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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도쿄

저자
김영하 지음
출판사
아트북스 | 2008-07-17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여행자’ 시리즈의 두 번째 책. 첫 번째 여행지였던 독일 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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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비슷하다. 우리는 낯선 도시에 도착할 때 공포와 호기심, 친근감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그 도시를 알아가게 된다. 가리봉동의 다방에서 책을 읽은 그 학생은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서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즉각적이고 기능적인 판단을 한다. 누군가가 청담동이나 회기동에 살고 있다고 말할 때, 물건을 사기 위해 남대문시장이나 명동 롯데백화점에 간다고 말할 때 우리는 즉각 판단을 한다. 남대문시장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아, 남대문시장이오,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남대문시장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이 대목에서 문득 떠오르는 시니컬한 금언이 하나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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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글쓰기 과제로 이런 것을 내준 일이 있다.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그것에 대해 적을 것. 학생들은 1주일 동안 자기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나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다음 수업 시간에 내게 승낙을 받으면 그것을 실행하고 집으로 돌아와 글로 적었다.


그런데 영화를 공부하는 한 여학생은 이런 주제를 제시했다. "가리봉동의 다방에 가서 커피 마시며 책 보기". 그녀는 평생 한 번도 그 동네에 가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근처에도 가본 일이 없었다. 평소에 스타벅스나 커피빈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 컴퓨터로 과제를 한 일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을 가리봉동의 다방에서 한 적은 없었고, 아니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우선 거기가 너무 가깝다는 데 놀랐다. 심리적으로는 거의 대전쯤에 있을 것 같았던 그곳으 그녀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웬 여대생이 다방에 들어서자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여자 종업원들이 실눈을 뜨고 그녀를 살폈고(거기는 진짜 '다방'이었던 것이다), 이내 손님이라는 것이 분명해지자(커피를 시켰으니까) 커피와 설탕, 프림이 담긴 쟁반을 들고 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도대체 왜 자기를 바라보는지 몰라 멍하니 앉아 있던 그녀에게 종업원이 마침내 물었다.


"프림? 설탕?"


다방에서는 종업원이 설탕과 프림을 가지고 와서 직접 타주고 다시 그것을 들고 가버린다는 것을 그 학생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아마도 그것은 설탕이나 프림이 귀하던 시절의 관습이었을 것이다) 종업원이 프림과 설탕 그릇을 가지고 간 뒤, 그녀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시간이 흐르자 종업원들의 긴장도 누그러지고 그녀 역시 그 공간에 서서히 익숙해져갔다. 그녀는 그때의 경험을 소상히 적어 과제로 제출했다. 처음에는 공포를 느꼈고("절 어딘가로 팔아버릴 줄 알았어요") 그 다음에는 호기심이 들었고 떠날 때가 다 돼서야 비로소 그들이 친근하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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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앎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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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앎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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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의 소설들.




도쿄.

유쾌한 무관심

볼륨을 줄인 대형 텔레비전

눈부신 잉여

잘 정리된 강박증 환자의 서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