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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탈출/유럽

런던 이야기 _1일


2014년 5월 29일.



대학교 2학년,


가겠다고 울고 불고 난리 피우다 아빠한테 몇 대 맞을 뻔해가며 훌쩍거렸던 유럽에, 


그 중에서도 내가 꿈꿔 마지 않던 닥터가 밟았던 도시인 런던에,


도착했다.






얘는 내가 여행 기간 내내 들고 다녔던 목베개 토깽이. 


보기엔 귀엽게 생겼지만 목은 하나도 편하지 않다. -_-


기차 이동시간이 많아 목 편하고자 가져갔는데 목 진짜 불편. 담 걸릴 뻔 했다.


저런 표정을 하고 있어 차마 버리지도 못하고.. 생긴거랑 달리 부피는 또 엄청나서


출발 하루 만에 끙끙대고 들고 다녀야 하는 짐이 됐다.





그래도 생긴 게 귀여워서 어딜가나 환영받았다. 역시 목베개 세계에도 외모지상주의..


프라하에서 묵은 민박집 이모는 청소할 때마다 얘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자꾸 흘끔거렸다며 웃었다.


목베개가 아니라 인형으로 가지고 다닐 거였음 애초에 좀 작은 인형을 데리고 올 걸 그랬다는 후회를 엄청 했지만


;ㅁ; 


저 평화롭게 귀여운 표정을 보는 순간 모든 악의에 찬 마음이 가라앉고야 말았다.. 덜덜


결국 버리지 못하고 돌아와 아직까지도 집안 한 구석탱이를 차지하고 계시다.





사실, 유럽- 그것도 인 도시였던 런던에서의 첫 날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난생 처음 혼자 떠나본 해외여행인데다가 피부색 비슷한 동양권이 아닌 곳은 처음이었다.


유랑에서 하도 겁주는 히드로공항 입국심사 후기는 겁쟁이인 나를 더더욱 겁 먹게 했다.


누구는 가진 돈을 다 꺼내 보여달라 했다더라, 누구는 아버지가 뭐하시는지 물어봤다더라, 


친구 전화번호로 전화해보라고 요구했다더라,


그래서 결국 어떤 사람은 몇 시간 동안 감금(?!) 당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더라 하는 충격적인 얘기까지.


각종 카더라가 난무하는 인터넷 경험담의 홍수를 허우적대던 나는 비행기에 올라탄 그 순간부터 걱정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후끈하다.


바들거리는 손으로 한 쪽에는 파리로 떠나는 유로스타 예약증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권을 내놓으며


'난 준비 되었으니 어디 한번 들어와봐!-_-+ㆀ' 하는 비장한 표정을 짓고 서있던 


키 작은 동양인 여자아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준비를 했건만,


결국 런던은


"너 여기 왜 왔니", "여기 친구 있니?", "여기 있다가 어디로 갈거니?" 


이 세 질문으로 날 받아주었다.


개허망..





내가 묵었던 민박은 오발역 근처에 있었다.


역에 도착해 지상으로 올라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시 영국인가, 훗 하지만 나는 우산이 있지- 하고 역 한 가운데서 트렁크를 눕혀놓고 낑낑대며 우산을 찾았다.


그리고 펼치자, 고장. 


오는 중에 고장이 난 건지 원래 고장이 나있던 상태인 것을 가방에 그대로 넣고 가져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트렁크에 커버를 씌우고, 아쉬운대로 고장난 우산을 펄럭이며 길을 따라 걸었다. 


인쇄해온 약도에 토닥토닥, 빗물이 묻어 번졌다. 





지금도 영국에서의 첫 날, 하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비는 후두둑 내리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나고 두리번대는 내 옆을 우산 없이 지나가던 자전거들.


민박이 있는 골목 왼 편으로는 큰 잔디밭이 있었는데, 


그 위로 내리는 빗방울들이 예뻐서 비를 맞는 지도 모르고 한참을 서 있었다.


간단한 사진을 찍을 용도로 챙겨온 디지털 카메라를 주섬주섬 꺼내 마구 사진을 찍어댔다. (그 와중에;;)


그 사진들은 어디에 뒀더라..





그게, 영국과 나의 첫 대면이었다.


'언더그라운드' 표지판, 물기를 머금은 풀, 나란히 줄 지어 있는 작은 대문들. 집앞마다 핀 예쁜 색의 꽃들.










낑낑대며 찾아간 민박집은 생각보다 근사하지 않았다.


근사하지 않았다는 게, 내가 무슨 엄청난 시설 퀄리티를 상상했다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민박집 이모가 쌀쌀했다. 


이 때가 벌써 오후를 훌쩍 넘긴 저녁 가까운 시간이었으니 손님들은 아무도 없는 게 당연하고, 


민박에 있던 아가가 귀여워 이것저것 말 걸고 했으나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이모님은 또 쌀쌀.


뭐 딱히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낯선 곳에 홀로 처음 도착해 만난 사람이 쌀쌀하니


그냥 좀 마음이 허하고 외로워졌던 것 같다.



지금 뭘 하기는 좀 늦었다는 이모님의 말에, 그래도 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수 없지! 하며 무작정 길을 나섰다.


