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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스 창고/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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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봄이 왔다 봄이 왔다 진은영 사내가 초록 페인트 통을 엎지른다나는 붉은색이 없다손목을 잘라야겠다 -
[진은영] 청춘 1, 청춘 2 청춘 1 진은영 소금 그릇에서 나왔으나 짠맛을 알지 못했다절여진 생선도 조려놓은 과일도 아니었다누구의 입맛에도 맞지 않았고서성거렸다, 꽃이 지는 시간을빗방울과 빗방울 사이를가랑비에 젖은 자들은 옷을 벗어두고 떠났다사이만을 돌아다녔으므로나는 젖지 않았다 서성거리며언제나 가뭄이었다물속에서 젖지 않고불속에서도 타오르지 않는 자짙은 어둠에 잠겨 누우면온몸은 하나의 커다란 귓바퀴가 되었다 쓰다 버린 종이들이바람에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소리를밤새 들었다 청춘 2 진은영 맞아 죽고 싶습니다푸른 사과 더미에깔려 죽고 싶습니다 붉은 사과들이 한 두개씩떨어집니다가을날의 중심으로 누군가 너무 일찍 나무를 흔들어놓은 것입니다 -
[진은영] 첫사랑 첫사랑 진은영 소년이 내 목소매를 잡고 물고기를 넣었다내 가슴이 두 마리 하얀 송어가 되었다 세 마리 고기떼를 따라푸른 물살을 헤엄쳐갔다 -
[진은영] 도시 도시 진은영 유리로 된 미끄러운 길을 굴러가는 바퀴들주황색 다알리아의 무수한 겹꽃잎버스 정류장 구인 광고에 붙어 있는 하루살이떼개들은 흰 진흙의 맛을 보고 있다하늘에는 락은 동전 같은 낮달 뜬다 -
[진은영] 줄리엣 줄리엣 진은영 더는 못 기다려,배가 고파 그녀가 스푼을 들며말했다 죽음의 수프 그릇에서김이 모락 피어났다 -
[밀란 쿤데라] 우스운 사랑들 우스운 사랑들저자밀란 쿤데라 지음출판사민음사 | 2013-09-20 출간카테고리소설책소개쿤데라가 “가장 사랑하”는, 쿤데라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작품체... #차례 누구도 웃지 않으리영원한 욕망의 황금 사과히치하이킹 게임콜로키움죽은 지 오래된 자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도록이십 년 후의 하벨 박사에드바르트와 하느님 누군가 나에게 '네가 읽은 쿤데라의 소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소개해줘"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을 꼽을 것이고, 그 사람이 재차 '그럼 그의 가장 재미있었던 책을 추천해줘'라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이 단편선을 택하겠다. 재미있어서 읽히기도 잘 읽힌 데다가,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역시 소설의 가장 첫째 덕목은 '재미'지!" 그의 단편들 속 인물들은 운명..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시집저자심보선 지음출판사문학과지성사 | 2008-04-18 출간카테고리시/에세이책소개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며 등단한 심... 주변에서 심보선의 시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이 들어있는 시집. 처음에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당연히 여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왜인지는 몰라 지금 보면 중성적인 느낌인데, 첨 들었을 때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여자일 거라고 상상했었다.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기도 하다. 나의 이야기이면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시어들이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데 그러면서도 고동빛 늦가을 나무의 이미지. 헐리기 직전 공장의 시멘트벽 같은 느낌이 든다. 인상깊은 시들은 따로 옮겼지만 그 외에도 , , , , 그리고 예전에 이미 옮긴 바..
[심보선]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심보선 가장 먼저 등 돌리데가장 그리운 것들기억을 향해 총을 겨눴지꼼짝 마라, 잡것들아살고 싶으면 차라리 죽어라역겨워, 지겨워, 왜영원하다는 것들은 다 그 모양이야십장생 중에 아홉 마릴 잡아 죽였어남은 한 마리가 뭔지 생각 안 나옛 애인이던가, 전처던가그미들 옆에 쪼르르 난 내 발자국이던가가장 먼저 사라지데가장 사랑하던 것들추억을 뒤집으니 그냥 시커멓데 나는 갈수록 추해진다나쁜 냄새가 난다 발자국을 짓밟으며 나는 미래로 간다강변 살자, 부르튼 발들아
[심보선] 삼십대 삼십대 심보선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 제발 날아가지 마 ),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심보선] 어찌할 수 없는 소문 어찌할 수 없는 소문 심보선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매번 오고야 마는 것이 미래다 미래는 원숭이처럼 아무 데서나 불쑥 나타나 악수를 권한다 불쾌하기 그지없다 다만 피하고 싶다 오래전 나의 마음을 비켜간 것들 어디 한데 모여 동그랗고 환한 국가를 이루었을 것만 같다 거기서는 산책과 햇볕과 노래와 달빛이 좋은 금실로 맺어져 있을 것이다 모두들 기린에게서 선사받은 우아한 그림자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쉽고 투명한 말로만 대화할 것이다 엄살이 유일한 비극적 상황일 것이다 살짝만 눌러도 뻥튀기처럼 파삭 부서질 생의 연약한 하늘 아래 내가 낳아 먹여주고 키워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아무 것..