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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글

죽음

죽음이 평소보다 크게 다가온다. 주변에서, TV 속에서, 책에서 예전보다 더 잦게 접하게 되는 저 두 글자가. 마치 바위같이 무겁고 단단한 저 단어의 무게는 아직 내게 너무 낯설면서도, 동시에 내가 그 무게를 제대로 느끼기에는 너무 낯익단 생각이 든다. 마주하게 되는 그 검고 축축한 그림자 앞에서 항상 당황스럽다.

누군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의 기로에 서있다는 사실과 그로인해 내가 느끼는 당혹감은 늘 캄캄하다.

책 속의 누군가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장기 놀음을 하듯 사람들을 죽여나가고, 누군가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TV 속에 나열된, 아직 많이 어린 이름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사고에 휘말려 생사를 오간다. 누군가는 태연하게 머리를 매만지며 두살 난 아가를 쓰레기장에 버리고, 아직 피지도 못한 어린 소녀를 때려 죽인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곳에서 소리 한번 쳐보지 못하고 불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사람도 있다. 옆집에 사는 누군가는 살기가 힘들어 목숨을 끊고, 또 누군가는 '말하기' 위해서 목숨을 던진다.

죽음은 내 옆에도 있다. 다만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다.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죽음 앞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가장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기 힘들다. 먼저 분노를 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위로해야 할까, 모른척 해주어야 할까, 함께 울어줘야 할까, 아니면 애써 웃어주어야 하는 걸까.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라는 말은 너무 가혹하다. 명복을 빕니다, 라는 말도 너무 적다. 한 세계가 사라지는 일인데. 말은 언제나 너무 짧고, 멀고, 얕다.

신문 사회면 한 귀퉁이에 나오기에 이 모든 죽음들은 너무도 개인적이다. 재판장에서 하나의 판결문이 되어 나오거나 신문의 한 곳에 활자로 적혀 나오는 것으로는 절대 담을 수 없을 슬픔과 감정이 있다. 법과 신문에는 테두리가 있겠지만, 슬픔에는 테두리가 없다. 그게 가장 슬프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다 합쳐놓으면 그 아픔은 대체 얼마나 클까. 심장을 찢고 과거를 도려내고 눈 앞의 결과를 없애버리고 싶은 그 마음의 깊이는, 대체 얼마나 깊을까, 내가 꿈속에서나마 느껴봤던 그 아픔의 몇 배 정도 될까.

정말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짧은 말만으로는 그 많은 사람들의 삶을 다 슬퍼할 수가 없다. 말은 항상 너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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