짐 풀고 돈 내고 하는 그 잠시 사이에 비는 그쳐 있었다.








영국에 왔으니 빨간 2층 버스를 타야지 하하하! 하며 탔다.


가장 명당이 2층 맨 앞 왼쪽 자리라길래 냉큼 올라가서 앉으려고 봤더니....!


날라리(모든 인간은 내 기준 무서운 사람/선량한 사람으로 나뉜다)로 보이는 남학생(?학생이었을까)이 앉아 있었다.


왠지 날 훑어보는 게 '왜 굳이 다른 자리 놔두고 여기 앉는 거야 이 난쟁이는' 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그 자리에 너무 앉고 싶은 나머지.. ;ㅁ; 바로 옆자리에 앉아버렸다.


뭔가 그 포스 때문에 카메라를 꺼내기도 힘들었다.. 


한 5분쯤 지나서 간신히 용기를 내 카메라로 창밖을 찰칵찰칵


다행스럽게도 나를 계속 흘끔대던 그 분은 한 3 정거장쯤인가 뒤에 내렸다. 헤헤







오옷! 이 때 좀 두근두근 했다. 


'저것이 그 유명한 빅벤이로구나..!' 두큰둨큰





뭔가 런더너 간지, 커플 간지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달려가 바라본 빅벤은 생각보다 크고 예뻤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진보다 반짝반짝 하고 더 예쁘네!' 였다.


사진 속에서 빅벤 위로 날아가고 있는 헬리콥터 한 대는 지금 발견했네. 지워버리고 싶다.







민박집에서 지도를 대충 받아오긴 했으나 지도를 볼 줄 몰랐던 나는,


(특히 이 시기는 아직 나의 GPS 사용 능력치가 아직 0으로 수렴 중일 때였다.)


그냥 무작정 걸었다. 걷다보니 큰 미술관도 나오고 큰 오벨리스크도 보고 동상들도 보고 했는데


당시에는 뭔지 몰랐다. 


공항에서 보다폰 유심도 샀겠다, (보다폰 매장 아저씨가 나보고 고등학생이냐고 물었음 -_- 으르릉)


핸드폰으로 저게 뭔지 정도 찍어볼 수도 있었을텐데..


다음날 내셔널 갤러리 가려고 지도 찾아 빙빙 걸어가서 보니 어제 와봤던 곳이었음.. 왕멍청










5월이라 아직 추웠던 것이 조금 흠이었긴 했지만 


(쪄죽는다는 아웃 도시인 이탈리아만 생각하다가 긴팔 긴바지를 많이 안 챙겨가서 고생을 했다)


아무래도 겨울보다는 여름의 유럽이 확실히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건 시간 때문이다.


해가 굉장히 늦게까지 떠 있어서 대부분의 도시에서 밤 9시 10시까지 혼자 다녀도 무섭지 않았다. 










대사관 앞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우크라이나 문제가 한창일 때였다.


신기해서 찍어봄.






확실히 건물들이 다들 고풍스럽고 예뻤다.


너무 뻔한 감상이긴 하지만, 그만큼 촌년이니 어쩔 수 없어 ;ㅁ;..


위로만 솟은 빌딩들만 보다가 가로 넓은 옛스런 건물들 사이를 걷고 있자니 


하루만에 내가 멀리 온 거긴 하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횡단보도에 흰 줄이 없어서 허전했다.








기념품


기념품


셋째 날 가면 닥터후 전시 때문에 할 말이 더 많아지겠지만..


인 도시인 영국에서 정말 사고 싶은 기념품들이 많았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인형들도 엄청 많고 건물 미니어처들.. 


다 담아오지 못한 게 아쉬울 뿐..










기념품 샵에서 찾은 닥터후 티셔츠.


무지 사고싶었지만... 아 사올걸... ㅅ...............b...... 


아 사올걸.....








유럽여행 내내 좋았던 것은,


역시나 촌스러운 뻔한 촌년의 뻔한 느낌이지마는


어딜 가나 흔히 보이는 거리 공연이었다. 


내셔널 갤러리 앞 쪽 광장은 당연하고 그냥 지하철 안, 가는 곳마다 쉽게 음악소리를 들을 수 있다.





















헿 깨알같은 나의 범죄자 같은 모습.





남자 애들은 보통 영국 가면 축구 경기 구경, 축구 유니폼 쓸어오기, 뭐 이런 거 하던데


나는 축구에 관심이 없어서 뭐가 뭔지도 잘 몰랐다.


그냥 걸려 있는 유니폼들이 예뻐서 사진 찍음.








흠, 영국엔 훈남이 엄청 많았다. 


그에 비하면 여자분들은.. 물론 쭈구리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요.


예쁜 여자들은 파리에 많았던 것 같다.













민박으로 돌아오니 일과를 마친 몇 언니들이 방에 들어와 있었다.


내 아래 침대 언니는 다음날 오전 일찍 떠난다고 했다. 


나는, 피곤하니까 잠깐만 누웠다가 씻고 라면 먹고 자야지, 했는데 


드르렁 컹컹 그대로 잠들어서 현지 시간으로 새벽 7시(4시인가)에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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