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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영화

[아무르] ★★★★ 아카데미상 탄 Amour, 진정한 현실이 여기에 있었다.



*강력 스포 주의*


올해, 66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미카엘 하네케.

원래 몰랐던 감독인데,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 경력도 엄청나고 특히 전작 <퍼니게임>으로 많이 알려졌다고 들었다.

아카데미상 받았다길래 관심도 갔고, 하고 있는 스터디에서 얘기가 나왔길래 보게 된 영화.


처음에는 포스터에 나와있는대로 노년기를 맞은 부부의 사랑을 담아낸 영화라고 생각했다.

특히 포스터에 써 있는

"사랑.. 그 자체인 영화"


이 문구 때문이었던 듯?

그렇지만 내 짧은 감상평을 말하자면, 사랑보다는 현실에 가깝다.

뭐 자세한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음악가 출신인 부인 안느는 남편 조르주와 평화롭게 살아간다.

옛 제자의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가기도 하면서.

그러다 어느날 안느는 병으로 인해 마비 증상을 보이게 되고, 

그녀에게 '절대 병원에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한 남편 조르주는 그녀를 간호하는 데 온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말도 할 수 없게 돼고 정상적인 의식조차 잃어가기 시작한다.



이게 (반전을 제외한) 줄거리의 전부나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사실, 약간 지루하다고 느낄만큼이나 이 영화는 잔잔하다.

이자벨 위페르를 제외하면 배우들이 낯설어서 그런지, 한 편의 다큐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안느역을 맡은 엠마누엘 니바가 연기를 진짜 잘해서 ㄷㄷㄷ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영화로서 굉장히 섬세하게 다듬어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배경과 느린 템포다. 

죽음의 공간은 어둡고 고요하고 적막하게 그려지며, 

그들의 삶이 그렇듯 그들의 몸짓, 행동 하나하나는 전부 다 느리다.


영화는 한 노인이 집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지런히 놓인 손과 그 옆을 장식한 꽃들로 보아 자살같이 보이고, 오래 방치된 이후 발견된다.



또 영화 초반에 감독은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모인 관객석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상하게도, 연주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연주자의 모습은 비추어지지 않고 오로지 관객석만 비춰지는데, 노인들의 모습이 특히 많이 보인다. 



이 두 장면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바깥세계'의 전부이다.

이 이후부터 모든 사건은 안느와 조르주의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이것이 하나의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영화 전반에서 이 두 사람의 집은 삶이 사라진 죽음의 공간으로, 밖은 삶의 공간으로 느껴진다.

일단 집 내부 분위기 자체가 어둡기도 하고, 특히 안느가 아프고 나서부터는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이 안느의 죽음을 기다리는 행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두 사람의 딸인 이자벨 위페르와의 대화에서도 나타나는데,

이자벨 위페르가 아버지인 조르주에게 "이런 식으로 계속 살 순 없다"라고 말하자 

조르주는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 (엄마가 이렇게 됐다고) 네가 네 삶을 사는 게 나쁜건 아니다. 

우리에겐 우리의 삶이 있는 거다"라는 식으로 답한다.


그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밖과 안의 경계를 나눈다. 

밖이라는 공간에서 온 사람들, 또 그 공간 자체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생동하는 공간이 되고

그들이 죽음을 기다리며 늙어가는 그 집 내부에는 모든 것이 멈춰있다.



가끔 그는 과거의 행복하던 시간을 떠올리긴 하지만, 

사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뿐인 것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조르주는 점점 지쳐간다.


기분나쁜 간병인들의 태도도 그렇고 점점 옛날의 사랑스러웠던 아내가 아기처럼 변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하는 고통.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아내가 죽는 때를 기다리는 일 밖에 안 된다는 생각, 

또 아내가 죽고 나서 자신도 언젠간 이렇게 되어 홀로 죽어갈 미래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뭐 내 추측이지만.



 어느날 조르주는 아프다고 외치며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어렸을 적 얘기를 들려준다.

캠프에서 정말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야 했고, 그게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꺼내달라는 암호 메시지인 별을 엄청나게 그렸지만 엄마는 그저 밖에 있었을 뿐이라는 얘기.

그 얘기를 하며 조르주는 아마 자신의 상황과 그 때의 그 기억을 겹쳐 보았을 것이다.

발버둥 쳐도 절대 나아질 수 없는 현실.


그 얘기를 하다 조르주는 갑자기 안느를 몸으로 덮어 죽여버린다.

계속 잔잔하던 영화라서 정말 깜짝 놀랐다는 ㄷㄷ


그리고 자신도 함께 죽을 준비를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살아있는 소재가 있는데 

그건 바로 비둘기이다.

두 번은 창문으로 들어온 실제 비둘기고, 나머지는 그림으로 보여지는 비둘기.

처음에 집안으로 들어온 비둘기를 밖으로 돌려보냈던 조르주는

자신이 아내와 죽기로 결심한 이후, 집안으로 들어와 있는 비둘기를 담요로 잡아 밖으로 돌려보내고 그 일을 유서에 남긴다.


비둘기는 밖의, 삶의 공간에서 온 존재다. 

그는 삶의 공간에 속해있던 비둘기를 계속해서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계속해서 보는 이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확인시킨다.


때문에 위의 장면에서 비둘기가 '삶의 영역'에 속한 이자벨 위페르를 향하고 있는 것이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죽은 이후, 아무렇지도 않게 예전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그들의 죽음 이후 오히려 두 사람이 더 편안해졌을 것임을 얘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것이 진짜 사랑인지도.


하지만 보고나서 나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현실이 더 앞서 느껴졌다.

더 나아질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들만을 남긴 채 죽기를 택하는 남편.


현실에 부닥친 사랑이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공감되면서도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고,

굉장히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영화라 좋았다.


마지막으로..

안느가 옛 제자에게 처음으로 추천한 피아노 곡이 바가텔이었고

또 안느가 자신의 옛 제자에게 쳐 달라고 부탁한 곡도 '바가텔 g 단조'였는데

그래서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뭔지 찾아봤다.


바가텔(bagatelle)은 피아노를 위한 두도막, 세도막 형식의 소품곡으로 보통 피아노를 위한 소곡에 붙은 명칭이라고 한다.

그런데 원래의 단어 뜻은 '쓸데 없는 것'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가벼운 것, 쓸 데 없는 것.


아마 그녀는 불구가 되어 자기 몸 조차 가누지 못하게 된, 

죽어가는 그녀 자신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