구를 보는 게 더 즐겁다는 의미도 비슷할 것이다 .

LG가 경기에서 이긴다고 해서 내가 돈을 받거나 맛있는 걸 먹는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지만(오히려 돈을 더 쓰겠지.. 호구마냥) 어딘가에 애정을 갖게 되면 그만큼 더 행복하고 즐거워진다. 내가 뭔가를 진심으로 애정하기 때문이다. 몇 사람들은 야구 재밌게 보려면 지금이라도 팀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어차피 좋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팀을 바꾼다고 내가 야구를 재밌게 볼 수 있을까? 아니, 이미 한번 가버린 마음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스스로 질려 떨어져나가기 전에는 내가 어떤 팀을 응원하든 그건 거짓마음밖에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거짓마음을 장착한 채 하는 응원이 재미있을 리도 없다. 어떻게 보면, 야구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팀을 좋아하고 있는 그 마음을 좋아해서 야구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같다. 야구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모든 팀을 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냥, 왠지 오늘도 질 것 같은 기분에 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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